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건보 먹튀’ 외국인 막으려다… 가난한 이주민만 등골 빠져 [이슈 속으로]

입력 : 2019-11-02 18:00:00 수정 : 2019-11-05 09:41:4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건강보험제도 개정의 ‘그늘’ / 단기간 국내 체류 재외국민·외국인 / 싼값에 지역건보 가입해 고가 진료 / 30만원 내고 2억 넘게 혜택 받기도 / 도덕적 해이에 국민적 분노 들끓어 / 복지부, 외국인에 보험료 징수 강화 / 4회 이상 체납 땐 체류 불허 ‘초강수’ / 부모·성년자녀는 건보대상에서 빠져 / 보험료 미납 속출 … 차별 논란도 거세

암 환자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취지로 미국에서의 직장암 4기투병기를 유튜브에 소개한 여성 유튜버 A씨가 최근 ‘건강보험료(건보료) 먹튀(제역할을 하지 않은 채 혜택만 받고 떠난다는 의미)’ 논란으로 온라인상에서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에 사는 A씨가 5년 전 암 치료를 위해 한국에 왔다 갔다는 설명이 담긴 영상이 지난달 26일쯤부터 각종 커뮤니티에 공유된 게 발단이었다. 영상에 따르면 임신상태로 암 진단을 받은 A씨는 미국에서 출산한 뒤 “두 아이를 놓고 (치료를 위해) 한국행을 결정했다”며 곧바로 한국으로 가 암치료를 받았고 이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를 본 누리꾼 사이에서 A씨가 저렴한 비용으로 고액의 암치료를 받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며 ‘건보료 먹튀’라는 쓴소리가 나왔다. 해당 유튜브에는 “한국 와서 건보 혜택만 쏙 받고 그 돈 아껴 여행 다니나 보다”, “당신 나라(미국)에서 치료받아라”라는 등의 비난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이에 A씨의 남편이라고 주장한 한 누리꾼이 “여러분의 의료보험비를 통해 혜택을 본 것을 인정한다”면서 “처음부터 법의 허점을 노리고 또는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한국에서 치료를 받은 것이 아니고 그냥 어떻게든 살기를 희망했다”고 해명했지만 비난 목소리가 수그러들지 않았다. 결국 A씨는 지난달 29일 자신의 유튜브 계정을 비공개 전환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건강보험 시스템의 허점을 악용하는 검은 머리 외국인들의 탈세행위를 차단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지난달 31일 기준 1만9400명 이상이 동의했다.

◆정부, 건보료 먹튀에 대한 비판 여론에 건보제도 손질

재외국민과 외국인이 짧은 시간 국내에 체류하며 지역 건강보험에 가입해 싼값으로 고가의 진료를 받는 일명 ‘건보료먹튀’ 사례는 그동안 여러 차례 보고돼 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 외국인은 30만원의 보험료를 내고 2억5000만원의 보험혜택을 받았고, 또 다른 외국인은 5년간 300만원의 보험료를 내고 6억원가량의 혜택을 누렸다. 외국인 및 재외국민 지역가입자 건강보험 재정수지 적자액도 2013년 987억원에서 2017년 2051억원으로 급증했다. 국내 건강보험 보장률(진료비에서 건강보험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 67.2%로 문재인 대통령이 보장률을 70%까지 높인다고 공약하면서 외국인의 고가 진료 먹튀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졌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부터 지역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하기 위한 재외국민 및 외국인의 의무체류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렸고 건강보험가입을 기존 ‘임의선택’에서 ‘의무화’하도록 건강보험제도를 손질했다. 이에 따라 외국인이 국내 체류 6개월 이후 4회 이상 건보료를 내지 않을 땐 국내체류를 불허했다. 또 외국인의 소득, 재산 파악이 어렵다는 점을 들어 영주(F-5), 결혼이민(F-6) 체류 자격자를 제외한 외국인의 건보료는 국내 가입자의 평균 보험료(올해 기준 월 11만3050원) 이상을 내도록 했다. 건강보험제도 개정 후 외국인 건강보험 가입자는 지난 9월 기준 125만2000명을 돌파했다. 석 달간 증가한 외국인 건강보험 가입자가 28만5000명에 달한다. 특히 외국인 지역건강보험 가입자는 지난해(29만9688명) 대비 올해 7월 기준 1.6배(49만1323명) 증가했다.

