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兄 사살한 백인 女경관과 ‘화해의 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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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0-03 20:25:07 수정 : 2019-10-03 22: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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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 동생, 선고공판서 요청 / 전직 경관과 대화 뒤 끌어안아 / 가해자와 함께 법정 울음바다 / 10년형 선고되자 시민들 야유

“정의는 없다, 평화는 없다.”

 

자기 집에서 멀쩡히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흑인 이웃 보탐 진(당시 26)을 주거침입범으로 오인해 총격 살해한 전직 경찰관 앰버 가이거(31·여)에 대한 선고공판이 열린 2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카운티 연방지방법원.

 

경찰관이 비무장 흑인 남성을 상대로 과잉대응한 최근 사례이면서 가장 특이한 경우인 이 사건의 심판 결과를 보기 위해 법정 앞에 몰려든 시민들은 가이거에 징역 10년이 선고되자 야유를 보냈다. 전날 배심원단이 유죄 평결을 내림에 따라 최대 99년형을 받을 수도 있던 그에게 너무 낮은 형량이 선고됐다는 의미에서였다.

자신의 집에 있다가 강도로 오인받아 총에 맞아 숨진 흑인 남성 보탐 진의 동생 브랜트 진이 2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카운티 연방지방법원에서 이날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은 가해자 앰버 가이거를 끌어안으며 용서의 뜻을 전하고 있다. 댈러스=로이터연합뉴스

그때 법정 안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희생자의 동생 브랜트 진(18)이 판사에게 피고인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요청한 것이다. 증인석에 앉은 브랜트는 “당신이 진정으로 뉘우치고 있다면, 난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며 “당신을 용서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난 당신이 감옥에 가는 것조차 바라지 않는다”며 “당신을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사랑한다. 당신에게 어떤 나쁜 일도 생기길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목이 메인 듯 어렵사리 말을 끝낸 그는 태미 켐프 판사를 돌아보며 가이거를 포옹해도 괜찮냐고 물었다. 판사는 브랜트가 재차 요청한 후에야 “그러세요”라고 답했다. 흑인 여성인 켐프 판사도 벅찬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듯 휴지로 연신 눈가를 훔쳐냈다.

 

브랜트가 증인석 아래로 내려가자, 울먹이던 가이거는 앞으로 걸어나와 두 팔을 벌렸다. 두 사람은 증인석 앞에서 한참을 포옹하며 대화를 나눴고, 법정 안은 울음바다가 됐다.

 

공판 과정에서 희생자 가족의 증언이 있을 때면 법정은 배심원들과 판사의 눈물로 적셔지곤 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희생자의 아버지 버트럼 진은 일요일마다 아들과 전화를 통해 교회예배 이야기와 그날 먹은 요리 사진을 주고받았던 일을 회상한 뒤 “내 일요일이 파괴됐다”며 울먹였다. 카리브해 섬나라 세인트루시아 출신 흑인인 보탐은 생전 컨설팅회사에 다니던 촉망받는 회계사였다. 그는 일부러 고가의 셔츠를 입고 다녔고 운전할 때는 늘 제한속도에 주의했다고 한다. 피부색에 대한 경찰의 편견 때문에 불필요한 충돌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서였다.

 

가이거의 변호인은 “피고인이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을 때 그는 14시간 야간근무를 마친 뒤였으며, 연인관계이던 동료 경찰관과 성적인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고 했다. 사건 당시 피고인이 판단력이 흐릿해진 상태였다는 주장이다. 가이거는 지난해 9월 댈러스 아파트로 귀가하다 자신이 사는 3층이 아닌 4층에 잘못 내린 뒤 보탐 집을 자기 집으로 착각해 범행을 저질렀다.

 

징역 28년형을 구형했던 검찰은 이날 선고결과를 존중한다고 밝혔다. 존 크루조 댈러스카운티 지방검찰청장은 이날 포옹을 가리켜 “오늘날 사회에서, 특히 우리의 많은 지도자에게서 보기 드문 치유와 사랑의 놀라운 행동”이라고 극찬했다.

 

에릭 존슨 댈러스 시장도 성명을 내고 브랜트가 보여준 용서와 화합의 행동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며 “희생자의 가족이 보여준 사랑과 믿음, 믿을 수 없는 용기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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