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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얼굴기형 어린이 수천명 무료수술한 ‘글로벌 선의’ [나의 삶 나의 길]

, 나의 삶 나의 길

입력 : 2019-04-27 10:00:00 수정 : 2019-04-26 20: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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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윤곽수술 최고 권위 분당서울대병원 백롱민 부원장 / 1989년 스승 백세민 교수 따라 봉사 시작 / 1996년부터 매년 개도국 찾아 무료수술 / 베트남 가면 1주일간 100∼150명 수술 / 현지 의료계선 ‘고마운 한국 의사’로 통해 / 장비 지원 물론 의사에 기술 전수·교육도 / 베트남 정부로부터 ‘국가 우호훈장’ 받아 / “수술 후 더 기뻐하는 부모들 볼 때 보람 / 남북관계 좋아져 북한 어린이 치료 소망 /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놓아 나누어 먹듯 / 제가 할 줄 아는 유일한 일을 했을 뿐”
베트남인들에게 박항서 축구대표팀 감독은 ‘국민 영웅’으로 불린다. 변방에 머물던 베트남 축구를 도약시켜 그들에게도 ‘할 수 있다’는 자긍심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활약 덕에 한국과 한국인의 위상도 덩달아 올랐다. 분야는 다르지만, 베트남 의료계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고마운 한국 의사’로 불리는 이가 있다. 바로 분당서울대병원 백롱민(61·성형외과 교수) 연구부원장이다. 안면윤곽 수술 최고 권위자인 백 부원장은 1996년부터 매년 베트남을 찾아 태어날 때부터 구순(입술이 갈라지는 병)이나 구개열(입천장이 갈라지는 병) 등의 얼굴기형으로 웃음을 잃은 어린이들에게 23년째 무료수술을 해주고 있다.

 

2016년에는 베트남 정부로부터 국가 우호훈장을 받았다. 이 훈장은 외국인에게 수여 가능한 최고훈장이다. 베트남뿐 아니라 몽골 우즈베키스탄 등 개발도상국 10여개국 어린이 4400명의 얼굴기형을 무료수술해온 선의(善醫)로 꽤 유명하다. 언론 등 주변에서 그의 봉사활동에 관심을 드러내면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놓아 밥을 나누어 먹듯이, 제가 할 줄 아는 유일한 일이고 직업으로 하는 일을 다른 장소에 가서 했을 뿐”이라며 겸손해한다. 지난 연말에는 서울대 의대 동창회에서 주는 ‘장기려 의도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린 고 성산 장기려 박사의 업적과 헌신적인 이웃사랑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22일 경기도 성남 분당서울대병원 성형외과 사무실에서 백 부원장을 만났다. 진료와 연구부원장 일로 늘 바쁜데도 어렵게 시간을 냈다. 환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는 그는 시종 밝게 웃으며 봉사하는 의사로서의 그간의 삶을 얘기했다. 남북관계가 개선돼 하루빨리 북한 어린이도 치료해주고 싶다는 소망도 밝혔다.

구순·구개열 수술 권위자인 분당서울대병원 백롱민 부원장은 23년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개발도상국 얼굴기형 어린이들을 무료수술해 ‘고마운 한국인 의사’로 불리는 글로벌 선의(善醫)다. 그는 인터뷰에서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놓아 밥을 나누어 먹듯이 제가 할 줄 아는 유일한 일을 하고 했을 뿐”이라며 “웃음을 잃은 아이들이 수술을 통해 새 삶을 찾고 그의 온가족이 웃음을 되찾을 수 있는 이 일을 도저히 멈출 수 없다”고 말한다. 이제원 기자

―요즘 근황은.

“(기자에게) 먼저 자꾸 의료봉사라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저 스스로 이걸 봉사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제가 남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가 얼굴기형 애들 수술하는 거다. 그게 우리나라이든 베트남이나 미얀마이든 다 똑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얼굴기형 어린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수술하는 것뿐이다. 요즘도 평소처럼 병원에서 성형외과 진료와 수술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연구부원장 보직도 맡고 있다. 병원은 당장은 진료로 먹고살고 있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연구는 필수적이다. 향후 미래 의료산업을 지탱할 것으로 기대되는 분야의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해외 어린이 진료 준비도 하고 있다. 7월에는 베트남, 11월에는 미얀마를 갈 예정이다. 매년 하는 일이지만 늘 설렌다.”

