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박일호의미술여행] 평온하고 풍요로운 가을이었으면

관련이슈 박일호의 미술 여행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19-09-20 23:15:11 수정 : 2019-09-20 23:15:1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고흐의 '옥수수밭과 삼나무'.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 위 옥수수 밭이 바람에 출렁이고 있다. 삼나무는 바람이 힘에 겨운 듯 조금씩 흔들리고, 먹구름이 꿈틀대며 맑은 하늘을 시샘하고 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가을 풍경을 생각나게 하는 고흐의 그림인데, 그가 자연 풍경 안에 자기 내면의 감정을 담아서 표현했다.

고흐는 신교국인 네덜란드에서 태어났고, 가족 대부분이 성직자였기에 어려서부터 종교적인 분위기에서 자랐다. 그는 19세기 말 과학문명의 발달이 종교나 도덕 같은 정신문화를 황폐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림을 통해서 인간의 마음이 향하는 무한하고 영원한 것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려 했고, 그곳에 도달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겪는 고통과 번뇌와 갈등도 솔직하게 나타내려 했다. 그의 작품의 소용돌이치듯 구불구불한 선과 화려하지만 거친 붓 자국의 색들은 그런 배경을 갖고 있다.

고흐는 한때 고갱과 만나 작품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기도 했는데, 의견 차이를 보이면서 헤어진 후 정신적인 고뇌가 깊어졌고, 급기야 자기 귀를 자르는 신경증적 상태를 보여 생 레미의 정신병원으로 들어갔다. 이 그림은 그때 그린 작품 중 하나이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삼나무로 그가 평생 추구했던 무한하고 영원한 것에 대한 갈망을 표현했다.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과 번뇌의 감정은 옥수수 밭, 주변의 나무, 삼나무 등의 소용돌이치는 거친 붓 자국과 구불구불한 선에 담았다. 태양의 밝은 빛이 비치고 있지만, 마음의 고통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듯 자신의 격앙된 마음 상태를 구름의 어두운 색채로 나타내기도 했다. 모든 것이 눈으로 본 자연이기보다 감정과 심리상태를 담은 자연이다.

이른 추석이 지나고 나니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분다. 물질만능주의가 빚어내는 허탈함이야 고흐가 살았던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그래도 자연의 풍성함과 함께 가을이 오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한가위에 본 보름달처럼 삶의 풍요롭고 평온함을 기대해 보면서 9월을 마무리하고 싶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천우희 '매력적인 포즈'
  • 천우희 '매력적인 포즈'
  • 수지 '하트 여신'
  • 탕웨이 '순백의 여신'
  • 트리플에스 코토네 '예쁨 폭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