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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빳빳한 상자 찾고, 접고, 물건 쏟고”…박스포장 규제한 마트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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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1-04 09:00:00 수정 : 2020-01-04 10:4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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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서울 중구의 한 대형마트 고객이 자율포장대에서 물건을 담기 적합한 상자를 찾고 있다.

“이거 좀 불안한데…괜찮겠죠?”

 

지난 1일 서울 중구의 한 대형마트 자율포장대 앞에서 만난 기모(34)씨가 물건을 한가득 담은 박스를 들자 바닥으로 물건이 우수수 떨어졌다. 박스를 제대로 고정하지 않고 무거운 물건을 담은 게 화근이었다. 기씨는 “오늘부터 테이프가 없어지는 걸 모르고 있었다”며 “접어도 단단할 정도로 더 빳빳한 상자를 골라야 했다”고 후회하며 다시 물건을 주워 담았다.

 

대형마트 3사(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는 이날부터 환경보호를 위해 자율포장대 내 포장용 테이프와 노끈을 없앴다. 당초 환경부와 마트들은 자율포장대 자체를 없애기로 협의했지만 소비자들이 불만을 제기하자 우선 테이프와 노끈을 제거하고 상자는 기존처럼 제공하기로 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갑자기 없어진 테이프와 노끈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지난 1일 서울 중구의 한 대형마트 자율포장대에서 고객들이 물건을 가져가기 위해 종이상자를 접고 있다.

◆ “괜찮은 상자 어디 없나요?” 종이접기에 분주해진 자율포장대

 

테이프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 만큼 자율포장대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상자를 접어서 집까지 가져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상자가 작거나 흐물흐물한 상태면 아무리 잘 접어도 물건을 담기 힘들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좋은 상자를 찾기 위한 움직임으로 분주했다. 일부 고객은 무거운 물건은 들고 가벼운 물건만 상자에 담기도 했다. 가족과 함께 마트를 찾은 강모(57)씨는 “고정하지 않고 무거운 상품을 넣으려니 아무래도 불안하다”며 “부피가 크고 가벼운 물건만 박스에 함께 담고, 계란이나 음료 같은 것들은 직접 들고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앞서 마트 내 종이 쇼핑백과 비닐봉지가 사라진 상황에서 자율포장대까지 규제된다는 소식을 듣고 장바구니를 미리 준비한 고객도 많았다. 김모(37)씨는 “올해부터 박스 테이프가 없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장바구니를 차에 항상 비치해뒀다”며 “마트에 물건 한두 개만 사려고 왔다가 여러 물건을 사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만 급한 대로 상자를 이용하게 될 거 같다”고 했다.

 

일부 마트는 장바구니 대여서비스를 내놨다. 이마트는 56L 대형 장바구니를, 홈플러스는 57L 대형 장바구니를 각각 3000원, 4000원의 보증금을 받고 빌려줬다. 롯데마트는 17L, 46L 용량의 대형 장바구니를 각각 500원과 3000원에 판매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2017년부터 대여 장바구니 서비스를 운영하다 고객들의 이용률이 저조해 그만뒀다”며 “자율포장대 규제에 따라 고객들의 불편이 예상되는 만큼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형마트에 게시된 자율포장대 안내문. 올해부터 자율포장대에는 종이 상자만 남고 테이프와 끈이 사라졌다.

◆ 자율포장대에서 연간 발생하는 쓰레기만 상암구장 857개 규모…“환경 위해 불편 감수해야”

 

고객들의 불편 호소에도 환경부가 대형마트의 자율포장대 규제에 나선 건 환경개선 효과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대형마트 3사에서 연간 사용되는 포장용 테이프와 끈 등은 658t으로 서울 상암구장(9126㎡) 857개를 덮을 수 있는 양이다.

 

특히 자율포장대에 놓인 종이박스는 재활용이 잘 되지만 테이프 등으로 감겨 배출되면 재활용에 애를 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9월부터 마트 내 종이상자를 전면적으로 없앤 제주도의 경우 고객들의 장바구니 사용 습관이 성공적으로 정착됐다는 사례도 대형마트 자율포장대 규제의 배경이 됐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마트 내 종이상자는 대용량 비닐봉지의 대안으로 나왔는데 이때도 장바구니로 가기 위한 임시 대체재 같은 취지였다”며 “종이상자를 제공하는 나라가 한국이 유일하며 처음에 어려워 그렇지 고객들이 장바구니를 사용하다보면 금방 적응할 거라 보고 있다”고 내다봤다.

경기도 안양시의 한 대형마트에 게시된 대여용 장바구니. 보증금 3000원을 내면 56L 대형 장바구니를 빌릴 수 있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이사장도 “테이프를 돌돌 만 박스는 재활용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마트가 그런 걸 제공해서 쓰레기를 발생시켰다는 비판도 일었다”며 “처음에는 마트들이 자율포장대를 없앤다고 했다가 상자를 남겨둔 것은 소비자 불만에 따라 크게 양보한 것인데 소각장과 매립장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쓰레기 자체를 줄이는 일이기 때문에 환경적 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택배 상자도 테이프를 감아놓거나 송장이 붙어있으면 일일이 분리배출하기가 어려워 재활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환경을 위해 시민들이 어느 정도 불편을 감수해 달라”고 조언했다.

 

글·사진=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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