―얼굴기형 어린이 무료수술을 시작한 계기는.

“초보 의사이던 1989년부터 형님이자 스승인 백세민 교수를 따라 얼굴기형 어린이를 위한 이 일을 시작했다. (백세민 박사는 1980년대 얼굴기형 수술의 권위자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일반외과와 성형외과에서 전문의를 취득한 후 미국 시나이병원 성형외과 과장을 역임하는 등 전도유망한 성형외과 전문의였다. 하지만 그는 “나를 낳고 키워준 조국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며 국내 얼굴기형 환자치료를 위해 귀국해 봉사활동을 벌여왔다) 형님을 따라 국내 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며 얼굴기형 환자를 순회 진료했다. 그때 얼굴기형 환자들의 고충을 피부로 느끼게 됐다. 얼굴기형 환자들은 놀림을 당할까 봐 외부 접촉을 극도로 기피한 채 집에서만 지낸다. 얼굴기형 환아들이 적어도 돈이 없어 수술을 받지 못하는 일은 없게 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것이 무료수술 봉사였다. 또 당시에는 얼굴기형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보건소 등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강의했다. 교육, 홍보 활동을 통해 얼굴기형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치료를 통해 정상적인 사회생활도 할 수 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점차 많아지고 봉사활동의 규모가 커지면서 조직화가 필요하게 됐다. 1995년부터는 ‘세민얼굴돕기후원회’라는 사단법인을 세워 체계적으로 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얼굴기형 수술뿐 아니라 장비지원은 물론 현지의사들 교육도 한다고 들었는데.

“우리나라는 의료기술의 발달과 안정적인 건강보험 덕택에 대부분 만 1세가 되기 전에 치료를 받는다. 하지만 베트남 등 의술이 발달하지 못한 개발도상국에서는 꿈같은 이야기다. 1996년부터 시작한 베트남 의료봉사는 단순 물품 지원에 그치지 않고 현지 의료진이 환자를 스스로 치료할 수 있도록 필요한 기술을 전파하고 교육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낚시에 비유하자면 물고기를 매번 직접 잡아줄 수는 없으니 잡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현지 의료진을 매년 한국에 초청해 1년간 교육을 하고 있다. 2014년부터 현재까지 베트남뿐만 아니라 이집트, 인도, 몽골 등 5개국에서 성형외과 전문의 12명이 다녀갔다. 이들은 귀국해서 현지 의료기술 발전에 큰 몫을 수행하고 있다.”

―얼굴 기형은 왜 생기고 원인은, 환자는 어느 정도인가. 수술하면 완치가 가능한가.

“얼굴기형은 얼굴에 생긴 선천적, 후천적 기형 및 외형의 이상을 아우르는 말이다. 원인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500명 중 1명에서 나타난다. 얼굴기형을 가진 환아들은 얼굴의 외형적 장애를 제외하고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아무 이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외모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현재는 의학의 발달로 대부분의 얼굴기형은 정상적 사회생활을 하는 데 지장이 없을 만큼 치료가 가능하다. 문제는 저개발국이다. 먹고살기 힘든 이들 국가에서는 이런 투자를 할 여유가 없다. 얼굴기형 어린이들은 주변의 시선 탓에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불가촉천민이나 다름없다. 아이의 부모는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고 자책한다. 이들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성형외과 의사다. 할 수만 있다면 한 명이라도 더 웃음을 찾아주고 싶은 게 제 마음이다.”

―그간 수술한 아이들에 관해 얘기해 달라. 특별히 기억나는 환자가 있다면.

