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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장수 맘대로’ 교과서 인강 저작권료… 당국 뒷짐만 [심층기획]

입력 : 2019-10-22 06:00:00 수정 : 2019-10-22 09:5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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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강의시장 커지는데 부르는 게 값 / 검·인정교과서 저작권·대리권 출판사에 / 권당 100만∼1000만원선으로 ‘천차만별’ / 매출比 최대 831%요구도…분쟁 잇따라 / 고액 사교육보다 저렴…학생 수요 큰데 / “교과서 공공재 성격 띠고도 시장 독점, / 콘텐츠 개발 저해·수업료 인상 악영향” / 학생 피해에도 정부 “권한 없다” 팔짱만 / “적정 수준 저작권료 제도화해야” 지적 / 교과서 저작권료 산정기준 필요성 대두 / 日선 가격의 7%만 내면 자유롭게 이용

#1.유명 입시교육업체 A사는 몇 해 전 복수의 검·인정 교과용 도서(교과서) 출판사들과 민·형사 소송을 치러야 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나 참고서를 기반으로 인터넷 강의를 진행하다가 저작권료 지불 문제로 법적 분쟁에 휘말린 것이다. A사 측은 출판사들이 구체적인 산정 근거도 없이 많게는 1억원이 넘는 저작권료를 요구하고 있다며 불합리하다 주장했지만 법원은 출판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A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매년 수억원의 저작권료를 지불해가며 인터넷 강의를 하고 있다.

 

#2.초등학생 대상 인터넷 강의로 잘 알려진 B사는 지난해부터 중학생 대상 인터넷 강의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교과서를 토대로 한 인터넷 강의를 만들지 못한 채 중등 통합형 강의만 제작하고 있다. B사 관계자는 “중등 인터넷 강의는 내신 대비가 목적인데, 교과서별로 강의를 준비할 수가 없어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학생들에게 좋은 콘텐츠를 제공하고 싶어도 시장에 접근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 아쉽다”고 토로했다.

 

국내 중고교 교과서의 인터넷 강의 저작권료를 둘러싸고 논란이 적지 않다. 중고교 교과서는 대부분 민간 출판사들이 제작해 교육부로부터 검정 또는 인정을 받는 검인정 교과서다. 저작권료를 어떻게 할지는 출판사 마음이다. 이 때문에 온라인강의 업계는 출판사들이 터무니없이 높은 저작권료를 요구하거나 아예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등 어려움이 많다고 호소한다. 많은 수강생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강의 서비스를 하는 게 생존 경쟁력일 수밖에 없는데, 저작권료 부담 탓에 강의를 폐업하거나 창업 전선에 뛰어든 청년 등 신규 사업자가 시장 진입에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관계 당국은 뒷짐만 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 시장 커지는데…곳곳서 법정 다툼

 

대학입시에서 수시전형의 비중이 꾸준히 높아지면서 내신의 중요성이 부쩍 커졌다. 이에 따라 내신 대비를 위한 인터넷 강의 시장 규모도 확산 추세다. 21일 통계청의 최근 3년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인터넷 강의 등 통신강좌에 들어가는 중고교 사교육비 총액은 중학교가 2016년 607억원에서 지난해 715억원으로, 고교는 같은 기간 666억원에서 789억원으로 늘었다. 인터넷 강의가 학원이나 과외보다 저렴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요가 적지 않은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과서 출판사들이 인터넷 강의 업체들에 막대한 저작권료 지불을 요구하거나 자사 교과서 이용을 금지하는 경우도 생기면서 크고 작은 법적 분쟁이 생겼다. 중등 교과서 인터넷 강의를 서비스하는 교육업체 C사 관계자는 “소송만 했다 하면 출판사들이 이기는데 어찌 할 도리가 없지 않겠느냐”며 “그렇다고 시장에서 발을 뺄 수도 없는 노릇이라 답답하다”고 말했다.

 

법원은 왜 번번이 교과서 출판사들의 손을 들어준 걸까. 국가가 저작권을 갖는 국정 교과서와 달리 검인정 교과서는 출판사가 저작권 또는 저작권대리중개권을 갖기 때문이다. 사단법인 한국U러닝연합회의 정현재 사무총장은 “검인정 교과서의 경우 정부가 교과서 판매가를 일정 범위 내로 통제하는 대신 출판사들이 저작권료를 임의로 정할 수 있게 해준 것”이라며 “저작권 문제로 여러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 만큼, 정부가 나서서 적절한 저작권료 산정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U러닝연합회에 따르면 중고교 교과서의 저작권료는 권당 100만∼1000만원선으로, 각 교과서를 활용한 인터넷 강의 매출액 대비 적게는 10% 내외에서 많게는 831%까지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직접 인터넷 강의 시장에 뛰어든 일부 출판사의 경우 자사 교과서의 저작권 이용을 금지하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어느 정도 출혈을 감수할 만한 체력이 되는 규모의 인터넷 강의 업체가 아니면 버티기 어려운 실정이다. 좋은 아이디어로 싼 가격에 양질의 강의서비스를 할 수 있는 스타트업(신생업체)이 있다 해도 시장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학생·학부모 피해”vs“문제 없다”

