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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사랑한 인류 큰 스승… ‘큰 사명’ 중단 없는 전진 [문선명 총재 탄신 1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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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1-01 02:00:00 수정 : 2020-01-21 09:4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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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계승 발전하는 文 총재 업적 / 1954년 통일교 창시 본격 선교활동 / 국내외적 탄압에도 종교화합 진력 / 1976년 워싱턴 집회에 30만명 운집 / 고르바초프·김일성과 역사적 만남 / 세계정치 변혁·남북 화합에 큰 족적 / 리틀엔젤스 등 창단 한국 문화 전파 / 한학자 총재 ‘인류 한가족’ 유업 계승 / 지구촌 순회 참가정운동·평화 행보

문선명 총재는 1920년 음력 1월 6일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6·25전쟁이 나면서 부산으로 피란을 왔고, 1954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창설, 본격적인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이즈음 해외로도 눈을 돌려 수교가 이뤄지지 않은 1958년 일본에서, 1959년에는 미국에서 선교를 시작했다. 기존 기독교계의 편견과 오해, 박해가 이어졌지만 문 총재는 통일교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초로 평화, 통일, 문화, 종교화합, 여성, 청년, 언론,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놀라운 성과를 일궈냈다. 이런 결실은 2012년 성화 이후에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한학자 총재에게로 이어지며 발전하고 있다.

 

◆“종교 간 화해는 평화세계를 위한 첫걸음”

문 총재의 본격적인 전도는 평양에서 시작되었으나 북한의 종교탄압으로 흥남감옥에 수감되는 시련을 겪었다. 6·25전쟁 발발 후 남한으로 내려온 뒤 부산에서 성경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서술한 ‘원리원본’을 집필했다. 본격적인 선교활동이 시작된 것은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창립 이후였다. 당시 연세대, 이화여대, 건국대 등을 중심으로 많은 지식인들이 입교했다. 가정연합은 “해방, 분단, 전쟁이 이어지며 인생에 대해 회의하던 지식인들에게 통일원리는 새로운 빛이 되었다”고 밝혔다.

 

문 총재는 일찍부터 해외에도 관심을 두었다. 1950년대 말 일본, 미국에서 선교가 시작됐다. 일본과는 정식 수교가 이뤄지기 전이라 선교활동 자체가 위험천만한 일이기도 했으나 급속도로 일본인들의 지지를 이끌어냈고, 일본은 지금 통일교 신자가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가 됐다. 미국에서 역시 동양의 가난한 나라인 한국에서 온 지도자에게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문 총재와 통일교 신자들은 ‘무니’(mooni)라고 불리며 차별을 받았다. 그러나 선교활동은 꺾이지 않았고 1976년 9월 워싱턴광장에서 30만명에 가까운 미국인들이 모인 집회가 열려 미국 종교계에 충격을 주었다.

 

종교지도자로서 문 총재는 종교 간의 화해, 협력이 세계평화를 위한 기초라는 인식 아래 종교화합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했다. ‘초교파협의회’, ‘국제종교재단’, ‘세계종교회의’ 등을 창설했고 북한에까지 교회를 설립했다. 문 총재의 이 같은 의지는 지금도 이어지며 발전하고 있다. 한 총재는 지난 28일 미국 뉴욕에서 세계성직자협의회(WCLC) 창립 3만명 대회를 개최하는 등 종교화합에 진력하고 있다.

 

1991년 12월 문선명 총재와 북한 김일성 주석이 환한 표정으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문 총재와 김 주석은 당시 만남에서 한반도의 평화 실현을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평화는 문 총재가 평생에 걸쳐 매달린 화두 중의 하나다. 2009년 자서전을 발행하며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라는 제목을 달았고, 서문에서 “평화세계로 가는 지름길을 찾아 정치를 변화시키고 사상을 바꾸는 일에 열중했다”고 고백했다.

문선명·한학자 총재 내외가 1990년 4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이런 행보 중에 지금도 역사의 한 장면으로 뚜렷이 기억되고 있는 것이 1990년 4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과의 회담, 1991년 12월 북한 김일성 주석과의 만남이었다. 김일성 주석과의 만남에서 문 총재는 5가지의 합의사항을 이끌어냈는데, 지금도 남북관계의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는 사안들이 담겨 있었다. 고령자를 우선으로 한 이산가족찾아주기 사업 추진, 핵에너지의 평화적 사용, 북한의 평화적 경제사업에 대한 통일그룹의 지원, 남북정상회담의 개최, 금강산 개발의 실시가 그것이다.

 

문선명 총재가 서울에서 열린 한 대회에서 평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문선명, 한학재 총재 내외가 미국 52개 도시 순회강연의 마무리를 앞두고 열린 워싱턴 대회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문 총재의 평화와 관련된 활동은 비단 정치적인 부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인종, 종교, 문화, 국적 등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온갖 분쟁과 갈등의 최종적인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이에 따라 ‘세계평화초종교초국가연합’, ‘세계평화정상회의’, ‘국제평화재단’ 등을 만들고 이끌었다. 그중 하나인 천주평화연합(UPF)은 각 대륙의 주요 국가를 순회하며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한 총재는 UPF 주최로 지난 14∼15일 도미니카에서 열린 ‘2019 중남미·카리브해 서밋’에서 “중남미·카리브해 33개국을 순회하며 참가정운동과 평화 비전을 전하는 강연을 했다”며 “2020년에 한국에서 대규모 정상회의를 개최하니 중남미에서도 동참해 하늘부모님의 뜻과 하나되어 함께 평화를 이루자”고 촉구했다.

리틀엔젤스예술단이 해외에서 꼭두각시 공연을 하고 있다.

◆한국의 문화 세계에 알려지길…

지난 6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리틀엔젤스는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궁궐에서 추던 것으로 알려진 진쇠춤을 바탕으로 한 신작 ‘진쇠놀이’를 선보였다. ‘친선과 우정의 외교사절’로서 반세기가 넘는 역사를 쌓아 온 리틀엔젤스가 새로운 미래를 준비 중임을 보여주는 무대였다. 문 총재가 리틀엔젤스를 창단한 것은 1962년이었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시절이었으나 어린이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평화의 천사”가 되어 세계에 한국의 문화를 알려주기를 기대했다. 리틀엔젤스는 1965년 9월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위한 특별공연’을 시작으로 50여 개국 정상과의 만남에서 민간 평화사절단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60여 개국 해외공연, 7000여회 국내외 공연, 600회 이상의 TV 출연 등으로 이런 기대에 부응했다. 문화분야에 대한 문 총재의 관심은 각별해 리틀엔젤스뿐 아니라 유니버설발레단, 한국문화재단 등을 창단하고 설립했다.

 

리틀엔젤스예술단이 전통무용을 선보이고 있다.

또 평화세계 구현을 위한 언론의 역할을 강조하며 세계일보, 미국의 워싱턴타임스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 신문사, 방송국, 출판사 등을 세워 건전한 여론을 형성하는 데 앞장섰다. 경복초등학교, 선화예술중·고등학교, 청심국제중·고등학교, 선문대 등을 설립한 것은 ‘애천(愛天)·애인(愛人)·애국(愛國)’하는 인재를 키우기 위한 것이었다.

축복결혼식에 참석한 부부들

가정연합은 “문선명, 한학자 총재는 빈부격차 해소와 기술평준화를 통해 인류의 행복을 구현하려 과학기술 개발과 경제산업 분야에도 일찍부터 진출했다”며 “한국의 통일그룹, 일본의 해피월드, 미국의 트루월드 등 산업체를 운영했다”고 소개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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