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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스펙터클에 가려진 아이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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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0-11 22:09:08 수정 : 2019-10-11 22: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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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살은 눈이 부시지 않아 좋다. 걸음 속도도 느려진 느낌이다. 앞만 향해 질주해온 사회적 삶이 개인의 내면으로 투영돼 반성의 시간을 부여하는 계절이다. 가을은 그렇게 지상의 존재를 살찌우면서 동시에 단독자 인간을 자아라는 거울 앞에 맞세운다. 왜 가을을 ‘사색의 계절’이라 했는지 이 나이가 돼서야 가슴에 와 닿는 것 같다. 가을이라는 거울 앞에 서서 손에 든 책이 한 권 있다. 심리학자인 진 트웬지의 ‘아이젠’(iGen·아이세대)이 그것이다.

박치완 한국외국어대 교수 문화콘텐츠학

‘아이젠’은 미국의 10대를 사회·심리학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이 책을 들추고서 나는 두 눈을 몇 번이나 비볐는지 모른다. ‘과연 그럴까’, ‘그 정도로 상황이 심각한가’라는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의 청소년은 실제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까’가 더 궁금해서다. 트웬지에 따르면, 아이세대는 자유시간에도 스크린 활동에 몰두한다고 한다. 아이세대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게임도 하고, 또래 집단과 연락도 하고, 필요한 정보를 검색도 하고 논다.

그런데 스크린 타임이 하루 3시간이 넘으면 자살 위험도 높아진다고 트웬지는 경고하고 있다. 물론 그 전 단계는 슬프고 절망적인 기분에 휩싸이는 게 일반적이며, 자살을 고려해보는 시간을 가진다고도 한다. 트웬지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해석하며 놀라고 있듯, 필자도 트웬지의 이 통계 해석을 접하고 놀랐다. 스마트폰이 이렇게도 청소년에게 위험한 것인가 하고.

물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10대에게 소속감을 갖게 한다고 분석하는 조사 결과도 있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그 이면에 ‘포모족’(또래 집단에서 따돌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노모포비아’(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불안해함)가 늘고 있다는 점은 애써 외면한다. 이들 아이세대가 스마트폰과 함께 잠자리에 든다는 사실도 못 본 체하며 넘긴다. 이들에게는 가장 친한 친구가 스마트폰이며, 심지어는 여자친구도 대체하는 것이 스마트폰이라는 사실을 기성세대가 너무 가벼이 여기는 것은 아닌지 싶다.

‘아이젠’의 메시지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만큼 대단한 것은 아니다. 아이세대를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것, 바로 그것이다. 트웬지는 친절히 해법까지 내놓고 있는데 첫째, 10대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주기 전에 사용시간을 제한하는 앱을 설치할 것. 둘째, 스마트폰 사용시간을 제한하며 중요 정보수집이나 친구와의 소통은 제한된 시간 내에 하도록 할 것. 셋째, 잠자리에서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진 곳에 스마트폰을 두게 할 것. 넷째,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스마트폰을 보지 않게 할 것. 다섯째, 공부에 집중할 때는 스마트폰 자체를 아예 멀리 치워 놓을 것이다.

지난 10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정한 ‘세계정신건강의 날’이었다. 국내에서도 몇몇 지자체에서는 9월 말부터 10월 초를 기해 자살 예방교육을 포함해 생명존중의식 강화와 정신건강 증진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시민참여형 행사를 시행한 바 있다. 영국 BBC방송에서도 세계정신건강의 날을 맞아 학부모에게 10대들의 방에서 스마트폰, TV, 컴퓨터를 치울 것을 권유하면서 알람시계를 나눠준 것을 보도한 바 있다. 아이세대의 정신 및 행동 장애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은 그 정도로 10대의 스마트폰, 인터넷 중독 증세가 심각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거울은 스스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반성하는 기회를 가진 자에게만 의미가 있다. 그런데 최근 한국 사회는 이 반성의 거울이 개인 차원에서도 사회·정치적 차원에서도 작동되지 않는 듯하다.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지 않는 일차원적 군상만 즐비하다. 그런 자들이 쏟아내는 무분별하고 자극적인 스펙터클에 가려 우리 사회에서 아이세대가 잊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이젠’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하루였다.

 

박치완 한국외국어대 교수 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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