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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70% 여전히 폭언·폭행 피해… 동네병원은 ‘무방비’

입력 : 2020-01-11 18:04:49 수정 : 2020-01-11 22:5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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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원 교수 1주기’ 의료현장은 / 의사 2034명에 물으니 / 진료에 불만 품고 잇단 흉기 난동 / 성북 동네병원선 환자가 오물투척도 / 응급실선 6개월간 500건 진료 방해 / 진료환경 개선 대책은 / 처벌 강화 골자 ‘임세원법’ 통과 / 100병상 이상 병원 보안원 의무화 / 의료인 폭행 땐 최대 10년 징역형 / 현장선 변한 게 없다 / 비상벨 설치 등 예산 문제 부딪혀 / 인심 잃을라 동네병원선 신고 못해 / 10명 중 6명 “폭행 환자 다시 진료” / 선진국선 경보발령시 경찰서 연계 / 진료실 출구 두 곳 확보 / 안전한 진료실 적극 조성

11일 서울 강북삼성병원에서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주최하는 임세원 교수 1주기 추모식이 열린다. 임 교수는 2018년 12월의 마지막 날 자신을 찾아온 환자 박모(30)씨가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앞서 “절망적 상황에서 누구도 비난하지 않고 안전한 진료환경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고인의 유지로 알려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을 알려주신 데 대해 깊은 감사의 마음도 함께 전한다”며 추모 성명을 발표했다.

임 교수의 죽음은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의료현장의 민낯을 보여주면서 우리 사회 많은 과제를 던져줬다. 임 교수 사망 후 의료기관에서 일어난 폭행사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이 통과되고, 병원에는 안전장비가 확충되는 등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의료진은 폭력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게 현실이다.

◆의사 10명 중 7명 “폭력·폭언 당한 적 있다”

10일 경찰, 대한의사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순천향대 천안병원에서는 치료 중 사망한 환자 유족 2명이 의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른 환자를 진료 중인 방에 들어와 의사를 컴퓨터 모니터 등으로 때리고, 이를 말리는 환자와 간호사까지 폭행했다. 이들은 ‘시술과 치료를 제때 하지 않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며 난동을 부렸다. 의사는 머리와 얼굴, 손 등을 다쳤다.

앞서 지난해 10월에도 서울 노원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가 흉기를 휘둘러 의사가 손을 심하게 다쳤다. 해당 의사가 집도한 수술 결과에 불만을 가진 환자가 앙심을 품고 저지른 일이었다. 이 밖에도 지난해 3월 성북구 동네병원에서 무리한 진료 요구를 거부하자 병원에 오물을 뿌리고, 의사에게 폭력를 휘두르는 등의 행패를 부린 일도 있었다.

손가락 골절로 지난 1일 오후 9시30분쯤 전북 익산의 한 병원 응급실을 찾은 A씨(46·가운데)가 의사 B(37)씨를 폭행하는 장면이 찍힌 폐쇄회로(CC)TV 캡처 화면. 대한의사협회 제공

이는 언론에 드러난 일부일 뿐이고, 실제 의료진은 더 많은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의협이 지난해 11월 의사 2034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최근 3년간 진료실에서 환자·보호자 등으로부터 폭언 또는 폭력을 당했다는 응답은 71.5%(1455명)에 달했다. 피해를 경험한 의사 중 14.9%는 폭언과 폭력을 동시에 당했고, 84.1%는 폭언만 들었다.

폭력·폭언 피해로는 정신적인 스트레스(84.1%)를 가장 많이 호소했다. 6.9%는 가벼운 찰과상이나 타박상 정도의 부상이었으나, 장·단기 입원이 필요할 정도로 크게 다친 경우도 9명이 있었다. 응급실도 폭력에 노출돼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응급의료 방해 사건은 2018년 1102건이었다. 2017년 893건보다 20% 넘게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엔 6월까지 577건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의 경우 의료진에 대한 폭행이 206건이나 있었다. 위계 및 위력(115건), 협박(61건), 난동(47건) 등이 벌어졌다.

 

폭력은 응급실, 정신과 등이 갖춰진 규모가 있는 병원에서 자주 발생한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2015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121건의 폭행·난동이 있었다. 같은 기간 국립대병원 중 가장 많은 수다.

◆보안 장비·인력 확충 지원… 신뢰구축 요구도

안전한 진료환경에 대한 요구 목소리가 높아지자 법과 관련 대책이 마련됐다.