 

인터넷 강의 업체들은 교과서가 공공재 성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가 담보되면서 콘텐츠의 다양성이 저해되고,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해 결국 학생·학부모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가정형편상 고액의 사교육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가정의 학생들이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경우가 많은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적절한 수준의 저작권료 가이드라인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목소리다. A사의 소송을 담당했던 한 변호사는 “출판사들이 과도한 저작권료를 요구하는 행위는 저작권법상 저작권 남용과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에 해당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반면 출판업계는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한 주요 교과서 출판사 관계자는 “저작권 관련 계약을 할 때는 상호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선에서 가격을 협의해서 계약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면서 그 여파가 애꿎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미치고 있는데도 정부는 팔짱만 끼고 있는 모양새다. 저작권 관련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한 관계자는 “저작권의 경우 사적 자치가 우선”이라며 “정부가 어떻게 하라고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설명했다.

 

임연욱 한양사이버대 교수(교육공학)는 “세계적으로도 온라인을 통한 교육이 강화되는 추세”라며 “물론 저작권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영리 목적만이 전부가 아닌 교육적 목적이 있는 상황이라면 저작권이 보다 융통성 있게 활용되도록 관할 당국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작권료 산정기준 ‘가이드라인’ 필요”

 

인터넷 강의 관련 업계에서는 관할 당국이 나서서 교과서 저작권료 산정 방식을 규정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반적으로 저작권료는 출판물 등의 매출액에 인세율과 이용비율을 곱해 산정된다. 여기에서 매출액과 인세율, 이용비율을 각각 어떻게 정리할 지를 두고 이견이 왕왕 생기곤 한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다른 분야의 저작권료 산정 방식들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먼저 일반 저작물의 이용료 산정 관행을 들 수 있다. 어문저작물(단행본 기준)의 경우 통상적으로 도서 정가의 10%에 발행부수 또는 판매부수를 곱해 저작권료(이용료)를 지급한다. 다만 원저작자의 저작물을 출판사가 그대로 출판하는 해당 방식과 달리, 교과서 인터넷 강의는 강사가 교과서 내용을 보다 쉽게 전달하기 위해 고유의 강의기법 등을 결합해 제작한다. 이 때문에 일반 저작물의 이용료 산정 관행을 토대로 교과서 인터넷 강의 저작권료 산정 방식을 만든다면 해당 교과서 매출액 10%에 강의별 교과서 이용비율을 곱하는 식으로 만드는 게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강의별 교과서 이용비율은 통상 30~50% 정도로 추정된다.

 

또 다른 방식은 한국복제전송저작권협회(복전협)의 이용료 기준안을 참조하는 것이다. 복전협은 저작권 대리중개업자의 지위에서 한국사능력 검정시험(한국사 시험) 기출문제를 이용해 동영상 강의를 제작하는 업체들에 이용료를 징수하고 있다. 이때 이용료는 강의 매출액 10%(인세율)에 기출문제 이용비율을 곱해 산출한다. 이용비율은 보통 이용자가 제공하는 수치를 기준으로 하지만, 수치 파악이 어려울 경우에는 상호 협의로 결정한다. 복전협은 이 밖에도 변호사시험 모의시험과 법학적성시험(LEET),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PEET) 등의 저작물들에 대한 권리를 대리중개하면서 정해진 기준에 따라 이용료를 받고 있다.

 

해외 사례 중에서는 한국과 저작권 규범 체계와 교과서 시장 구조가 유사한 일본의 사례를 참조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2014년 ‘교과서 저작물 이용조건 및 이용료 기준에 대한 집단적인 합의’(교과서 사용료 규정)가 성립된 뒤 이에 근거해 자유롭게 교과서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일본의 교과서 사용료 규정에 따르면 교과서가 학습용 교재로 이용될 경우 교과서 가격에 발행부수와 ‘이용형태’별 요율, 이용비율을 곱해 저작권료를 산정한다. 이용형태란 학교 채택, 매장 판매, 학원용 교재, 가정 방문 판매, 통신 판매 등을 말한다. 해당 규정을 보면 인터넷 강의를 포함한 교과서의 통신 판매 요율은 7%로 책정돼 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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