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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노닐었나… 천하절경 무릉계곡 트래킹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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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1-23 14:00:00 수정 : 2019-11-23 13:3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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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돌 부둥켜서 풍류가 되다/두타·청옥산 거느린 6km 계곡 절경/반석 위 명필가·묵객들 새긴 석각들/이상향과 현세 넘나드는 풍류 느껴져/신라때 창건된 심화사앞 석상들 줄이어/든든한 12지신 사열···천년고찰 지키다/여행객들 자기 띠 앞에서 찰칵/고려 동안거사 이승휴 이곳서 ‘제왕운기’ 짓기도/등산길 내내 감탄 자아내는 풍경

 

신선이 노닐었나 보다. 기암괴석과 넓은 반석, 계곡을 가득 채우며 흐르는 푸른 물과 마음의 때를 씻어내는 폭포까지. 가히 백두대간의 천하절경이다. 직접 보니 알겠다. 왜 무릉계곡인지. 꿈속의 이상향 유토피아. 무릉도원이 실재한다면 바로 이곳일 테다.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갈 때 선비들이 넘던 길. 고되면 무릉반석에 다리를 쭉 펴고 앉아 약주 한잔으로 마른 목을 축였다. 수려한 풍경에 저절로 샘솟는 시 한수를 짓는 데 반석이 종이다. 그들의 풍류는 오랜 세월이 지나 후손들에게 죽기 전에 꼭 가야 할 아름다운 계곡을 선물했다.

 

#이상향을 찾아가는 무릉계곡 트레킹

 

강원도 동해시 무릉계곡 입구에 도착하니 붉게 타들어가는 단풍나무 사이로 노래가 들려온다. 1980년대 ‘파초’ 등으로 이름을 날린 쌍둥이 형제가수 수와 진의 형 안상수가 기타 하나를 들고 촉촉한 음성으로 가을감성을 자극한다. 그동안 그가 자선공연으로 살린 심장병 어린이가 1000명이 넘는다니 천사가 따로 없다. 작은 정성을 보태본다.

 

무릉계곡

 

삼화동 초입에서 용추폭포에 이르는 6km의 무릉계곡은 두타산과 청옥산을 좌우에 거느리고 기암괴석이 입구부터 끊임없이 펼쳐진다. ‘용오름길’로도 불리는데 이곳에 자리 잡은 천년고찰 삼화사의 창건설화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삼화사를 처음 지을 때 약사삼불(藥師三佛)인 백(伯)·중(仲)·계(季) 삼형제가 서역에서 동해로 용을 타고 왔단다. 무릉계곡을 품고 있는 두타산은 1353m로 꽤 높아 약사삼불은 용을 타고 두타산을 올랐다. 전설처럼 용이 계곡을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며 계곡을 멋대로 마구 휘저어 놓은 듯하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빼어난 절경을 조각해 놓았으니 탄성이 저절로 난다. 맏형은 흑련대, 둘째는 청련대, 막내는 금련대에 머물렀는데 이곳이 지금의 삼화사, 지상사, 영은사로 전해진다.

 

무릉계곡 입구

 

무릉계곡 초입에 맑은 물이 흐르는 호암소를 만나는데 역시 옛이야기가 전해진다. 삼화사에서 법력이 뛰어난 큰스님을 모시는 상좌스님이 절을 찾은 아리따운 규수를 흠모해 상사병에 빠진다. 어느날 그 규수집에서 저녁공양을 들면서 여인을 마음껏 볼 수 있었지만 집을 나서니 그리움은 더 커졌다. 삼화사로 돌아오는 길에 커다란 호랑이가 나타나자 큰스님은 도력을 발휘해 10m 거리의 소를 한걸음에 뛰어넘었지만 번민이 가득한 상좌스님은 머뭇거렸다. 큰스님의 호통에 정신을 차린 상좌스님은 여인을 향한 연민을 내려놓았고 그제야 소를 한걸음에 건너뛰었는데 호랑이도 이를 따르다 소에 빠져 죽었단다.

 

무릉반석
양사언 초서체(가운데)

 

전래동화 같은 얘기를 뒤로하고 10분 정도만 오르면 세상에 둘도 없는 풍경, 무릉반석이 펼쳐진다. 무려 5000㎡가 넘어 2000명이 동시에 즐길 수 있을 정도로 광활하다. 자세히 보니 반석에 새겨놓은 수많은 크고 작은 글자가 눈에 띈다. 이곳을 지나는 명필가와 묵객들이 석각했다. 그중 으뜸은 초서체로 써놓은 무릉선원(武陵仙源), 중대천석(中臺泉石), 두타동천(頭陀洞天). ‘신선이 노닐던 이 세상의 별천지, 물과 돌이 부둥켜서 잉태한 오묘한 대자연에서 잠시 세속의 탐욕을 버리니 수행의 길이 열린다’는 뜻을 담았다. 강릉부사를 지낸 봉래 양사언이 재직기간에 써놓은 초서체로 전해지는데 이상향과 현세를 넘나드는 옛 선인들의 풍류와 기개가 느껴진다. 반석에 팔베개를 하고 누어본다. 단풍에 물든 산과 푸른 하늘,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어우러지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단원 김홍도 금강사군첩 무릉계

 

단원 김홍도 역시 무릉계곡에 푹 빠졌던 듯하다. 그의 작품 금강사군첩 무릉계가 바로 44살이던 1788년 무릉계곡을 그린 산수화다. 그는 정조의 어명으로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둘러보며 화첩을 만들었는데 무릉반석에서 풍류를 즐기던 선비와 백두대간의 산세, 특히 소나무 한 그루까지도 아주 상세하게 묘사했다.

