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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시선] 높은 자살률은 사회적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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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9-26 22:51:59 수정 : 2019-09-26 22:5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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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OECD國 중 자살률 1위 불명예 / 가족을 넘어 사회안전망 강화 필요

자살은 개인적 행위지만 높은 자살률은 사회적 책임이다. 좋은 사회가 아니라는 증거이다. 좋은 사회라면 구성원의 행복감이 높고 자살률은 낮을 것이다. 때문에 자살률이 높은 사회에서 자살은 곧 사회적 타살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6개국 중 줄곧 자살률 압도적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OECD 회원국 자살률의 2배를 상회하는 대단히 높은 수준이다.

수년간 자살률이 조금씩 낮아지면서 2017년 잠시 1위를 내주기도 했으나 2018년 자살률이 높아지면서 다시 1위를 차지했다. 최근 통계청에 따르면 하루에 37.5명이 자살하고 있다. 38.4분마다 1명씩 자살한다는 것이다. 노인 자살률만 높은 게 아니라 모든 연령대 자살률이 높다. 10~30대 사망원인의 압도적 1위가 자살이고,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전년 대비 자살 증가율이 연령대에 따라 12~22%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사회복지학

자살의 원인은 복합적인 생애스트레스 때문이지만 사회적 관계의 측면에서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모든 관계로부터 고립된 사람의 자살이다. 가족, 친구, 이웃, 직장, 공적 지원 등 사회적 연결 끈이 모두 끊어진 채 철저히 소외되고 파편화된 개인으로 뿌리 없이 부유하다 자살로 내몰리는 경우이다. 증가하는 고독사가 그 대표적 사례이다.

두 번째는 이미 가족적 연대가 느슨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과 달리 여전히 가족의 연대적 책임을 강요하는 사회적 규범의 지체(遲滯) 상황에서 가족에게 짐이 되기 싫어 자살로써 스스로 관계를 끊어버리는 선택을 하는 경우이다. 가족의 응집력이 발휘되기 어려운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사회규범적으로 가족의 응집력을 기대하는 규범지체 상황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해 가족을 욕 먹이거나 가족에게 부담이 되지 않고자 하는 경우이다. 간병 살인, 간병 동반자살 등에서 전형적으로 관찰되는 사례이다.

세 번째는 몹시 어려운 상황에서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다는 희망은 도저히 보이지 않고, 회생의 가능성도 전혀 보이지 않는 막막함 속에서 자살로 내몰리는 경우이다. 사업실패, 막대한 부채 등 감당하기 곤란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경우가 많다. IMF 외환위기 등 경제위기 시기에 이 유형의 자살률이 높아진다. 더 이상 사회적 관계의 회복이 어렵다는 생각, 패자부활전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 대한 좌절감이 자살로 내몰게 한다.

네 번째는 아노미적 자살이다. 물질주의에 경도된 사회적 가치와 양극화된 사회에서 커가는 사회적 박탈감 속에서 가치적 혼동을 겪는 가운데 사회적 효능감을 느끼지 못하고 스스로 존엄한 삶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 없다고 좌절한 사람들이 삶의 무의미성을 참지 못하고 자살로 내몰린다. 청소년, 청년들 자살의 상당수가 이에 속한다.

이와 같이 자살은 연령대에 따라, 처한 상황에 따라 지배적 유형이 상이하지만 경제·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 심화와 함께 모든 유형의 자살이 증가하고 절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보인다는 데 심각성이 더하다. 자살 유형에 따른 사회적 대응으로 각각 관계적 고립을 해소하는 사회안전망 강화, 가족의 역할을 대신하는 사회안전망의 강화, 사회적 회생이 가능한 사회안전망 강화, 물질주의 대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저서 ‘액체근대’(Liquid Modernity)에서 지적했듯이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며 유동하는 사회에서는 파편적 개인화가 심화돼 사회안전망이 잘 작동하지 않으면 해체적 자살위험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경제적 위기에는 사회안전망이 적절히 작동하지 않으면 자살 위험은 더욱 높아진다. 가족을 넘어 사회안전망을 튼튼히 갖추는 것이 오히려 가족과의 안정적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므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사회에서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하고, 사회적 신뢰와 연대에 기반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함으로써 좋은 사회를 만들려는 사회적 노력이 자살위험사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길이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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