국회는 ‘임세원법’으로 불리는 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의료인 폭행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다. 의료기관에서 의료인을 폭행해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상 7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중상해는 3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 사망은 5년 이상 징역 또는 무기징역에 각각 처하도록 처벌을 높였다. 의료기관이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의료인과 환자 안전을 위한 보안 장비를 설치하고 보안인력을 배치하도록 하는 내용도 개정안에 담겼다. 이에 정부는 100병상 이상 의료기관에 경찰과 연결된 비상벨을 설치하고, 1명 이상의 보안인력을 의무적으로 배치하도록 했다. 앞서 2018년 말에는 응급실에서 응급의료 종사자에게 상해를 입혔을 경우 10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상 1억원 이하 벌금, 중상해는 3년 이상 유기징역, 사망은 5년 이상 징역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는 내용으로 응급의료법이 개정됐다.

각 병원도 자체적으로 보안인력을 추가 배치하는 등 안전 강화 조치를 취했다. 위험 상황에서 대피할 수 있는 뒷문을 진료실에 설치하고, 정신건강의학과를 중심으로 비상벨도 추가로 설치했다. 원하는 의료진, 병원 직원들에게 호신용 스프레이를 지급한 병원도 있다. 강북삼성병원의 경우 위급상황 때 사용할 수 있는 액자형 방패를 책상에 배치했다. 환자가 보기엔 이미지 액자지만, 뒤에는 방패용 손잡이가 달려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상벨·비상문 설치와 보안인력 확충 등은 비용이 들어가는 문제로, 규모가 크지 않은 병원에서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대한병원협회에 따르면 비상벨은 1개 설치에 30만원, 유지에 연간 300만원이 들고, 보안인력 1명은 연 2000만∼3000만원이 필요하다. 정부는 수가를 만들어 건강보험 재정으로 지원한다는 계획이지만 아직 지원 수준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처벌 강화 법안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동네병원인 경우 지역사회에서 계속 진료해야 하기에 환자에게 강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의협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7명꼴(71.3%)로 경찰 신고나 법적 대응을 하지 않았다. 법적 대응을 했더라도 경찰이나 사법 관계자의 설득과 권유로 고소·고발 등을 취하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61.3%는 폭언·폭력을 행사한 환자나 보호자를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진료실에서 만난 것으로 조사됐다. 의료현장에서의 폭력을 막기 위해 의사와 환자 간 신뢰 회복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다. 의협 조사에서 환자나 환자 보호자가 폭언·폭력을 행사한 이유로 증상의 지속이나 악화 등 진료 결과에 대한 불만(37.4%), 진단서·소견서 등 서류 발급과 관련한 불만(16%) 등이 꼽혔다.

의협은 “의료기관 내 안전문제는 단순히 의료진만이 아니라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 추후 의료진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자의 생명·건강과 연결된 문제”라며 “의료계에 주는 시혜가 아니라 사회 안전망 보완이라는 관점에서 의료진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진국선 어떻게 하나

 

선진국에서는 의료진 안전과 의료기관 내 폭력 근절을 위해 시설 등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

 

10일 국회 입법조사처 ‘의료기관 종사자에 대한 폭력 관리 현황 및 개선 과제’ 보고서 등에 따르면 먼저 미국은 산업안전보건청에서 병원 응급실, 정신과 관련 시설, 지역사회 정신과 의원, 약물중독치료센터와 약국, 지역사회돌봄센터, 장기요양시설 등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와 간호사, 간호조무사, 각종 치료요법 전문가, 가정방문 서비스 제공자 등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가이드라인은 의료 및 사회 서비스 제공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유형의 폭력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환경을 개선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진료실과 병동 간호사실 등에 보안·무음경보 시스템과 돌발 상황용 버튼 설치, 개인용 호출기와 쌍방향 무전기 활용 등을 예로 들었다. 진료실 환경과 관련해서는 △가능하면 2개의 출구를 갖출 것 △응급상황 대비체계를 갖춘 안전한 진료실을 의료진에 제공할 것 △탈출구가 명확히 인식되도록 가구 등을 배치할 것 등을 제시했다.

실내는 무기로 사용될 위험이 없는 의자 등의 집기로 구성하고, 대기실은 환자의 편안함을 최대화하고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환경을 조성하라고 했다. 실내외 폐쇄회로(CC)TV, 모퉁이 곡면거울 설치, 관찰이 용이한 유리 재질의 문과 벽 설치 등은 위험 상황을 감시할 수 있는 환경이다.

 

영국도 보건안전처에서 의료 및 사회복지와 관련된 모든 종사자에 대한 폭력,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놓고 있다.

 

가이드라인은 욕설, 폭언, 위협, 공격 등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폭력을 정의한 뒤, 환경 등 문제를 진단하고 예방을 위해 조치를 취해야 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직원들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물리적인 장치로는 비디오카메라나 알람 시스템, 직원이 있는 측의 단을 높인 접수대 등을 예로 들었다. 또 경보 시 지역 경찰서와 연계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갖추고, 위급 상황 시 외부와 연결될 수 있는 전화 및 외부 CCTV 등을 권고했다. 직원 공간과 분리하는 문에는 비밀번호 등 잠금장치를 설치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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