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플랫폼 기업에 과세… 기본소득으로 재분배해야”

입력 : 2019-12-04 05:30:00 수정 : 2019-12-04 00:56:18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박원순 시장·‘노동 없는 미래’ 저자 던럽 박사 대담 / 구글·에어비앤비 등 플랫폼 사업자 / 막대한 부 독점…소수 엘리트만 혜택 / 플랫폼 노동자들은 노동권 사각지대 / AI 등 기술 발달로 일자리마저 위협 / 기술 혁명에 ‘탈 노동’ 가능하지만 / 비정규직 증가 등 또다른 문제 발생 / ‘플랫폼 경제’ 과실 공평하게 나눠야 / 새 변화 대응 지방정부 역할 중요
“(우버·에어비앤비 같은) 플랫폼 기업에 실질적 과세가 가능해져야 한다. 그 과세로 이뤄진 정부 예산은 기본소득으로 재분배할 필요가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전적으로 동의한다. 플랫폼 경제의 경향을 보면 부가 편중되고 소수가 혜택을 보고 있다. 혜택받는 기업에 과세해서 시민에게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나눠 줘야 한다.”(팀 던럽)
박원순 서울시장(오른쪽)이 3일 서울시청 시장 집무실에서 ‘노동 없는 미래’ 저자이자 호주 정치철학가인 팀 던럽과 ‘노동 없는 미래를 대비하는 우리의 자세’를 화두로 대담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구글, 페이스북 같은 공룡 기업은 지구촌 수십억 이용자의 시간과 정성을 먹고 자랐다. 그러나 모바일 혁명의 달콤한 과실은 이용자들에게 고루 돌아가지 않았다. 소수의 엘리트가 수익을 독점하면서 상위 1% 대 하위 99%로 불평등이 깊어지리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인공지능(AI) 등 기술의 발달은 일자리마저 위협하고 있다.

기술혁명을 ‘인간을 위한 혁명’으로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머리를 맞대기 위해 박 시장이 3일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호주 정치철학가 던럽 박사를 만났다. 이들은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노동·재화가 거래되는 ‘플랫폼 경제’에 대비하려면 거대 독점 기업에 과세하고 이렇게 모인 재원을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분배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탈노동’ 통해 자유로워지려면

베스트셀러 ‘노동 없는 미래’의 저자인 던럽 박사는 ‘2019년 좋은 일자리 도시 국제포럼’에 참여하기 위해 방한했다. 4일까지 서울시 주최로 열리는 이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맡았다. 포럼 기간에는 노동분야 최초의 도시 간 국제기구인 ‘좋은 일자리 도시협의체’도 발족했다. 서울시 주도로 만들어진 국제기구로 국내외 40여개 도시가 참여했다.

던럽 박사는 연설에서 ‘기술이 노동의 의미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를 내다봤다. 세간의 두려움과 달리 그는 미래를 낙관한다. 기계가 노동을 대신하게 하고, 인간은 일에서 해방되는 ‘탈 노동’이 가능하리라고 자신의 저서를 통해 주장한다. ‘모든 노동은 로봇들에게 맡기고 인간은 평등하게 생산적인 일을 하며 사는 삶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일까’라고 그는 질문한다.

물론 이런 꿈 같은 미래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눈앞에 성큼 다가선 기술혁명의 전조는 암울하다. 미래를 장밋빛으로 바꾸기 위해 정부의 적극 개입이 필요한 이유다.

