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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기업 재원으로 징용피해 배상”

입력 : 2019-06-20 06:00:00 수정 : 2019-06-19 22: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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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지난 주말 日에 제안 / 日 “수용 불가”… 기존 입장 반복

정부가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과 관련해 한·일 양국 기업에서 기금을 마련해 배상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는 지난 1월 청와대가 ‘기금 설치는 비상식적’이라고 밝힌 것과는 반대되는 대응이다.

외교부는 19일 ‘강제징용 판결 문제 우리 정부 입장’이라는 보도자료를 내고, “한·일 양국 기업이 자발적 출연금으로 재원을 조성해 확정판결 피해자들에게 위자료 해당액을 지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제기된 바 있다”며 “일본 측이 이런 방안을 수용하면 한일청구권협정 제3조 1항 협의 절차의 수용을 검토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지난 주말 일본을 비공개로 방문해 이런 방안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의 반응을 예단할 수 없다며 “진지한 검토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은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은 “(이날 제안은) 국제법 위반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므로 일본으로선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국 측에) 말씀드렸다”고 말했다고 NHK가 전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 배상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만약 일본이 이번 제안을 수용한다면 재단에 참여할 한국 기업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이익을 본 기업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정부는 청구권협정을 체결하면서 일본 정부에 대한 청구권을 포기하는 대신 5억달러의 경제협력자금을 받았고, 이 중 일부가 기업 지원 자금으로 쓰였다. 대표적인 기업이 포항제철(현 포스코)로, 전체 청구권 자금의 24%에 해당하는 1억1948만달러가 투입됐다. 일본에서는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중공업 등이 재원 조성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피해자·기업과 협의 안해… 외교부 대안 실효성 의문

 

정부가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판결과 관련해 ‘한·일 기업이 위자료를 부담한다’는 내용의 대안을 내놓으면서 이번 입장발표가 한·일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일본이 ‘해결책이 안 된다’며 부정적 입장을 내놓으면서 당장은 한·일 관계 개선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할 전망이지만, 향후 분위기가 바뀔 여지도 있다.

 

우리 정부의 입장 발표는 오는 28∼29일 있을 일본 오사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앞두고 나온 것이다. 일본 정부가 이번 사안과 관련해 한·일 정상회담 개최와 연계시키려는 태도를 보인 데 대한 대응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는 그동안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일본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른 분쟁 해결 절차인 ‘외교적 협의’, ‘제3국을 포함한 중재위원회 설치’ 등을 잇달아 요청했지만 우리 정부는 이를 수용도 거부도 하지 않은 채 “신중 검토” 입장으로 일관했다.

 

정부의 이번 제안은 그간의 입장과는 다른 행보이다. 한·일 기업이 기금을 조성해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도록 하자는 방안은 앞서 정치권과 외교가에서 해결 방안으로 대두되기도 했다.

 

당시 기금 조성안에 대해 외교 당국 간 논의가 이뤄졌다는 주장이 나오자 청와대는 반박했다. 김의겸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허구 위에 허구를 쌓은 격’이라고 지적하며 “정부와 양국 기업이 참여하는 기금이란 발상 자체가 비상식적”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이처럼 올 상반기까지 부정적으로 여겨졌던 방안을 정부가 입장을 바꿔 내놓은 격이다.

 

 

기금조성 방안에 대해 각계와 공감대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정부가 일본에 이런 제안을 하기 전, 피해자나 우리 기업과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 피해자 의견 수렴 없이 설립해 문제가 됐던 ‘화해치유재단’과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외교부 당국자는 기금을 조성해야 하는 기업에 대해 “자발적 참여로 기금이 마련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우리 기업들에 대해서도 의견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배상판결 대상인 일본 기업에 대한 입장 또한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기금 설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안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선형 기자, 도쿄=김청중 특파원 linea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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