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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대도 '어이쿠'… ‘허리디스크 공화국’ 대한민국 [S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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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6-30 06:00:00 수정 : 2023-12-10 15:5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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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취업 경쟁 시달려… 매년 증가 / 직장인들도 업종 가리지 않고 발병 / 청소년 평일 평균 학습시간 7시간50분 / 직장인들도 하루 7∼8시간 의자서 보내 / 작년 환자 수 197만여명… 꾸준히 늘어 / 30분∼1시간마다 5분씩 스트레칭 바람직 / 허리 손 대고 상체 젖히는 운동 효과적 / 방치 땐 후유증 심각… 적절한 치료 중요

 

#1. 직장인 김모(30)씨는 3년 전쯤부터 허리디스크로 고생하고 있다.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통해 허리디스크 판정을 받은 김씨는 디스크 증상이 발생하면 유독 엉덩이 위쪽 근육이 아파 걷는 데 불편을 느낀다. 김씨는 지금껏 대학교 입학과 취업을 위해 인생의 대부분을 앉아서 보냈다. 의사는 가급적 앉아 있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직장에서도 계속 책상에 앉아 컴퓨터 작업을 해야 하는 김씨는 의사의 조언을 따를 수가 없는 처지다.

 

#2. 대학원생 이모(26·여)씨도 허리디스크 환자다. 45kg 정도로 체중도 적은 편이고, 과거 검도를 얼마간 배운 적이 있는 이씨는 처음에는 잠시 허리가 아플 뿐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다리저림을 느끼고 병원을 찾은 뒤 허리디스크 확진을 받았다. 걷기 운동을 하라는 의사의 조언을 듣고 며칠 학교 운동장에서 30분씩 운동을 했지만 이것도 잠깐이었다. 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이후 취업까지 대비해야 할 이씨에겐 운동 시간도 사치일 뿐이다.

 

한국이 허리디스크 공화국이 되고 있다. 주로 장노년층이 걸리는 연령성 질환으로 인식됐던 허리디스크가 직업을 불문하고 30대 직장인들이 많이 앓는 병이 됐다.

 

허리디스크와는 거리가 멀어야 할 10대 청소년은 물론이고 20대 청년들도 허리디스크로 병원을 찾는 경우가 늘고 있다. 입시경쟁과 취업경쟁에 치여 인생의 초년 대부분을 책상 앞에 앉아 보낸 이들에게 돌아온 ‘고맙지 않은 훈장’인 셈이다.

 

◆허리디스크 환자 증가… 20대 환자도 반등

 

국내 전체 허리디스크 환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28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허리디스크 환자 수는 2015년 189만688명에서 이듬해 193만6769명, 지난해에는 197만8525명으로 꾸준히 느는 추세다. 이 중 20대 허리디스크 환자의 요양급여비용총액은 2015년 309억원대에서 다소 줄다가 지난해에는 다시 313억원대로 늘어났다.

 

허리디스크의 정확한 병명은 요추 추간판탈출증이다. 허리 부분 척추 내에 있는 물렁뼈인 추간판(디스크)이 튀어나오면서 충격과 뼈끼리 부딪치는 현상을 막아주지 못하고 신경이 눌려 염증과 통증을 불러오는 질환이다. 허리디스크의 유발 원인은 노화나 외부의 충격 등이 있지만 주된 원인은 바로 잘못된 자세와 생활습관이다. 특히 의학계에서는 하루의 상당 부분을 의자에 앉아 보내는 습관을 허리디스크의 제1 유발원으로 본다.

 

◆입시·취업경쟁에 공부하다 허리병 키워

 

허리디스크는 보통 나이가 들면서 앉는 자세의 빈도가 높아지고 누적돼 장노년층에서 나타나는 병이지만 한국 젊은 층의 유병률이 높아지는 것은 그만큼 청년들이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20~30대들은 이미 청소년 시절부터 입시경쟁에 뛰어들어 많은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지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15~24세)들의 평일 평균 학습시간은 총 7시간 50분이다. 영국 3시간 49분과 미국 5시간 4분에 비하면 각각 4시간, 2시간 이상 많다. 이웃 나라인 일본 청소년들이 하루에 5시간 21분 공부하는 것과 비교해도 한국 아이들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월등히 많다.

