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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기류 만난 무기 ‘빅딜’…韓 훈련기 수출 ‘적신호’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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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6-29 10:00:00 수정 : 2019-06-29 1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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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내 방산업계의 핵심 이슈 중 하나였던 국산 훈련기-스페인 수송기 맞교환(스왑딜) 프로젝트에 적신호가 켜졌다. 최근 프랑스 파리에어쇼에 참석했던 정부 소식통은 “최대 1조원 규모로 예상되던 훈련기-수송기 ‘맞교환 빅딜’에 대한 스페인측의 태도가 바뀔 조짐을 보이는 것으로 안다”며 “맞교환 규모가 축소되거나 백지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고 전했다. 

 

한국과 스페인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생산하는 KT-1 초등훈련기 30여대, T-50 고등훈련기 20여대를 스페인 공군이 인수할 에어버스의 A400M 대형수송기 4~6대와 맞바꾸는 방안에 대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협의를 진행해왔다. 거래 규모가 최대 1조원에 달하는 만큼 방위산업 수출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A400M 수송기가 스페인 세비야 공항을 이륙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하지만 최근 들어 스페인측이 KT-1 구매를 포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등 태도 변화가 감지되면서 거래 규모가 당초 예상보다 대폭 줄어들거나 백지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탈리아, 스위스 등 경쟁국들의 공세가 강화되는데다 스페인측이 우리측과의 협상 과정에서 ‘판 흔들기’에 나섰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생산라인 폐쇄 우려” VS “트집 잡기”

 

스페인측의 태도가 조금씩 바뀌는 조짐을 보이는 것은 훈련기 제작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생산능력에 대한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1999년부터 생산된 KT-1 훈련기와 그 파생형인 KA-1 전술통제기는 한국 공군 100여대, 터키 40대, 페루 20대, 인도네시아 20대, 세네갈 4대 등 180여대가 생산됐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에 3대를 추가 납품하기로 한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생산 물량이 없는 상태다. 2005년부터 한국 공군에 도입된 T-50 훈련기는 공군과 이라크,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가 200여대를 배치했다. 그러나 미국 공군 훈련기(APT) 사업 수주 실패 이후엔 공군 전술입문훈련기 2차 도입 사업에 의해 2023년까지 전력화될 TA-50 20대 외에는 추가 생산 물량이 확실치 않다. 

FA-50 경공격기가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공장에서 조립되고 있다. KAI 제공

방산업계 관계자는 “스페인측은 ‘추가 생산 물량이 없어 생산라인이 폐쇄되면 자신들의 재정부담이 심화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안다. KT-1 구매도 적극적이지 않다”며 “(T-50의 경공격기 버전인) FA-50 추가 생산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도 생산라인 폐쇄를 막으려는 것과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스페인측은 이번주 초 한국에 방문단을 파견,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및 KAI 등을 방문해 ‘맞교환 빅딜’ 관련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 전문가들은 스페인측의 태도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생산라인이 폐쇄된다 해도 기존에 판매된 항공기의 운영유지에 필요한 부품 확보 차원에서 필수 설비들은 남겨놓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생산을 재개할 가능성에 대비해 공장 내 일부 공간에 설비를 보관했다가 다시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에어버스나 보잉 등 글로벌 항공기 생산업체들은 생산라인을 수시로 조정하면서 수익을 극대화한다. KT-1와 T-50은 국내외에서 활발하기 운용중인 만큼 부품 공급망은 충분히 유지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자체적으로 수송기 등을 생산하는 스페인측은 이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생산라인 폐쇄 문제를 거론한 이유는 협상력 강화 전략이라는 분석이 많다. 

 

한국과 스페인의 논의 과정에 밝은 방산업계 소식통은 “훈련기 사업은 스페인 공군에서 우선순위가 높지 않은 사업이라 협상을 급하게 진행할 필요가 적다”며 “스페인측은 우리측의 약점을 잡으면서 협상 주도권을 장악,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할 여유가 충분한 상태”라고 말했다.

KT-1 초등훈련기 편대가 훈련을 위해 비행을 하고 있다. KAI 제공

이 소식통은 “스페인측은 협상을 안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시나리오에 따라 트집을 잡는 전략을 구사할 뿐이다. 문제는 우리측이 협상 주도권을 상실한 채 스페인측의 트집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며 “우리측이 지혜롭게 대처하지 않으면 우리가 손해를 보는 거래를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경쟁 기종 ‘맹추격’에 밀려날 가능성

 

‘맞교환 빅딜’을 둘러싼 외부 환경도 악화되고 있다. 스페인 훈련기 시장을 공략하려는 경쟁업체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항공업체 레오나르도는 지난달 29~31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방산전시회에서 최신형 M-345 제트 훈련기를 스페인에 제안했다. 조종사 기본 훈련용 비행기로 이탈리아 공군이 18대를 주문한 M-345에 대해 레오나르도는 “터보프롭 비행기 가격으로 제트기의 성능을 제공한다”며 높은 가성비를 강조하고 있다. 국제 무기시장에서 가격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 T-50의 약점을 파고드는 전략이라는 평가다. 레오나르도는 조종사 고등 훈련용 비행기이자 T-50의 강력한 경쟁자인 M-346을 이탈리아와 이스라엘, 싱가포르, 폴란드에 판매한 전례가 있어 스페인 시장을 놓고 KAI와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미 공군 훈련기(APT) 사업에서 록히드마틴-KAI 컨소시엄의 T-50A를 제치고 수주에 성공한 미국 보잉-스웨덴 사브의 BTX 훈련기도 강력한 경쟁자다. 

