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편향된 역사 가르쳐… 식민지 수탈 사실 감춰" [잊힌 자들의 머나먼 귀로]

히구치 유이치 前 고려박물관장 / 아베, 정치적 이익 위해 역사 왜곡 / 식민지 근대화 앞세운 우익만 득세 / 시민들 식민지배 실상 알지도 못해

“대다수 일본 사람들은 식민지 지배에 대해 반성하지 않아요. 식민지가 있었던 사실은 알지만 실상에 대해 모르죠.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에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지배층의 목소리가 크다 보니 식민지 지배를 통해 좋은 일을 했다고 믿고 있어요. 아베 신조 총리는 한·일 갈등을 촉발하며 정치적 이익을 얻고 있습니다.”

지난달 일본 도쿄에서 만난 히구치 유이치 전 고려박물관장은 역사와 관련한 일본 우익의 주장을 반박하며 “지금 일본의 상황은 위험하다”고 진단했다. 히구치씨는 조선 농촌의 생활상을 중심으로 한국에 대해 연구해온 일본의 진보사회학자다.

그는 아베 총리를 필두로 한 일본 우익이 편향된 역사를 가르치며 왜곡을 시도한 건 1990년대부터라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는 2006년 총리에 오른 뒤 잠시 친한파적인 면모를 보이다가 2013년 2차 집권 때부터 본색을 드러냈다. 히구치씨는 우익의 득세 원인 중 하나로 시민이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을 꼽았다. 현재 일본 사회의 목소리를 장악한 세력은 우익이고 이들의 논리가 대중 의식을 형성한 상태다. 진보적 성향인 아사히신문이 있다 해도 일본은 전반적으로 우경화 색채가 강한 나라가 됐다. 히구치씨는 “식민지 지배 문제만 해도 수탈 역사는 이야기를 안 하고 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선동한다”고 전했다. 중국 침략은 잘못했다고 여기면서도 조선은 식민지 지배를 통해 도움을 줬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했다.

히구치 유이치 전 고려박물관장은 “일본 지배층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안 좋은 일을 했다는 걸 알면서 감춰왔다”고 말했다.

그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해서도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를 바탕으로 한 게 아니라 미국의 알선에 의한 조약이기 때문에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라며 “강제동원 문제만 해도 그 규모와 보상 대상 등 여러 사례를 일일이 조사하지도 않고 일괄 타결했다고 하는데 (국가 간 협정에) 개인의 사례가 들어가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1945년 8월16일 조선의 면사무소 등에 내려온 총독부 지령을 보면 군대 명단 등을 불태우라는 지시가 내려왔고 3일 동안 문서를 태웠다는 당시 관료의 증언도 있었다”며 “일본 지배층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안 좋은 일을 했다는 걸 알면서 감춰왔다”고 말했다.

1965년 국교가 맺어지기 전까지 일본에는 한국어사전조차 없었고 그나마 한국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제국주의의 일원이었던 관료들이었다. 지금도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않는 점에서는 여전히 닫혀 있다. 히구치씨는 “시민들이 알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지식인의 글만으로는 부족하고 시민들이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실상을 알 수 있도록 양국 간 교류가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쿄=이현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