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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선 맥주, 사찰선 곡차 [명욱의 술 인문학]

입력 : 2019-05-04 14:00:00 수정 : 2019-05-08 09:4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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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맥주 문화를 이끄는 것은 수입맥주와 크래프트 맥주다. 다양성과 독특함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다양성은 어디서 올까? 대표적인 곳이 유럽의 수도원이다. 맥주는 중세시대부터 성지 순례로 오는 여행객에게 제공했으며, 수도사 스스로도 금식기간인 사순절 등에 마시기도 했다. 포도 등을 재배할 수 없는 아일랜드는 아예 미사 때 맥주를 쓰기도 했다. 벨기에의 수도원은 독일 맥주 순수령에 영향을 덜 받아 보리, 맥아, 홉 외에 밀, 오렌지 필, 흑설탕 등의 원료를 사용해 다양한 도수의 술을 탄생시켰다. 이들은 초콜릿이나 바나나, 아몬드 등 다양한 맛과 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는 크래프트 맥주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유럽의 수도원에서 맥주를 빚었다면 한국은 사찰에서 술을 빚었다. 사찰은 고려시대만 해도 숙박과 음식업 등 다양한 업무도 진행했다. 마치 유럽의 수도원과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사찰의 곡차 문화도 이 중에 하나다.

현재도 이러한 곡차 문화를 이어온 곳이 있다. 완주 수왕사의 주지스님이자 식품명인 제1호 조영귀 명인이 빚는 ‘송화백일주’다. 송화백일주는 이름 그대로 송화를 넣어 100일 이상 숙성하는 술이다. 늦봄에 송화를 채취하며, 가을에 수분이 빠진 솔잎과 산수유·오미자를 넣어 송화 죽을 끓이고 발효시키면 청주가 된다. 이러한 청주를 증류한 후에 다시 한번 송화, 솔잎, 산수유, 오미자를 넣고 1년에서 3년을 숙성하면 송화백일주라는 술이 완성된다.

식품명인 제1호인 조영귀 명인. 완주 수왕사 주지스님인 조 명인은 사찰의 곡차문화를 이어온 송화백일주를 빚는다. 송화백일주 제공

대나무로 유명한 전남 담양의 ‘추성주’도 사찰의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다. 사찰에서 과거시험을 준비하던 이영간이란 인물이 담양 연동사에서 마신 것이 시초이기 때문이다. 충남 서천의 ‘한산 소곡주’(素?酒)도 백제의 불교문화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백제의 음식문화는 불교의 영향으로 육식을 하지 않는 소선(素膳) 문화였다. 한산 소곡주의 소(素) 자가 바로 같은 한자를 쓴다. 불교의 상징인 연꽃의 연잎을 넣은 막걸리도 있다. 바로 충남 당진의 ‘백련 막걸리’다. 연꽃은 그 어떤 곳에 있더라도 주변을 정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단순히 술을 즐기는 것이 아닌, 나와 주변을 정화시키자라는 차의 의미를 담고 있다.

아쉬운 것은 유럽은 수도원의 맥주 문화를 세계적으로 알렸는데, 아직 한국은 그러지 못했다는 것. 수십년 동안 한국인의 정서 속에 싸게, 빨리,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관념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세분화되면서 다양한 각도에서 물질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성은 생각의 틀을 깨 주고, 사고의 패러다임을 확장한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빚는 이의 성향을 나타내는 사찰의 곡차 문화와 지역 전통주. 앞으로 더욱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다양성이 있기 때문이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일본 릿쿄대학(立敎大學) 사회학과 졸업. 현재 SBS팟캐스트 ‘말술남녀’, KBS 1라디오 ‘김성완의 시사夜’의 ‘불금의 교양학’에 출연 중.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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