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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가 말하는 소멸과 죽음… 49편에 녹여내”

입력 : 2019-06-25 21:22:12 수정 : 2019-06-25 21:5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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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자서전’으로 그리핀시문학상 수상 김혜순 시인 / 세계적 권위… 亞 여성 첫 쾌거 / “加 시상식엔 백인들뿐이었는데 / 내 이름이 호명돼 너무 놀라… / 가장 아픈 詩는 엄마를 그린 詩 / 한국도 시 낭송회 활성화됐으면”

“캐나다 토론토는 아시아인과 백인들이 섞여 사는 미래도시 같은 느낌이었는데 정작 낭독회장이나 시상식 장소에는 모두 백인들뿐이었고 아시아인이라곤 저와 번역자밖에 없어서 수상하리라곤 전혀 예상도 못했습니다. 제 이름을 불러서 너무 놀랐고 현실이 아닌 것 같아 소감도 떠오르지 않았어요. 죽음을 생각하는 시적 감수성이 심사위원들 감수성에도 닿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아시아 여성 최초로 세계적인 권위의 시문학상인 캐나다 그리핀시문학상을 수상한 김혜순(64·사진) 시인이 25일 기자들과 만나 소회를 밝혔다. 김 시인은 “예전부터 이 상의 최종 후보에 오른 시집들을 사서 읽어왔다”면서 “1000여명이 참석한 시상식 전날 낭독회를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큰 극장에 많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와서 시인들의 시 낭송을 듣는 행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수상작은 최돈미씨가 영어로 번역한 시집 ‘죽음의 자서전’(문학실험실 2016, 영역본 ‘Autobiography of Death’)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던 개인적 체험과 세월호 참사 같은 사회적 죽음을 맞물려 담아낸 시집이다.

“시인의 감수성이라는 것은 소멸과 죽음에 대한 선험적 사유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이 시집은 죽은 자의 죽음을 쓴 것이라기보다는 산 자로서 죽음을 생각하는 내용입니다. 죽은 자가 완전히 죽음에 들기 전 환생의 소용돌이를 건너가는 49일을 염두에 두고 49편을 선별해서 수록했습니다.”

수상 소식을 듣고 기뻐하던 모친이 최근 작고했는데 김 시인은 49편 중에서도 “네 엄마는 네 아잇적 그 강기슭/ 네 엄마는 네 아잇적 그 오솔길”로 이어지는 ‘저녁 메뉴’라는 시편이 ‘엄마’라는 단어가 많이 나와 가장 아프다고 했다.

상금 6만5000캐나다달러(약 5700만원)는 저자(40%)와 번역자(60%)에게 나누어 지급됐다. 김 시인은 “영어로 번역된 시집에 주는 상이기 때문에 번역자에게 상금을 더 많이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그게 좋아 보였다”면서 “번역 과정에서 최돈미씨와 서로 개인사까지 소통할 정도로 긴밀하게 의견을 나누었다”고 말했다.

김 시인은 “페미니즘이 시와 만났을 때 어떤 작용과 과정을 거치고 어떤 드러냄의 방식을 취할지 생각하는 글을 썼다”면서 “바리데기 신화를 끌어온다든지 ‘유령하다’ ‘시하다’ 같은 시도들을 통해 여성으로서 글을 쓰는 의미를 확보하고 싶었다”고 다음달 초에 출간할 산문집 ‘여자짐승아시아하기’(문학과지성사)의 배경도 밝혔다. 이날 간담회에 동석한 문학평론가 이광호(문학과지성사 대표)는 “한국과 아시아의 여성적인 발화가 보편성을 보여주는 강력한 사건”이라며 “남성작가의 큰 이야기보다 여성의 발화에 세계 독자들이 호응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이번 수상에 의미를 부여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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