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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 공개 둘러싼 줄다리기… “미확정 판결문 공개” vs “개인정보 유출”

입력 : 2019-09-14 14:00:00 수정 : 2019-09-14 11:4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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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신뢰를 위해 판결문 공개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정치권·변호사)

 

“개인정보 유출 우려로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는 주의해야 한다.”  (10년차 법관 A)

 

◆정치권·대법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해야”

 

판결문 공개범위가 확대될 수 있을지, 법원 안팎에서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치권이 ‘사법신뢰’를 위해 미확정된 판결문 등 판결문 공개 범위를 확대하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상황에서 최근 김명수 대법원장이 판결문 공개 확대를 대외적으로 공언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국회 입법조사처는 ‘2019 국정감사 이슈분석’ 보고서를 통해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필요성을 밝혔다. 조사처는 “2013년 이전에 확정된 형사 판결서 또는 2015년 이전에 확정된 민사 등 판결문도 공개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1월부터 인터넷을 통해 일반인도 판결문 열람이 가능해졌지만 2013년 이후 확정된 형사재판 판결문, 2015년 이후 확정된 민사재판 판결문만 해당됐다. 조사처는 미확정 판결문 공개도 요구했다. 조사처는 “미확정 판결서를 공개하는 것은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제고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하며 판결에 대한 국민의 이해도를 증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검토될 수 있다”고 밝혔다. 

 

‘사법개혁’을 추진 중인 김명수 대법원장도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를 약속했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 10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대한민국 법원의 날’ 기념식에서 “재판의 결과물인 판결서 공개는 사법부의 시혜적인 대국민 서비스 정도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며 “전관예우와 같은 불신의 비용을 줄이기 위한 첫걸음으로 확정된 사건은 물론 미확정 사건의 판결서 공개범위도 과감히 확대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강조했다.

 

◆일부 판사들은 부작용 우려…“개인정보 유출 우려”

 

현재도 일반인들이 미확정 판결문을 열람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낙타 바늘구멍 통과하기’만큼이나 힘들다.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직접 찾아가 ‘판결정보 특별열람실’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열람실 내 사용 가능한 컴퓨터는 4대뿐이고, 2주일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이용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에 올해부터 인터넷을 통해 판결문 검색·열람이 가능하도록 했지만, 미확정 판결문과 2013년 이전 확정된 형사재판 판결문, 2015년 이전 확정된 민사재판 판결문은 여전히 인터넷 열람이 불가능하다.

 

일부 판사들은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에 부정적이다. 전면적인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가 쉽지 않은 이유다. 지난해 5월 대법원이 전국 법관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117명 중 70% 이상이 “미확정 판결문 공개에 반대한다”고 대답했다. 형사사건의 경우 반대율 78.3%, 민사사건은 70.0%에 달했다.

 

이들이 판결문 공개에 소극적인 이유는 ‘개인정보 유출’과 ‘무죄추정의 원칙 훼손’ 때문이다. 형사재판 판결문에는 피고인의 주민등록번호, 주소지, 혐의, 범행에 동원한 흉기와 수법은 무엇인지 등이 모두 적혀 있다. 공범은 물론 피해자와 참고인, 증인 등의 실명도 볼 수 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판결문 공개 범위가 확대되면 비실명을 한다고 해도 관계인들은 소송 당사자가 누군지 금방 알 수 있다”며 “판결문 속 개인정보가 불법채권추심 등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한 변호사에 따르면, 지난해 9월 한 공기업에 물품을 납품하는 업체가 변호사를 통해 판결문을 입수, 해당 공기업 입찰 과정에서 활용한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미확정 판결문 공개의 경우 무죄추정의 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유·무죄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판결문이 공개될 경우, 자칫 당사자가 범죄자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것이다.

 

◆변호사·법학자들은 판결문 공개 환영…“사법신뢰 회복”

 

반면 변호사들과 법학자들은 판결문 공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법원의 고질적 문제인 전관예우의 폐단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해 6월 회원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응답자 1586명의 93.7%가 “모든 판결문의 전면적 공개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이찬희 변협 회장은 지난 4월 ‘법의날’ 기념식에서 “하급심 판결이 전부 공개되면 특정한 판사가 같은 내용의 사건에 대해 어떤 피고인에게는 실형을 선고하고, 어떤 피고인에게는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인지가 파악된다”며 “판결문의 전면 공개는 전관예우의 폐해를 실효성 있게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판결문은 공공정보인 만큼 비밀로 할 이유가 없다. 판결문 공개는 법원이 해당 사건을 어떻게 판단했는지 국민이 보게 하는 것”이라며 “법관의 재판을 국민이 감시하기 위해서라도 (미확정 판결문을 포함해) 판결문 전면 공개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외는 어떨까. 미국은 연방법원에서 선고된 모든 판결문을 즉시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다. 주(州)법원의 경우도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공개한다. 미확정 판결문도 24시간 내에 인터넷을 통해 게재되고 뉴욕과 캘리포니아, 매사추세츠주는 인터넷으로 임의어 검색도 가능하다. 캐나다도 선고된 판결문을 전면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고 임의어 검색까지 할 수 있다. 영국과 네덜란드도 미확정 판결문을 일주일 내에 공개한다. 반면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 공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일부 판결만 공개한다. 또 피고인과 증인의 인적 사항은 비실명 처리가 원칙이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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