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보건기구(WHO)가 그제 세계보건총회 B위원회에서 게임중독에 질병 코드를 부여했다. 게임중독을 공식 질병으로 분류한 것이다. WHO는 게임 통제능력을 상실하고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중요하게 여기는 증상을 게임중독으로 규정했다. 회원국들은 2022년부터 게임중독에 관한 질병정책을 펴게 된다. 의료계는 적극적인 예방·치료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지만 게임업계는 “국내 도입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정부는 국민 건강권과 게임업계 생존 모두를 고려한 최선의 대응책을 수립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게임을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스트레스 해소와 특정 인지능력 향상 등의 장점이 있다. 자제력을 잃고 중독에 빠지는 게 문제다. 청소년 12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1.8%가 ‘게임 과몰입 위험군’으로 나타났다는 통계도 있다. 게임에 중독되면 알코올·약물 중독처럼 두뇌활동이 저하된다. 감정조절을 제대로 못해 각종 사건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게임중독의 질병 분류는 국내 게임업계에는 생존을 위협하는 악재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23~2025년 국내 게임업계가 입을 경제적 손실을 10조여원으로 추산했다. 8700여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게임중독세’를 비롯한 각종 산업 규제가 신설될 가능성도 크다. 게임업계는 “충분한 연구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것” 등을 이유로 들면서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게임산업은 이동통신 5G(5세대) 시대를 이끄는 핵심 고부가가치 성장동력이다. 글로벌 게임시장은 규모가 150조원에 달할 정도로 커졌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시장의 10%, 전체 콘텐츠 수출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게임시장 선점을 위한 글로벌 전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게임산업이 타격을 입으면 우리의 미래 먹거리산업 하나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보건 당국은 전문가, 의료계, 게임업계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게임중독 개념·기준 정립 등을 위한 논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정책 시행까지는 아직 3년의 시간이 남은 만큼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 게임 폐인의 양산을 막되 게임산업도 보호할 수 있는 묘안을 찾는 것이 급선무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게임 강국 한국’의 이미지를 전세계에 각인시킨 수출 효자산업의 고사는 막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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