“국내에서는 1989년부터 4600여명의 얼굴기형 어린이를 진료했고, 1200여명을 수술했다. 1996년부터는 해외로 활동 범위를 넓혀 베트남, 몽골,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미얀마 등지에서 4400명의 얼굴기형 어린이들을 무료로 수술했다. 여러 번의 대수술 끝에 회복한 베트남 환자가 기억에 남는다. 어릴 때 수류탄을 가지고 놀다 폭발 사고를 당해 얼굴과 몸통, 손을 포함한 전신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후유증으로 턱이 목과 붙어 입을 제대로 다물 수조차 없었다. 손가락은 서로 붙어 있는 합지증도 갖게 되었다. 현지에서 수술이 어려워 국내로 초청해 2~3번에 걸친 대수술을 진행했다. 10대 후반에 첫 수술을 받았는데, 몇 년 후 집에서 농사지은 걸 가지고 인사하러 왔다. 마을 대장간에서 일하고 있고, 결혼까지 했다. 수술 후에 자신감을 되찾고 활발히 사회활동을 하는 이들의 모습을 볼 때 보람이 크다. 어린아이를 수술하고 나면 환자보다 더 행복해하는 사람이 그 부모다. 수술 후 달라진 아이의 얼굴을 확인하고 밝게 미소 짓는 부모의 얼굴을 마주할 때 느끼는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제가 회장으로 있는 세민얼굴기형돕기회의 영어 이름도 ‘Smile for Children’으로 지었다.”

―그간 해외의료봉사를 하면서 난관도 적지 않았을 것 같다.

“베트남을 예로 들자면 한번 봉사를 나가면 일주일간 100~150명의 어린이를 수술한다. 현지 수술장은 낡았고 장비는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수술에 필요한 모든 장비와 물품을 한국에서 가져가 세팅해야 한다. 환자 상태와 수술 계획을 검토한 후 5개의 수술 테이블을 동원해 하루에 20~30명의 아이를 수술해야 하니 한순간도 쉴 틈이 없다. 경비 마련도 녹록지 않았다. 기업 후원을 받기 위해 해당 국가에 사업장을 가진 기업 홍보팀 혹은 사회공헌팀 직원을 찾아가 일일이 의료봉사의 취지를 설명하고 설득했다. 다행히 사회공헌에 뜻을 가진 SK텔레콤, 포스코대우, 아시아발전재단, 디케이킴코리아 재단, KT&G, 로터리클럽 등 파트너들의 지원을 받아 안정적으로 봉사활동을 진행해 올 수 있었다. 어려운 가운데도 선뜻 지원해주는 기업들이 있어 고마울 따름이다.”

―남북 관계가 유동적이나 교류 재개 가능성이 상존한다. 평소 북한 어린이 수술 지원에 대해 자주 언급해왔는데.

“지난 20여년간 얼굴기형 환아를 위한 협력사업을 준비해왔다. 합의서까지 작성하고도 급작스러운 남북 관계 변화로 번번이 좌절했다. 2002년 평양에 가서 당국자를 만나 사업 추진을 제의했는데 서해교전이 터졌다. 2009년에는 개성과 평양에 들러 다시 설명하고 의견도 접근했는데 이번엔 천안함 사건이 터졌다. 오랫동안 생각하고 준비했지만, 여건이 받쳐주질 않았다. 지금도 저로선 북한 의료봉사는 가장 큰 목표이자 숙원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성형외과의 개념조차 희미하기에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얼굴기형 어린이가 많다. 북한에서 이들을 자체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도록 돕고 싶다. 일회성의 단순 물품 지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베트남 해외봉사 모델처럼 우리의 의료기술, 즉 소프트웨어를 전파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준비하다 보면 다시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핏줄인 북한의 얼굴기형 어린이들에게도 웃음을 되찾게 해주는 소망은 늘 갖고 있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백롱민 부원장이 수술을 끝낸 베트남 어린이를 살펴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백롱민 교수 제공
백 부원장은… △1958년 부산 출생 △1984년 서울대 의과대 의학과 졸업 △1996년 베트남 의료봉사 시작 △2003년 분당서울대병원 성형외과 교수 △2008∼2013년 분당서울대병원 진료 부원장 △2002년 사단법인 세민얼굴기형돕기회 회장 △2009년 한국적십자박애장 은장 △2013년 대통령 표창 △2014년 오드리헵번 재단 인도주의상 △2016년 베트남 국가우호훈장(외국인에게 수여 가능한 최고 훈장) △2016년∼현재 분당서울대병원 연구부원장 △2018년 장기려의도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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