 

 

템플스테이

# 늦가을, 단풍과 폭포의 어울림에 빠지다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천년고찰 삼화사 앞에는 12지신 석상이 줄지어 서 있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여행자들은 자신의 띠 석상을 찾아 인증샷을 찍기 바쁘다. 10여개 부속암자를 보유한 사찰로 동안거사 이승휴가 이곳에서 불경을 빌려보며 중국과 한국의 역사를 운율시 형식으로 담은 ‘제왕운기’를 집필했다고 한다. 삼화사를 조금 지나면 산속에 푹 파묻힌 고즈넉한 한옥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템플스테이를 즐길 수 있다.

 

학소대

 

삼화사에서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되는데 학소대, 병풍바위, 장군바위, 선녀탕, 쌍폭포, 용추폭포 등 감탄을 자아내는 풍경들이 끊임없이 나타나니 지루할 틈이 없다. 비교적 평탄한 코스로 천천히 걸어서 2시간 정도면 왕복할 수 있다. 삼화사를 지나 관음암으로 가는 길목 초입에 있는 학소대는 학이 뛰어놀던 곳. 이제 학은 없지만 겹겹의 화강암이 만든 병풍 같은 절벽을 뚫고 유유히 흘러내리는 폭포가 마음에 ‘쉼표’를 찍는다. 넓은 소로 장쾌하게 쏟아지는 폭포는 아니라 화려함은 없다. 그저 바위의 굴곡을 따라 묵묵히 흘러갈 뿐이다. 물줄기가 바라보니 한걸음씩 끊임없이 걸어가야 하는 인생 같다. 폭포는 어차피 가야 할 길, 이제 좀 천천히 가보자고 속삭인다. 오르다 보면 ‘당신과 천천히 마음산책 중’이라 적힌 벤치들이 나온다. 급할 것 없으니 쉬었다 가자.

 

쌍폭포
용추폭포

물빛이 옥색으로 빛나는 옥류동과 선녀들이 목욕을 했다는 선녀탕을 지나 계곡 끝까지 들어가면 다리가 아파올 즘 반가운 현수막이 나타난다. ‘쌍폭·용추 다 왔다 만세’. 무릉계곡을 찾은 많은 여행객의 목적지다. 소나기가 쏟아지듯 시원한 물소리가 나는 곳으로 따라가니 무릉계곡의 정수, 쌍폭포가 드디어 비경을 드러낸다. 왼쪽 폭포는 계단식 절벽의 굴곡을 따라 조금 느리게, 오른쪽 폭포는 소를 향해 수직으로 아주 빠르게 쏟아져 내린다. 수량이 풍부해 듀엣 가수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듣는 것 같다. 쌍폭에서 2∼3분을 더 오르면 ‘쌍폭의 어머니’ 용추폭포가 등장한다. 예전에 가뭄이 들 때면 기우제를 지낸 곳이다. 단아하게 3단으로 쏟아지는 용추폭포가 아래로 흘러가며 쌍폭포로 이어지니 마치 어미와 자식 같다. 

 

추암 촛대바위

#애국가를 장식한 추암 촛대바위

 

능파대(凌波臺). ‘미인의 걸음걸이’라는 뜻이 담겼는데 조선시대 강원도 체찰사를 지낸 한명회가 빼어난 풍경이 반해 이런 이름을 붙였단다. 바로 애국가 첫 소절의 배경화면으로 나오는 추암 촛대바위가 이곳에 있다. 일출 때 바다 위에 길쭉하게 솟아오른 촛대바위 꼭대기에 해가 걸리는 모습이 장관이라 많은 여행자를 새벽에 불러 모은다. 일출도 좋지만 하늘이 높고 푸르러 투명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요즘 한낮이 촛대바위를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시기다. 능파대에 올라서면 형제바위, 두꺼비바위, 거북바위, 부부바위, 코끼리바위 등 작은 바위섬과 추암해수욕장의 깨끗한 백사장, 한가로운 어촌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천곡황금박쥐동굴

천곡황금박쥐동굴도 가족 여행자들에게 인기다. 4억∼5억년 전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굴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도심에 있는 동굴로 1991년 아파트 공사를 하던 중 발견됐다. 1996년부터 일반에 공개됐는데 총길이 1.5km의 석회암 수평동굴이다. 몸 색깔이 붉으면서 황금빛이 도는 천연기념물 황금박쥐가 사는데 일년에 한두 차례 모습을 보여준단다. 박쥐는 오복의 상징이며 덕을 많이 쌓는 사람의 행복을 방해하는 귀신을 쫓는 표상. 특히 황금박쥐는 사악한 기운을 막는 큰 복의 징표로 여겨진다니 운 좋으면 황금박쥐를 만날 수 있다. 

 

대게

금강산도 식후경. 동해에 왔으니 싱싱한 해산물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추암해변 인근의 동해러시아대게 마을에서는 무한리필 대게를 맛볼 수 있다. 

 

동해=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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