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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기업 갑질에 “한번 해보자”… 2년 만에 분리막 개발 해내 [심층기획]

입력 : 2019-08-07 06:00:00 수정 : 2019-08-06 19: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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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분리막 생산 SKIET 증평공장
“위기를 기회로”/ 독점 日 업체들 횡포… 늘 공급 부족 시달려/ 정유·화학서 쌓은 노하우 활용 R&D 매진/ ‘축차연신’ 신기술 개발… 이젠 日도 배워가
“2025년 세계 1위로”/ 전기차 배터리 발주 폭증에 시장은 ‘빅뱅’/ 대규모 신·증설 박차… 점유율 30% 목표/ “日 수출 규제 당장 힘들어도 좋은 약 될 것”

‘위이잉∼’ 지난달 25일 충북 증평군 증평읍 SK 공장. 방진복과 모자, 마스크로 무장하고 에어샤워를 거친 뒤 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기계음과 함께 기름냄새가 훅 풍겼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의 분리막(LiBS) 생산 현장이다. SKIET는 SK이노베이션이 올 4월 첨단소재 사업을 떼어내 출범한 자회사다.

기자가 돌아본 곳은 2012년부터 상업생산 중인 LiBS 6∼7호기, 이달 막 가동에 돌입한 첨단라인 12∼13호기였다. 폴더블폰, 롤러블TV용 소재인 ‘플렉서블 커버 윈도(FCW)’ 필름 생산 전용설비 1호기가 옆에 놓여 있었다. 이 설비도 가동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면적만 16만5000㎡(약 5만평)에 달하는 증평공장은 SK의 공세적인 투자 아래 곳곳이 공사판이었다.

◆“2025년 세계시장 1위” 목표… 신·증설 박차

분리막(LiBS) 제조 개념은 비교적 간단하다. 길이 120m가 넘는 장대한 설비는 ‘압출기’로 시작해 ‘열고정기’에서 끝난다. 먼저 폴리에틸렌(PE) 분말에 기름을 섞어 고온·고압을 가하면 반죽이 되는데 이를 가래떡 뽑듯 납작하게 추출한다. 이 반제품은 MD·TD ‘연신기’를 거치며 47∼49배까지 늘어난다. 롤러 속도를 달리하며 앞뒤(MD)로 늘린 뒤 촘촘하게 배치한 집게로 양옆(TD)에서 잡아당기는 식이다.

관건은 ‘물성 유지’다. 분리막 원단이 최종 두께 3∼30㎛(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까지 얇아지는 동안 평균지름 30∼60nm(나노미터·10억분의 1m)인 기포를 균일한 크기와 간격으로 유지해야 한다. ‘추출기’에서 용매(솔벤트)를 투입해 이 기포 속 기름을 녹여내면 기공이 생기는데, 바로 리튬이온이 통과할 길목이다. 반제품 상태에서 앞뒤로 세라믹 코팅을 추가한 ‘CCS’는 안정성이 높아 자동차용 배터리에 쓰인다. 흡사 포스코 어느 일관제철소의 제선·제강·압연, 아연도금강판 생산 공정을 떠올리게 하는 공정이다.

‘넓고 얇게 늘린다’는 면에선 쓰레기봉투, 과자봉지와 크게 다를 게 없다. 하지만 구현 기술의 난이도에선 △얇은 두께와 높은 강도 △균일한 기공구조 △낮은 열수축률을 요구하는 초미세 공정이다.

이수행 SKIET 소재공장장은 “길이와 폭 방향을 함께 늘리는 ‘축차연신’ 기술을 2007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며 “설비를 제공한 일본에서도 구현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일본 업체가 SK에서 시설 튜닝과 운용 기술을 배워간다고 한다. 이런 분리막은 2차전지(충전 후 재사용)를 구성하는 4대 핵심소재로 불린다. 양·음극재 사이에 끼워 전극 간 단락을 막는 한편 전해액 속의 리튬이온은 오갈 수 있도록 해 충·방전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배터리의 성능과 안정성을 담보하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기면 2016년 ‘갤럭시 노트7 사건’처럼 발화나 폭발의 원인이 된다.

시장은 빅뱅 직전이다. 세계적인 ‘탈탄소 에너지전환’이 시작되면서 유력 완성차 그룹들의 전기차(BEV)용 배터리 발주가 폭증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시장조사업체에 따르면 관련 시장은 2017년 23억㎡에서 2025년 129억㎡로 6배 가까이 확대될 전망이다. SK는 중국·폴란드 등 국내외에서 대대적인 신·증설을 추진 중이다. 올 연말 5억2800만㎡인 생산력을 2025년 25억3000만㎡로 늘려 ‘시장 점유율 30%, 세계 1위’에 오른다는 게 SK 구상이다.

 

◆일본의 박대… “위기는 기회였다”

“우리가 언제 쓰레기봉투 만들면서 애국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까. 제대로 된 제품 하나만 만들어봅시다. 배터리 사업 전체 경쟁력으로 애국할 수 있습니다.” 이장원 SK이노베이션 배터리연구소장(전무)이 2003년 분리막 개발 태스크포스(TF)에서 연구원을 독려했던 말이다.

당시 부장급이던 이 전무는 일본 유력 전자업체에서 당한 수모를 잊지 못한다. 2004년 말 어렵게 확보한 분리막 기술, 양산 실력에 대해 설명(PT)하기로 했던 어느 날이다. “발표는 놔두세요. ‘분리막 강도’는 뭔지 압니까.” 30여분 늦게 얼굴을 비친 일본 업체 관계자는 설명도 회의도 거부한 채 질문 몇개를 던진 뒤 ‘바쁘다’며 나가버렸다. 세계 전자업계를 주름잡던 업체였다. 이 전무는 “비행기에서 ‘언젠가는 우리를 찾게 만들 것’이라고 이를 악물었다”며 “결국 2007년 축차연신 기법을 개발, 모두가 원하는 물성을 만들어냈다”고 추억했다.

SK의 분리막 개발은 5명 TF로 시작했다. 세계 배터리시장을 파나소닉, 소니가 주도하던 시절이다. 이 전무는 “분리막이 늘 부족했다”고 말했다. 일본 기업 독점에 따른 갑질에 배터리 업계 불만도 상당했다. SK가 정유·화학사업에서 쌓은 노하우를 기반으로 2년 남짓이란 상당히 빠른 시간 안에 분리막 개발에 성공, 품질을 맞추자 업계 발주가 몰린 배경이다.

특히 SKC와 협업은 비약적 발전의 계기였다. SKC 휴대전화 사업에 소량을 시범 투입했는데 이 소식을 접한 아사히가 ‘괘씸죄’를 물어 공급을 끊었다. 이 전무는 “SKC 해당 사업부로선 위기였고 우리도 한 기업 전 물량을 맡게 돼 라인을 부지런히 돌렸다”며 “덕분에 빠르게 품질이 안정돼 삼성·LG 등 국내 전자업체 발주가 쏟아졌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규제가 당장은 힘들어도 좋은 약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증평=조현일 기자 con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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