 

입시경쟁 이후에는 취업경쟁이다. 구인·구직 매칭플랫폼 사람인이 구직자 295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구직자들은 평균 10개월 동안 취업을 준비하고 평균 15개 회사에 입사지원서를 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매일 취업을 위해 쏟는 시간이 3시간 정도라고 답했다. 구직 준비를 위해 3시간가량은 앉아 있다는 얘기다. 어학능력시험과 자격증 준비 등 책상 앞에 앉아 할 일이 태산이다. 구직자들의 90.8%는 최근 취업준비가 더 어렵게 느껴진다고 답했는데, 높아지는 실업률과 늘어나는 구직기간 탓에 앉아 있는 시간도 덩달아 늘어나니 청년층의 허리디스크 질환자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평생 앉아서… 美는 스탠딩 데스크 지급

 

직장인이 돼서도 앉아 있는 시간이 긴 것은 매한가지다. 보건복지부가 2017년 공개한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30대 남성과 여성이 하루에 앉아서 보내는 시간은 각각 8.5시간과 7.7시간이다. 40대도 이와 유사해 남성은 8.1시간, 여성은 7.4시간 동안을 매일 의자에서 보낸다. 이는 평균 수면 시간인 7시간보다도 많은 수치다. 성인의 걷기 실천율이 39.6%인 것을 고려하면 10명 중 6명은 걷기 운동에 소홀해 허리디스크에 더 취약하다.

 

이런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글로벌 기업은 직원들이 앉아서 일하는 근무 환경을 바꿔나가는 추세다. IT기업 애플은 지난해 사옥에 근무하는 직원 1만2000여명에게 ‘스탠딩 데스크’를 지급했다. 스탠딩 데스크는 장시간 앉아서 일해야 하는 사무직원들이 서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사무직의 허리디스크 발병 증가가 직원의 능률을 떨어뜨린다고 보고 이미 10년 전부터 스탠딩 데스크 도입을 시작했다. 이러한 풍경이 한국에선 아직 낯설지만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서서 일하는 문화가 점차 도입될 가능성이 크다. 벤처업계에서 일하는 직장인 김모(43)씨는 “오래 앉아 있는 게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회사 내 간부 몇몇은 자발적으로 서서 일하고 있다”며 “책상 높이와 구조를 모두 싹 바꾼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짬 내서 스트레칭하고 걸어라

 

허리디스크 발병률을 낮추는 것은 오래 앉아 있는 문화를 바꿔야 하는 만큼 근본적인 사회적 변화가 수반돼야 가능한 일이다. 입시·취업 등 평생의 대부분이 치열한 경쟁에 노출되는 한국 사회 분위기가 타파되지 않으면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생활 속에서 작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앉아 있는 시간을 줄이는 게 최선책이라고 조언한다. 오랜 시간 앉아 있어야 하더라도 30분이나 1시간에 5분씩 시간을 내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다. 허리에 손을 대고 상체를 뒤로 젖히는 ‘맥켄지 운동’도 허리디스크를 예방하는 데 효과가 입증된 운동이다. 앉아 있더라도 다리를 꼬거나 기대어 앉는 것은 금물이다.

 

의자에 앉아 있을 때는 구부정하게 상체를 숙이지 말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상태여야 한다. 무릎에 책을 놓고 읽는 것은 디스크에 무리를 주기 때문에 꼭 책상을 이용해 적절한 높이에 시선이 놓이도록 한다. 특히 쭈그리고 앉는 상태는 최대한 피하고 30분 이상 지속하지 않도록 한다. 누워 있을 때는 팔뚝 굵기의 수건을 허리에 말아 끼워 넣으면 디스크 건강에 도움을 준다. 앉았다 일어날 때는 허리를 숙였다 펴면서 일어나지 말고 엉덩이 관절만 구부렸다 펴야 한다.

 

기림 튼튼마취통증의학과 병원(인천 서구) 대표원장은 “맥켄지 운동과 더불어 플랭크 운동도 허리디스크에 도움이 된다”며 “병원 치료를 받고 있을 때도 꾸준한 운동과 올바른 자세를 유지해 증상이 악화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광진 선정형외과 병원(서울 동대문구) 원장도 ”청년기에 허리디스크를 방치하면 나이가 들수록 후유증이 심해질 수 있다”며 “병원에 내원해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고 의사의 조언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청윤 기자 pro-ver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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