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우리 정부는 북·미 대화 촉진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정부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연일 ‘한·미 간 비핵화 목표 합치’를 성과로 내세우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북·미 대화를 견인하는 것은 비핵화 목표 합치보다는 제재 완화에 대해 미국이 태도를 바꿀지에 달렸다는 분석이 강하다. 한·미 정상이 북·미 간 중간 단계의 주고받기를 뜻하는 ‘굿 이너프 딜’(충분히 괜찮은 거래)과 ‘얼리 하비스트’(조기수확)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반면 미국 측이 방위비 분담금 인상, 한·미·일 동맹 강화 등 ‘동맹 청구서’를 또다시 내밀 가능성도 크다.

◆靑, “완전한 비핵화에 ‘한·미 의견 일치’ 연일 강조
문 대통령은 1박3일 일정의 이번 방미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잇달아 접견한 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2시간에 걸쳐 친교를 겸한 단독회담, 확대회담을 갖는다. 두 정상의 만남은 지난해 11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이후 4개월 만으로, 문 대통령이 취임한 뒤 7번째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무리하고 오후 워싱턴에서 출발해 12일 밤에 귀국할 예정이다.
우리 정부로서는 이번 한·미 회담에서 차후 북한을 움직일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미국의 부분적 제재 완화 가능성 등이 이러한 동력 확보의 토대가 될 수 있다. 미국은 아직까지 묵묵부답이다. 현재로선 북한의 움직임 없이 미국의 부분적 제재완화를 얻어내기는 쉽지 않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우리 정부가 얻어낼 실질적 성과에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9일 “중요 포인트는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최종 상태, 즉 엔드 스테이트”라며 “(이에 대해선) 한·미 간 의견이 일치하고,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한 로드맵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한·미 간) 의견이 일치한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톱다운 방식과 제재의 틀은 계속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의 발언으로 비춰 문 대통령은 일단 제재완화 입장을 고수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경청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면서도 ‘굿 이너프 딜’과 ‘조기 수확’ 방안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 로드맵을 설정하자고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가능성이 있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미국 내 강경파가 판을 지배하기 이전에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돌릴 필요는 있지만, 공개적으로 정상회담을 하기에는 시기적으로 좋지 않다”며 “북·미 사이에서 물밑 협의를 통해 로드맵의 ‘디테일’ 합의를 더 하는 게 좋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이날 선전매체를 통해 “좋게 발전하는 북남관계가 지지부진해지는 것은 미국과 남조선 보수세력의 압력에 겁을 먹고 기가 눌린 (남측) 당국의 줏대 없는 처사 때문이라는 것이 남조선 각계의 평”이라고 우리 정부를 압박했다.

◆美 ‘동맹 청구서’ 제시할 가능성… 한·일 관계 개선 압박 관측도
미국 측이 우리 정부의 북·미 대화 재개 ‘촉진 외교’에 동의하는 반대급부로서 ‘동맹 청구서’를 내밀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미국 입장에서 한·미 정상회담 조기 개최의 목적 중 하나는 한·미·일 삼각동맹 강화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미국은 정상회담에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에 지지하도록 요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태평양 기동군화 등 미국이 최근 추진하는 아시아 전략에서는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한·미·일 삼각 협력 강화가 더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근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한·일 관계에 대해 미국이 우려를 은근히 전달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전날 이임하는 이수훈 주일대사에게 대북 문제와 관련된 사안에 한·일 협력을 언급한 것도 미국 측 요구를 감지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이번 회담에서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 시 우리 측 분담금 총액 인상이나 작전지원 항목 신설을 요구할 여지도 크다.
홍주형·박현준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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