박 시장은 “4차 산업혁명의 도래에 따라서 굉장히 우울한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도 많다”며 “세계경제포럼에서는 향후 500만개 이상 일자리가 사라지고 200만개가 (새로) 생길 것이라 예측했고, 최근 플랫폼 노동자처럼 굉장히 열악한 지위와 처우에 시달리는 새로운 노동계층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던럽 박사 역시 “플랫폼 경제로 일자리가 불안정해지고 노동조건이 악화하는 게 현실”이라며 “문제를 해결하려면 부의 분배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고, 그 근간이 바로 보편적 기본소득”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최근 플랫폼 사업자, 애플리케이션 사업자가 돈을 크게 벌고 독점하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나 일반 시민도 사실 그 사업에 기여하는 바가 많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에 많은 시민이 (참여해) 어찌 보면 노동을 하는 거다. 그렇지만 실제 보상받는 건 아무것도 없다. 미국 대통령 후보 앤드루 양이 주장하듯, 또 프랑스가 이미 이런 플랫폼 기업에 과세하고 있듯이 앞으로는 (기업이) 돈을 독점하는 부당한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박 시장)

◆‘노동 없는 미래’ 위해 기본소득을

이들은 기술 발달로 만들어진 부가가치를 공평하게 재분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 방법 중 하나가 기본소득이다. 던럽 박사는 기본소득이 생기면 노동자와 고용주 사이 힘의 불균형이 바로잡아지리라 본다. 기본소득이 있으면 해고 당할까, 실업자로 전전할까 벌벌 떨며 열악한 일자리를 감내하는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시장은 “서울시는 청년수당을 도입했다”며 “완벽한 기본소득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한국사회가 아동수당부터 청년수당, 기초노령연금까지 세대별로 기본소득의 틀을 갖춰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재정의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새로운 재원들이 확보되면 얼마든지 가능하고, (이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트렌드”라고 강조했다.

부의 재분배 못지않게 당장 기술 발달로 열악해지는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도 시급하다. 최근 화두는 ‘플랫폼 노동자’다. 모바일 앱을 통해 고객을 만나는 배달노동자나 차량 호출 서비스 ‘우버’ 운전자들은 노동권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박 시장은 “플랫폼 노동자들은 전통적 의미의 노동조합을 구성하기 어렵다 보니 근로기준법, 고용평등법, 산업보건법 등에서 완전히 배제돼 있다”며 “법적으로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19일 서울시가 노동조합 신고필증을 교부한 배달노동자들의 조합 ‘라이더유니온’은 이런 의미에서 희망적 사례로 여겨지고 있다. 현재 한국의 플랫폼 노동자 수는 약 54만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2%를 차지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비정규직은 그대로… 노동조건 개선해야

4차 산업혁명 시대 또 다른 노동 문제는 비정규직이다. ‘탈 노동’의 장밋빛 미래가 도래해도 비정규직은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던럽 박사는 “플랫폼 경제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일반화될 것”이라며 “그래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처럼 대우해 주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박 시장은 “서울시장이 된 이후 2012년부터 시정의 패러다임을 사람 중심으로 전환했고, 그 첫걸음이 노동의 상식 회복이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였다”며 “서울시와 산하기관에 근무하는 1만여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최저임금보다 약간 높은 생활임금을 도입했다”고 전했다.

◆변화는 가장자리에서… 지방분권 중요

기술혁명이 가져올 파고는 만만치 않다. 위기는 동시에 기회다. 박 시장은 “한국사회는 산업화, 민주화 이후로 새로운 사회로의 진전이 멈추고 일종의 중진국의 함정에 빠져 있다”며 “(4차 산업혁명을 맞아) 사회적 변화를 적극 이끌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혁신적·창조적인 사회로 만들어가는 것이 전환의 비전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이를 위해 지방 정부의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중앙정부는 큰 항공모함이라 유턴하기가 어렵고 기동력 있게 대응하기도 힘들다. 지방 정부는 규모가 작고 현장을 다니기에 훨씬 새로운 변화에 센서티브하게 반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지방분권과 자치가 확대될수록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본다. ” (박 시장)

“말씀하신 내용이 모두 맞다. 혁신은 중앙이 아니라 항상 가장자리에서 시작된다. 이건 기업뿐 아니라 정부에도 적용된다. 중앙정부나 대기업은 항상 현상유지를 하고 싶어하고 관성의 법칙을 따른다. 그렇기에 정치적 리더나 작은 기업의 리더가 리더십을 갖고 활동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던럽 박사)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