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FACT IN 뉴스] “마이너스 물가상승률은 디플레이션 우려 현실화”···​​정말일까?

, FACT IN 뉴스

입력 : 2019-10-04 17:59:21 수정 : 2019-10-04 20:36:3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통계청이 지난 1일 ‘9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발표했다.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0%를 기록한 데 이어 공식적으로는 마이너스 상승률이 처음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이에 “사실상 디플레이션에 들어섰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소비자물가 하락은 정말 디플레이션의 도래를 보여주는 것일까? 우리나라는 디플레이션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을까?

 

◆ “‘마이너스 상승률’은 디플레이션 우려가 현실화된 것”

 

매달 초 통계청이 발표하는 ‘소비자물가 동향’은 상품과 서비스 등 460개 항목의 물가 변동률을 담고 있다. 이는 가구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사는 상품과 서비스의 평균적인 가격 변동을 측정한 지수다. 보통 전년 동월과 대비를 해서 나타내는데, 통상 물가는 자연적으로 오르기 마련이라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였던 적은 없었다. 지난 1일 발표된 9월 소비자물가는 1965년 통계 집계 후 사상 첫 공식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이다.

 

9월 소비자물가가 발표되자, 물가가 하락하고 경제 활동이 침체되는 ‘디플레이션’이 오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일 진행된 20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수요가 가라앉고 있어서 우리 경제에 디플레이션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방위적으로 모든 품목에 대해서 장기간 하락하는 디플레이션까지는 가지 않았다”며 “지금 단계에선 (디플레이션이라고) 말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이르다”고 대답했다.

 

◆ 주장1. 물가 하락은 디플레이션의 전조 증상이다?

 

디플레이션은 통상 물가 하락이 상품 및 서비스 전반에서 지속하는 현상을 말한다. ‘D의 공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작금의 물가 하락이 디플레이션의 전조 증상이라고 설명한다. 저물가의 기저에 수요 부진이 있다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일본이나 유럽 등 디플레이션을 경험한 국가들에서도 모두 디플레이션 전에 물가 하락이 있었다. 일본의 경우 1994년에 있었던 물가 하락이 장기간의 경제 침체인 ‘잃어버린 20년’의 시작으로 여겨진다. 유럽 역시 2012년 이후 소비자물가 오름세가 둔화했다. 우리나라도 이미 오랜 기간의 물가 하락세가 디플레이션을 방증한다는 주장도 있다.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장기 불황에 대한 시각’이라는 국가미래연구원 보고서에서 “2011년 이후 연간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며 “물가상승률이 때때로 마이너스이고 연간 평균상승률이 0% 근처라면 디플레이션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저물가는 단기적인 요인에 의한 것으로, 장기적인 물가 하락인 디플레이션과 다르다는 지적 또한 만만치 않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공급 측 충격에 의한 2~3개월 단기간에 걸친 물가 하락이 예상된다”며 “그러나 최근 몇 달간 물가 흐름이 디플레이션 징후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작년 폭염 등으로 인한 높은 물가가 기저효과로 작용했다는 설명도 나온다. 김 차관은 “금년에는 온화한 기상여건으로 인한 농산물 가격 하락, 낮은 유가 등 공급측 요인과 유류세 인하 등 정책적 요인 등이 결합하면서 0%대 중반에서 움직이다가, 공급측 하방요인이 점차 확대되면서 8월에 0%, 그리고 9월 물가는 -0.4%로 낮아지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에서 지난 6월 발표한 ‘우리 경제의 디플레이션 리스크 평가(한국은행 물가연구팀 방홍기 팀장, 안동준 과장, 한채수 과장)’도 디플레이션은 역사적으로 사례가 많지 않다고 지적한다. 필자들은 우리 경제의 저인플레이션 현상이 물가 하락의 광범위한 확산성 및 자기실현적 특성 측면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디플레이션의 징후로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디플레이션 국면에서는 물가 하락, 소득 감소, 자산가격 하락 등이 발생하고 정책금리까지 거의 제로 수준으로 낮아지는 등 광범위한 경제 침체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물가 하락을 경험한 국가들을 비교·분석한 한국은행의 보고서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30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과 홍콩,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대만 등 물가 하락을 겪었던 아시아 5개국의 물가지수를 분석한 ‘주요국 물가 하락기의 특징’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1990년대 소비자물가지수 하락은 많은 국가에서 적지 않은 빈도로 나타났으며 대부분의 경우 단기간 내에 상승으로 전환됐다”며 “디플레이션 현상은 일본 등 일부 국가에 국한된다”고 설명한다. 이어 “우리나라는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농축수산물가격의 일시적 기저효과 등으로 크게 낮아졌으나 연말에는 이러한 효과가 사라지면서 반등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 주장2. GDP 디플레이터, 생산자물가 등 여러 지수 또한 하락했다?

 

여러 전문가는 ‘근원물가지수’, ‘GDP 디플레이터’ 등 여러 물가 지표가 하락한 것 또한 디플레이션의 징후라고 주장한다.

