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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주변 사랑하면 더 정성껏 식사 준비 / 情 담긴 따뜻한 밥상은 유대감 강하게 해

전쟁 통에 고향을 떠나 가난에 시달리던 친지를 거둔 것은 활발하고 손재주 많았던 외할머니였다. 비범하게 셈이 빨랐고, 한글과 한자를 혼자 깨우치고 바느질에 요리 솜씨까지 무슨 일을 해도 다 잘하셨다. 할머니는 성품도 어지시어 걸인이 찾아 와도 꼭 밥상에 찬을 차려 주셨다. 어려서 할머니 품에서 자란 나는 “이담에 크면 할머니처럼 되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닮고 싶은 큰 사람이셨기에, 할머니의 그런 삶은 어떤 교과서보다 내게 좋은 가르침이다.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에게 배운 것도 많다. 13대 종손 며느리였던 시어머니는 갑자기 들이닥치는 손님도 항상 반기셨기에 닭 한 마리만 있으면 동네 사람을 다 대접했다는 등 일화도 많다. 결혼 전에는 살림이 야무졌던 친정어머니에게도 이것저것 많이 배워야 했다. 공부하면 됐지 왜 집안일까지 해야 하느냐 따지면 “알아야 남을 시켜도 시킨다”고 단호하게 자르셨기에 더 이상 반항하지 못했다.

그렇게 살았기 때문일까. 나이 먹으면서 몸이 힘든 청소나 빨래와 달리, 밥하는 시간은 내게 노동보다는 휴식에 가깝다. 무언가 만들어 내니 사뭇 창의적인 듯 착각도 하게 되고, 내 변변치 못한 음식을 누군가 맛있게 먹어줄 때는 으쓱하고 흐뭇해지기도 한다. 한 마디라도 잘못 쓰면 말이 금방 칼이 되는 것이 상담이고 치료이지만, 이물질을 섞지 않는 이상 기껏해야 맛없는 결과가 나오는 게 요리할 때 최악의 상황이니,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덜하다. 물론 솜씨 없이 차려 줘도 참 맛있다 칭찬해주고, 귀찮은 설거지 등을 함께 해주는 누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음식을 준비해서 먹는 방식은 스스로의 마음과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다. 자신과 주변을 사랑하면 더 정성스럽게 준비하게 되고, 화가 나거나 너무 힘들면 아예 밥상 근처도 보기 싫다. 몸이 부서져도 자식 밥은 챙겼던 과거의 어머니들과 달리 요즘엔 배달 아니면 외식이 대세니 화목한 가정의 음식문화는 오히려 뒷걸음치는 것 같다. 함께 차리고 따뜻하게 나눠 먹는 건강한 밥상만큼 유대를 공고하게 하는 것이 있을까. 누군가에게 밥상을 대접해 준다는 것은 상대를 아끼고 존경한다는 메시지라, 정성스러운 밥상을 받은 사람은 차려준 사람에게 두고두고 빚진 기분도 들 것이다. 모든 것이 편리해지고 기계화된 시대이지만, 함께 요리해 따뜻하게 마음을 나누는 즐거움만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힘든 누군가가 주변에 있다면 무리한 조언이나 가르침을 강요하지 말고 그저 좋아하는 반찬이나 만들어 주면 그 힘으로 힘든 고비를 잘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우울증 치매 등 정신질환이 있을 때 비타민 B, C, D와 미네랄 등 영양제를 보충할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예후가 다르다는 연구가 많다. 신경세포 성장과 회복에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긴요하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건강한 밥상만 함께 나눌 수 있어도 비싼 병원비 치르지 않고 행복한 생활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만히 앉아서 대접받는 즐거움보다, 섬기고 대접하고 서로를 위하며 일하는 즐거움이 훨씬 더 크다는 점도 먼저 배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나미 서울대병원 교수·정신건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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