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3일 문선명 총재가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국내는 물론 해외의 정·재계, 문화계, 종교계 등 각 분야에서 국경, 이념을 초월해 애도의 뜻을 밝혔고, 수많은 시민들이 분향소를 찾아 애도했다. 각국의 주요 언론은 성화 소식을 주요 기사로 다루며 문 총재의 삶과 업적을 보도했다.
참배가 시작된 9월 6일 빈소가 마련된 경기도 가평의 청심평화월드센터에 일본인 3000여 명을 포함해 1만5000여 명이 다녀간 것은 당시의 추모 열기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이 같은 분위기는 국내외 언론 보도에도 반영됐다. 청심평화월드센터에는 국내 신문, 방송의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세계 유력 언론의 보도도 이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문 총재의 유년시절을 상세하게 소개하며 통일교의 창시자가 된 과정과 배경을 설명했다.
뉴욕타임스는 “1960, 70년대 서구에서 새 종교 운동과 대안 신앙의 큰 흐름을 주도했다”고 평가했으며 BBC는 1990년대 문 총재가 김일성 주석을 만난 사실과 당시 세계적으로 신도가 700만 명에 이른 통일교의 정치, 사회적 영향력을 조명했다.
국내외 주요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지는 가운데 특별히 관심을 끈 것은 북한의 김정은 당시 국방위 제1위원장이었다.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된 조전에서 김 위원장은 “세계평화연합총재 문선명 선생이 병환으로 서거했다는 슬픈 소식을 접해 한학자 여사와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라며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나라의 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해 기울인 문선명 선생의 노력과 공적은 길이 전해지게 될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북한은 평양에 분향소까지 마련했고, 당시 정권의 실세이던 장성택이 김 위원장 명의의 조화를 가져와 추모의 뜻을 다시 전했다. 문 총재에게 ‘조국통일상’도 수여했다. 북한의 각별한 관심과 추모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생전에 문 총재가 기울인 노력의 정도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강구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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