 

소비자물가에는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가 포함되어 있고, 농산물과 석유류 등 계절적·일시적 요인을 무시할 수 없다. 통계청은 변동성이 큰 식료품, 석유 등을 제외한 기조적인 물가 지표인 ‘근원물가지수’를 따로 공개하고 있다. 근원물가 상승률이 낮으면 변동성이 큰 항목을 제외하고도, 소비가 부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월별 소비자물가 등락률, 자료=KOSIS(국가통계포털)

9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9월 근원물가 상승률은 0.6%이다. 지난달 0.9%에 비해서도 하락한 추세다. 정부가 물가 하락의 주된 요인으로 강조한 석유류와 농수산물 지수를 빼더라도 근원물가가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연도별 소비자물가 등락률, 자료=KOSIS(국가통계포털)

1989년 이후부터의 등락률을 보면 지난달의 근원물가 등락률은 1999년 9월 0.3% 이후 최저치임을 알 수 있다.

 

좀 더 포괄적인 지표는 어떨까? 명목상승률과 실질상승률의 격차로 포괄적인 물가를 의미하는 ‘GDP디플레이터’ 역시 하락 중인 게 사실이다. GDP 디플레이터는 GDP를 구성하는 소비, 투자, 수출입과 관련된 모든 물가 지표가 포함된 지수다.

 

 

GDP디플레이터, 자료=한국은행

GDP 디플레이터는 지난해 4분기 -0.1%, 올해 1분기 -0.5%, 2분기 -0.7%로 하락 폭을 키우며 3개월 연속 떨어졌다.  3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IMF 이후 처음으로 분석된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을 보여주는 기대인플레이션율 또한 하락한 상황이다. 기대인플레이션은 9월에 1.8%를 기록하며 전월 대비 0.2%포인트 하락했고, 이는 2002년 2월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달 27일 인천 한은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기자단 워크숍에서 “기대인플레이션이 낮아진 것은 물가상승률이 8월에 많은 사람이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이 낮아진 영향”이라며 “기대인플레이션은 통상 실제 인플레이션(소비자물가 상승률)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지표들로 디플레이션으로 정의하기에는 이른 측면이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디플레이션 상황을 물가 상승률이 2년 이상 마이너스를 기록한 경우로 설명한다. 디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을 평가하는 IMF의 디플레이션 취약성 지수(DVI)도 한국은 발생 위험이 ‘매우 낮음’으로 평가된다. 이런 점에 근거해 홍 부총리는 “우리도 일각의 지적에 따라 디플레이션을 점검했다”면서 “국제통화기금디플레이션 지수가 있는데 한국경제가 아직 디플레이션이 아니라는 단계로 분석됐다”고 설명했다.

 

DVI 지수, 출처=한국은행 ‘우리 경제의 디플레이션 리스크 평가’ 보고서

◆ 주장3. ‘잃어버린 20년’ 일본식 장기 불황 우려된다?

 

1990년대 말부터 일본은 디플레이션 현상을 겪었다. 일본의 소비자물가는 1999년 0.3% 하락한 뒤 2005년부터 줄곧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1997년부터 10년 동안 민간 소비 증가는 0.6%에 그쳤다. 일본의 GDP 증가율 역시 1990년대 1.5%에서 2000년대 0.6%로 하락했다. 경제 침체 속 수요 부족으로 디플레이션이 오면 고용 감소와 저성장이 전개되고 다시 수요가 위축되는 악순환이 반복된 경우다. 우리 경제 상황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같은 전철을 밟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온다.

 

물론 한국 경제 상황이 일본과 같은 심각한 상황에 빠진 것은 아니다. 소비자물가를 집계하는 조사대상 460개 품목 가운데 9월에 물가가 하락한 품목은 158개로 전체 품목 중 30% 수준이다. 일본이 한창 디플레이션을 겪었을 때의 하락 품목 비율 60~70%와는 상황이 다르다. 또한 부동산 시장에 형성된 거품이 사라지고 주가, 지가 등 자산가치가 급락하며 물가 하락을 몰고 온 일본의 사례와는 결이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모든 디플레이션 상황이 국가마다 같게 일어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한국은행 조사국 공철, 박영환이 2015년 발표한 ‘주요국의 디플레이션 사례분석 및 시사점’은 “이처럼 국가 간의 디플레이션 형태에 차이가 있는 점을 고려하여 향후 거시정책 수립에 있어 실물경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아울러 고용여건이나 디플레이션 자체에 대한 구조적인 원인 분석이 중시될 필요성이 있다”며 강조하고 있다.

 

정부는 디플레이션 우려를 차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가 하락은 일시적인 것이며, 곧 회복 수순을 밟을 거란 설명이다. 하지만 이는 과도한 낙관론일 가능성도 있다. 디플레이션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해석이 분분하지만, 분명한 것은 여러 경제 지표가 긍정적인 방향을 그리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학계 및 시장에서는 우려가 커질 대로 커진 상황이다. 수습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현상 분석과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장현은 인턴기자 jang5424@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