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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의마음치유] 3만달러 시대의 정신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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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5-02 23:41:38 수정 : 2019-05-02 23: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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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 대상 ‘묻지마 범죄’ 갈수록 증가 / 조현병 환자 등 사회적 치료 관심 가져야

욱해서 아무에게나 폭력을 휘두르거나, 망상 때문에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죄의식 없이 성범죄를 반복하거나, 힘없는 이에게 막무가내로 갑질하는 사람이 날로 증가하는 것 같다. 미디어 보도뿐 아니라 통계자료도 그렇다.

물론 과거에도 통계에 잡히지 않고 알려지지 않아 그렇지 성격장애, 조울증, 조현병 등의 정신질환이 있었다. 피해자가 말하지 않고 묻어 둘 뿐이었기에 성범죄, 가정폭력, 납치로 인한 윤락행위 등 범죄 희생자의 사연도 무척 많았으나 법과 사회가 그들을 보호해 주지 못했다.

불과 몇 십 년 전에는 쥐도 새도 모르게 고문을 당하고 강제로 납치당해도 법에 호소하지 못했다. 물론 1970년대 이전에는 서양에서도 약자가 희생되는 가정 내 폭력이나 성범죄를 지금처럼 엄격하게 다루지 않았다. 성희롱, 성폭력 피해 여성이 공적으로 가해자를 폭로하고 벌 주자는 서양의 ‘미투’ 운동이 시작된 게 불과 몇 년 전이다. 부끄럽고 후회스럽지만, 필자를 포함해 대부분의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가조차 사회적으로 약자를 돕기 위해 법률과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지금은 그나마 여성, 아이, 노인, 장애인, 외국인, 성적 소수자 등의 사회적 약자나 비주류 집단이라 하더라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법적인 테두리에서 기본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고 믿고 나름 힘을 보태는 이들이 많아졌다. 당사자 역시 수동적으로 피해자 역할에만 머물지 않고, 집단을 형성해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기도 한다. 그런 입장에 처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의 눈으로 보자면 때로 너무 과격해 보이기도 하고, 이해 가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약자나 피해자의 다양한 사회적 목소리가 표현되고 그들의 정신적인 상처까지 공적으로 다룰 수 있는 사회는 일단 성숙한 선진 사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높은 자살률, 너무 관대하게 허용되는 알코올 중독, 재활이나 치료가 터무니없이 부족한 조현병 환자를 위한 시설 등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다.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가장 효율적으로 최고수준의 신체 건강을 유지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지만, 정신질환의 사회적 치료 부분은 아직 중진국 수준 정도다. 충분히 치료받으면 정상이 될 수 있는 조울증, 우울증, 조현병, 성격장애 등의 환자가 그대로 방치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결혼을 기피해 핵가족조차 없으니 이웃이 자살해도 몇 달 후에 발견되는 일이 다반사다.

과거에는 가족이 정신질환자를 위한 일종의 충격흡수 장치가 돼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보듬어 주었지만, 요즘엔 부모 형제 부부도 서로 모른 체하니 분노의 방향이 무차별적으로 사회 전체에 향하기도 한다. 물론 우리나라만 이런 상황을 겪는 것은 아니다. 북유럽 국가도 70년대 전후 국민소득이 3만달러 전후였을 때에는 세계에서 자살률도 가장 높고, 불행감도 심각했다.

워낙 흉흉한 소식이 많이 들리다 보니 정치인도 자신의 안위에만 사활을 걸지 말고 정신질환자 이웃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안전한 마을, 자살을 택하지 않아도 방법이 있는 선택지가 존재하는 여유 있는 나라를 만드는 데에도 관심을 좀 기울여 주면 좋겠다.

이나미 서울대병원 교수·정신건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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