◆얌체족 막으려고 ‘먹튀 방지턱’ 높이자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 등 불똥

일부 얌체 재외국민과 외국인의 건보재정 악화 행위를 막기 위해 건보제도가 바뀐 후 한국에 거주하는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 등의 시름은 깊어졌다. 직장 건강보험 가입이 힘든 일용직 종사자 등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나 마땅한 수입이 없는 외국인들은 국내 가입자 평균 이상인 지역건보료를 부담하는 게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인 세대주의 경우 배우자와 미성년자 자녀까지만 건강보험을 적용받게 돼 이외의 가족 구성원은 건보료를 각자 부담해야 하는 실정이다.

국내 제조업체에서 일하다 최근 직장을 잃은 동생(29)과 역시 무직인 어머니(51)와 함께 살고 있는 중국동포 B(32)씨의 집에는 매달 건보료 고지서 3개가 날아온다. 건설 일용직인 B씨의 월 수입은 200만원 정도인데 이 중 30만원이 넘는 돈이 건보료로 나가는 셈이다. 한국에서 딸과 손녀를 데리고 사는 고려인 김모(63)씨 가정도 공장에서 일하는 딸이 최저임금 수준으로 받는 급여가 전부이지만 법 개정 이후 매달 22만6100원의 건보료를 부담하고 있다.

이는 당사자들에게 건강보험 가입을 꺼리게 만들고 합법 체류자들을 불법 체류자로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국인 건강보험 의무화에 따라 가입비를 체납하면 체류자격 자체를 잃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건강보험 개정 이후 보험료 부과 대상은 27만1369가구가 추가됐지만 8만1840가구(30%)는 보험료를 체납하고 있었다. 외국인 지역건강보험 가입자들의 체류자격은 주로 재외동포(31.8%), 방문취업(23.6%), 영주(12.1%), 방문동거(10.5%) 등으로 상당수가 국내 평균 보험료 이상 부담 대상이다.

한국이주노동재단 안대환 목사는 “농어축산업에 종사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은 직장 건강보험 가입이 여의치 않은 데다 월 170만~200만원 수준의 임금을 받아 지역건강보험가입에 부담을 느낀다”며 “건강보험을 개정할 때 설계를 치밀하게 하지 않은 탓”이라고 꼬집었다.

◆복지부 “현장 모니터링, 연구용역 나서”

일부 이주민 관련 단체는 ‘이주민 건강보험 차별 폐지를 위한 공동행동’을 구성해 더불어민주당 귀환중국동포권익특별위원회와 함께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어 문제 제기에 나섰다. ‘이주와 인권연구소’ 김사강 연구위원은 “국세청은 외국인에 대해 소득재산을 파악해서 세금을 매기는데 복지부는 외국인의 소득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높은 건강보험료를 측정하고 있다”며 “공정성과 형평성에 부합해야 하는 사회보장제도이지만 소득이 없거나 최저임금을 받는 분들에게 건강보험은 혜택이 아니라 징벌”이라고 지적했다.

 

중국동포지원센터 박옥선 대표도 “지난 7월 기준 국내 86만명의 중국국적의 동포가 있는데 이들은 여러 체류자격이 혼합된 경우가 많다”며 “의료급여 감면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을 난민, 결혼이민자 중 일부로 제한하고 사고, 질병, 장애 등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이주민들에게 고액의 지역건보료를 부과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라고 말했다. 공익법률지원을 하는 재단법인 동천은 “외국인의 소득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제한했다”며 지난달 18일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상태다.

보건복지부는 보험료 부담을 호소하는 외국인들의 민원이 잇따르자 외국인 보험료 부과, 징수 및 급여현황에 대한 모니터링에 나섰다. 복지부는 이를 토대로 외국인 보험료 부과 기준의 적정성, 소득, 재산 조사방안 등에 대한 연구용역을 낸 상태다.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도 “외국인은 개인별로 외국인등록을 하기 때문에 내국인과 달리 주민등록의 세대 개념 적용이 곤란한 점을 고려해 동일세대 인정범위를 배우자와 19세 미만 자녀로 한정하게 됐다”며 “모니터링과 연구용역을 통해 나온 문제점 등에 대한 추가 제도개선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천우희 '미소 천사'
  • 천우희 '미소 천사'
  • 트와이스 지효 '상큼 하트'
  • 한가인 '사랑스러운 인사'
  • 한지민 '우아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