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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차별과 맞서 싸운 ‘美 진보의 아이콘’

입력 : 2020-01-11 03:00:00 수정 : 2020-01-10 19:5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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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즈버그, 로스쿨 수석으로 졸업하고도 / 유대인·여자·엄마란 이유로 구직 실패 / 1993년 역대 두번째 女대법관 오른 후 / 여성 인권에 대해 본격적으로 판례 바꿔 / “목소리 높이는 것에 부끄러워 말아라” / 인종차별 반대·남성 인권도 목소리 내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86)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은 역대 두 번째 여성 대법관으로서 평생을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여성과 성소수자 권리를 옹호해왔다. AFP연합

“목소리를 높이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마라.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는 외로운 목소리가 되지 않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라.”

‘진보의 아이콘’ ‘마녀’ ‘최고령 대법관’ 등의 수식어를 가지고 있으며, 삶이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On the Basis of Sex, 2018)으로 만들어졌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86)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은 평생을 ‘소수 의견’으로 차별에 맞서왔다.

긴즈버그는 1933년 뉴욕 브루클린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났다. 코넬대학교에 입학하고 1954년 동문인 마틴 긴즈버그와 결혼했다. 1956년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에 입학하지만, 뉴욕에 일자리를 구한 남편을 따라 다시 컬럼비아대학교 로스쿨로 편입학했다.

이후 그는 줄곧 차별에 맞서왔다. 1959년 컬럼비아대학교 로스쿨을 공동 수석으로 졸업하고 흠잡을 데 없는 이력을 가졌지만, 긴즈버그는 계속해서 구직에 실패했다. 여성 법률가에 대한 차별이 만연했던 당시 그는 “유대인이고 여자인 데다 엄마”였기 때문에 자신을 고용하려 한 로펌이 한 군데도 없었다고 말했다. 럿거스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할 때는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리면 재계약을 못 할까 봐 큰 옷을 빌려 입고 임신 사실을 숨기도 했다.

“페미니즘에 대한 가장 간단하면서도 본질을 포착하는 말로 토머스가 노래한 ‘자유롭게 너와 내가 되자’가 아닐까 싶다. 여자아이라면 의사건 변호사건 아메리카 원주민 추장이건 원하는 일은 무엇이건 자유롭게 하라. 남자아이라면, 그리고 그 아이가 가르치고 돌보는 일을 좋아하고 인형을 갖고 싶어 한다면 그것 역시 괜찮다. 페미니즘 개념은 어떤 재능이 있건 각자의 재능을 자유롭게 계발할 수 있어야 하고 인위적인 장애물. 단연코 하늘이 내린 것이 아닌 인간이 만든 장애물에 가로막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긴즈버그는 1970년대부터 법률가로서 미국시민자유연맹(ACLU)과 협력해 여성 인권 사업을 추진했다. 특히 성차별과 관련한 소송 사건을 맡아 판례를 바꿔나가는 전략으로 차별을 크게 개선해 나갔다. 1993년 여성으로 역대 두 번째 연방대법관에 오른 후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나섰다. 남성 입학생만 받던 버지니아군사대학교에 여성이 지원할 기회를 최초로 여는 판결을 내리고, 남성 동료보다 임금이 적었던 여성 노동자를 위해 반대 의견을 작성했다.

“적어도 사회 인적자원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이 마치 한 번에 한 명씩 무대에 서는 공연자들처럼 고위직에 올라가는 시대의 종말에 일조한다는 점에서 (대통령이 나를 대법관으로) 지명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1993년 6월 14일 대법관 지명 수락 연설)

긴즈버그가 여성 인권만 챙긴 건 아니다. 남성 인권도 중요하게 여겼다. 사별한 아내 대신 아기를 키우는 남자에게 ‘보육은 엄마 몫’이란 이유로 보육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사회보장법의 문제점을 공론화했고, 노모를 부양하는 남자가 미혼이란 이유로 세제 혜택을 받지 못하는 법의 부당함을 설파해 승소했다.

긴즈버그는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성소수자 권리도 옹호했다.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남성 대법관이 가득한 연방대법원 내에서 진보적 의제에 대한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2012∼2013년 회기 동안 다섯 번의 소수 의견을 내면서 대법원 내 최다 소수 의견 기록을 세웠다. 이를 본 한 로스쿨 학생이 그를 소개하는 웹사이트 ‘노터리어스(악명 높은) RBG(RUTH BADER GINSBURG)’를 만들어 큰 화제가 됐고, 긴즈버그는 미국 젊은 층의 엄청난 지지를 받았다. 그의 법정 의견서, 어록, 패션, 가족 등 일거수일투족은 인터넷에서 재생산, 패러디되면서 미국 진보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헬레나 헌트/오현아/마음산책/1만5500원

마음산책은 열세 번째 말 시리즈로 긴즈버그의 사상과 신념이 담긴 법정 의견서와 그가 강연·포럼 등에서 밝힌 의견을 총망라했다.

책은 3부로 구성됐다. 1부 ‘법’에서 긴즈버그는 미국 헌법의 역사와 사법 체제를 돌아보고 법률가로서 태도에 관해 이야기한다. 2부 ‘시민의 자유 ? 자유롭게 너와 내가 되자’에는 긴즈버그가 냈던 의견서들이 실렸다. 3부 ‘나의 인생’에서는 대법관 이전에 개인으로서 긴즈버그의 소탈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책 말미 ‘연보 및 주요 사건’에서는 긴즈버그가 참여한 법정 사건들을 연도별로 자세히 수록해 독자의 이해를 돕도록 했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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