미국 보잉-스웨덴 사브 컨소시엄이 개발한 BTX 훈련기. 미 공군의 차세대 훈련기다. 보잉 제공

3D 프린팅과 가상현실, 증강현실 기술 등을 대거 적용한 혁신적인 설계를 갖춘 BTX 훈련기는 첨단 기술에 ‘미군이 사용하는 훈련기’라는 프리미엄까지 등에 업고 미국의 우방국 시장을 공략할 태세다. 스페인은 미국제 F/A-18 전투기를 쓰고 있으며, F-35 도입을 검토하는 등 미국제 군용기를 많이 쓴다. 여기에 BTX의 유럽 판매는 사브가 담당한다. 유럽 국가들간의 ‘우리가 남이가’ 식 정서를 건드린다면 승산이 있다는 평가다.

 

반면 T-50은 성능이나 가격 측면에서 스페인측에 매력적인 부분이 크지 않다. 2005년 전력화 시작 이후 혁신적 수준의 개량은 이뤄지지 않았다. 가격 측면에서도 인하 가능성이 크지 않다. 첨단 기술을 대폭 적용하면서 가격을 낮춘 M-345나 BTX와의 경쟁이 쉽지 않은 대목이다.

 

KT-1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 개발이 이뤄진 이후 ‘마르고 닳도록’ 썼지만, 새로운 비행기가 등장할 시점이 됐다. 하지만 KT-1에 대한 대폭적인 개량이나 새로운 버전의 항공기 출시는 이뤄지지 않았다. 단종된 부품이 많아지면서 부품 비용이 상승, KT-1의 대당 단가를 끌어올리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반면 KT-1의 경쟁자인 스위스 필라투스의 PC-9과 브라질 엠브리어의 슈퍼 투카노 등은 꾸준한 개량을 통해 성능을 높이고 있고, 농약 살포기 등을 개조한 저가 터보프롭 훈련기도 등장하고 있다. 스페인 공군에 KT-1이 매력적인 기체로 느껴지기는 힘든 상태다.

 

이같은 악재를 뒤집고 ‘맞교환 빅딜’을 성사시키려면 북극 에스키모에게 냉장고를 팔 정도의 혁신적인 수출 전략이 필요하다. 

 

방위산업 선진국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수출 시장을 공략중이다. 2012년 레오나르도가 KAI의 T-50을 제치고 이스라엘에 M-346 훈련기를 판매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레오나르도는 T-50의 성능을 높이 평가한 이스라엘에 후속군수지원 능력을 제시, 수주에 성공했다.

이탈리아 레오나르도의 M-345 기본훈련기. 레오나르도 제공

당시 레오나르도는 이스라엘과 가까운 이탈리아의 지정학적 위치를 거론하면서 “이스라엘이 분쟁에 휘말리면 부품을 싣고 최단기간 안에 신속하게 군수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랍국가와의 분쟁이 시달리는 이스라엘은 후속군수지원의 신속성과 신뢰성을 강조한 이탈리아의 손을 들어줬다. 한국에서 부품을 싣고 분쟁지역까지 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이탈리아보다 훨씬 길다는 점이 T-50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중국과 파키스탄이 공동개발한 JF-17 전투기는 “T-50보다 싸다”며 수출에 적극적이다. 실제 단가는 T-50보다 높지만, 판매가를 낮춘 뒤 후속군수지원이나 성능개량 비용을 높게 잡아 이윤을 남기는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손해를 보지 않는다.   

 

KT-1와 T-50의 기술, 가격 문제는 단기간에 극복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기술투자를 제대로 하지 않고 KT-1와 T-50을 전략적 아이템으로 육성하지 못한 KAI의 잘못이 크다. 매출 증대에 필요한 수출 전략 수립 능력 확충을 소홀히 한 방위사업청과 KAI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FA-50 경공격기가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공장에서 조립되고 있다. KAI 제공

스페인과의 무기 맞교환 거래가 협상단계에 접어든 것은 A400M와 KT-1, T-50이 세계 시장에서 많이 팔리지 않는 비행기라 정부 차원에서의 독창적인 수출전략이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기술적, 재정적 우위에 있는 경쟁자들과는 차별화된 요소로 양국간 협상의 모멘텀이 된다. 이 점을 잘 활용해 파격적이면서 치밀한 수출 전략을 구사한다면, 국내 방위산업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스페인과의 무기 맞교환이 실현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경쟁자들의 추격을 뿌리치는데 필요한 시간적 여유가 아직은 남아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정부와 KAI의 향후 대응에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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