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화성 살인' 이춘재, ‘수원 여고생 살인’도 저질러… 양손 결박 등 수법 판박이

관련이슈 화성 연쇄살인사건 이춘재

입력 : 2019-10-02 06:00:00 수정 : 2019-10-15 15:03:08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화성 살인’ 이춘재 14건 자백 / 화성 외 5건은 어떤 사건? / 1988년 화서역·1989년 오목천동 여고생들 살인… 목졸림 등 유사 / 베테랑 프로파일러 9명 맹활약 / 대면조사 통해서 신뢰 쌓은 뒤 DNA 등 직접증거 압박 ‘강온전략’
1987년 1월 5차 사건이 발생한 화성 황계리 현장에서 경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희대의 성폭행 연쇄 살인마’임을 자백한 이춘재가 9건의 화성연쇄살인사건 이외에 밝힌 나머지 5건은 어떤 사건일까. 자백을 받아낸 경찰은 신중한 입장이다. 이춘재가 자포자기 상태에서 밝힌 터라 향후 재판 등에서 번복할 수 있어 신빙성과 객관성을 확보해야 자백한 사건에 대해 발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춘재가 저지른 다른 사건은 어떤 것인지, 또 어떻게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자백에 이르게 됐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다른 범죄 5건은?

이춘재가 자백한 화성 연쇄살인 사건 외에 저지른 다른 범행은 우선 1988년 12월과 1989년 9월 수원 화서역 인근과 오목천동에서 각각 발생한 이른바 ‘수원 여고생 살인사건’이다. 이들 사건은 화성연쇄살인 사건과 청주 처제 살인 때처럼 피해자가 착용하고 있던 의류 등으로 목이 졸리고 양손이 결박된 유사성을 갖고 있다.

수원여고생 살인사건과 함께 화성사건 발생 전인 1986년 2월부터 7월까지 화성지역 일대에서 발생한 7건의 ‘화성 연쇄 강간 사건’이 꼽힌다. 당시 화성 태안읍 일대에서 10~40대 여성 7명이 연쇄적으로 성폭행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피해자들은 용의자를 23살 가량의 키 165~170㎝인 보통체격의 남성이라고 진술했다. 용의자가 욕설하고 “네 서방 뭐하냐” 등을 물었다고 공통적으로 진술한 점이 화성사건 발생후 살아남은 피해자의 진술과 비슷하다. 1986년은 이춘재가 군대에서 전역한 해이기도 해 그의 범행일 가능성을 높게 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이들 7건의 사건에서는 성폭행후 ‘살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본격 살해는 화성사건 때부터로 보인다.

◆추가 DNA 확인과 베테랑 프로파일러에 입연 이춘재

이춘재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특정된 뒤 13일만에야 자백했는 데 그 배경에는 프로파일러의 역할이 컸다. 지난달 18일 이씨를 특정용의자로 밝힌 경기남부청은 곧바로 2부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수사본부를 꾸리고 수감중인 부산교도소를 찾아 대면조사에 나섰으나 완강하게 부인하는 이춘재를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춘재는 1994년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협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부산교도소에서 수감중이다. 주말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교도소를 찾던 경찰은 프로파일러 투입을 결정했다. 경기남부청은 범죄분석 경력 및 전문성 등을 고려해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프로파일러를 선정해 다시 이씨를 상대로 조사를 벌이기 시작했다.

2009년 여성 10명을 살해한 혐의로 검거된 강호순의 심리분석을 맡아 자백을 끌어낸 공은경 경위(40·여)를 포함한 경기남부청 프로파일러 3명 등 모두 9명의 프로파일러가 투입됐다. 이들은 잦은 대면조사를 통해 정서적 친밀감과 신뢰를 뜻하는 ‘라포르’를 형성, 이춘재의 심리적 방어막을 조금씩 무너뜨렸다.

프로파일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던 이춘재에게 1988년 저지른 7차 화성살인사건 후 용의자를 목격한 버스 안내양의 진술을 활용했다. 경찰은 버스 안내양을 불러 법최면 조사를 진행했고, 법 최면중 자신이 목격한 용의자가 이춘재의 사진(몽타쥬)과 일치한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안내양은 경찰에서 “이춘재가 범인이 맞다”고 진술했다.

여기에 5, 7, 9차 사건 증거물뿐 아니라 4차 사건의 유품에서 나온 DNA도 한 몫했다.

1987년 1월 5차 사건이 발생한 화성 황계리 현장에서 경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또 이춘재가 강도미수 범행을 저질러 구속된 동안에는 화성사건이 더는 이어지지 않다가 그가 풀려난 지 7개월 만에 다시 화성사건이 벌어진 점, 1993년 4월 이후 충북 청주로 이사한 뒤에는 추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은 점 등 당시 이씨의 행적을 토대로 한 추궁도 이어갔다.

객관적 정황 증거와 함께 베테랑 프로파일러들의 ‘라포르’가 작용하면서 이춘재는 심리적 방어선이 서서히 무너지면서 ‘희대의 연쇄 성폭행 살인범’의 진면목을 드러냈다.

 

수원=김영석 기자 lovekoo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