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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일의혁신리더십] ‘업’의 경계 허무는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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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4-11 21:28:38 수정 : 2019-04-11 21:2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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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타이어, 사명에서 ‘타이어’ 단어 빼 / 사업 다각화 통해 새 성장동력 찾기 몸부림

지난 3월 주총에서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란 지주회사가 회사 이름에서 ‘타이어’라는 단어를 빼기로 했다고 한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으로 사명이 바뀌는 이 지주회사는 1941년 설립돼 타이어 시장에서 매출 기준 현재 세계 7위인 한국타이어를 소유하고 있다. 한국타이어가 그룹 전체 매출의 95%를 차지하고 있고, 그래서 누가 보기에도 타이어 회사인 이 회사의 경영진은 왜 그룹의 정체성이나 다름없을 ‘타이어’란 단어를 사명에서 떼어내려 하는 걸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타이어 사업만 가지고는 지속적인 성장은 물론 생존 자체가 힘들어질 것이라는 판단이다. 침체에 빠진 자동차 산업의 영향으로 성장이 둔화하자 살아남기 위해 자동차 부품사업에 진출하려고도 해보고 이런저런 인수합병(M&A)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회사명에 타이어란 단어가 들어있으니 많은 사람이 ‘왜 타이어 회사가 이런 사업을 합니까’라고 의문을 갖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회사 이름에 타이어가 들어가 있기에 임직원이 타이어 이외의 사업 가능성과 혁신에 대해 고민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많은 상황에서 형식은 내용을 지배하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멀쩡한 사람이 예비군복을 입으면 행동이 느려지고 반항기가 생기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반대로 멋진 제복을 입으면 왠지 행동거지를 바르고 프로페셔널하게 해야 할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마찬가지로 회사 이름에 타이어란 단어가 들어가 있으면 이 회사에 근무하는 임직원은 타이어에 대한 고민만 하면 된다는 생각의 틀을 벗어나기 힘들어지게 된다.

사실 글로벌 기업이 사명이나 로고에서 자신의 정체성이나 다름없는 단어를 지우기 시작한 지는 이미 오래전이다. 대표적인 회사가 스타벅스이다. 과거 이 회사가 사용했던 로고를 보면 한가운데 미소를 띠고 있는 바다의 신인 ‘세이렌’이 있고 상단에는 스타벅스라는 단어가 하단에는 커피라는 단어가 영어로 쓰여 있었다. 하지만 이 회사는 2011년 로고를 다시 만들면서 가운데 있는 여신의 크기를 키우고 스타벅스와 커피라는 단어를 삭제한다. 스타벅스조차도 커피 위주의 사업모델만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이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 후 스타벅스는 다양한 사업을 통해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가장 변화가 천천히 이루어지는 은행업계에서도 이제 자신들의 정체성을 과감히 무너뜨리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사명에서 ‘은행(bank)’이라는 단어를 지우고 있다.

시티은행(Citi Bank)이라 불렸던 회사의 미국 홈페이지를 가보면 Bank는 사라졌고, Citi만 보인다. 미국을 대표하는 은행인 JP모건체이스(JPMorganChase)나 웰스파고(Wells Fargo)의 이름 어디에도 은행이란 단어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은 은행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기보다 종합금융회사나 투자회사로 업의 경계를 넓혀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경영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는 전략의 변곡점에 서 있다. 망하지 않으려면 업의 본질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필요하다. 왜 한국타이어가 사명에서 타이어를 떼어내고 스타벅스의 로고에서 커피라는 단어가 사라질 수밖에 없는지 고민해 보자. 생존을 위해서 포기할 것을 찾는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정동일 연세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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