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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든 조종석 앉으면… 여기가 바로 하늘 위

입력 : 2019-03-27 07:00:00 수정 : 2019-03-27 07: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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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 시뮬레이션 센터 이석호 대표 / 고교 시절 처음 접한 시뮬레이션 / 비행 매력 푹 빠져 직접 제작 나서 / ‘트럭 보잉-737 시뮬레이터’ 입소문 / 항공사 교육용으로 사용되기도 / “악조건 극복하고 착륙할 때 짜릿”
30여년에 걸친 비행 시뮬레이션 취미 활동으로 보잉-737 시뮬레이터를 구축한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센터 이석호 대표.
스위치가 빽빽하게 들어찬 계기판엔 불이 켜지고 손바닥만 한 스크린들엔 기상·고도·방향 등 각종 정보가 나타났다. 창밖엔 김포공항의 널따란 활주로와 구름이 흘러가는 푸른 하늘이 가득찼다. 목적지 설정 등 사전 작업을 마친 후 ‘스로틀’로 불리는 추력 레버를 미는 순간 창밖 풍경은 굉음속에 시야 뒤편으로 흘러갔고 기체는 어느 순간 창공으로 솟아올랐다. 이곳은 조금 전까진 김포공항 인근 한 빌딩 평범한 4층 사무공간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서울 김포공항을 출발해 제주로 날아가는 여객기 조종석이다. 조종석 수많은 계기반과 단추 중 어느 하나 가짜가 없듯 비행도 하늘의 구름처럼 실시간으로 흘러갔다.기체는 김포공항 상공 1만피트에서 자동항법 조종으로 전환된 후 제주를 향한 순항을 시작했다. 문득 실제에선 벌어지기 힘든 상황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럼에도 조종석에 앉은 순간부터 증폭된 몰입감은 ‘추락’ 같은 극단적 경험은 피하게 하였다. 시뮬레이터의 사실감은 놀라울 정도였다. 가상현실이라도 추락을 연출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지금 막 이륙한 김포공항으로 회항해줄 것을 조종사에게 요청했다.

 

즉석에서 목적지 정보가 수정된 후 다시 자동조종 기능이 활성화되자 기체는 계기 스크린에 표시된 김포공항으로 향한 빨간 선을 쫓아 급선회를 시작했다. 기체가 심하게 기울 때 느낌은 실제 비행기를 탄 것과 다름없었다. 이내 착륙 경로에 진입한 기체는 활주로 접근을 시작했고 조종사는 때맞춰 랜딩기어를 내린 후 사뿐하게 내려앉았다. 짧은 비행이었지만 사실감은 제대로 느낀 ‘보잉-737NG’ 시뮬레이터 체험이었다.

이 공간의 주인은 고등학생 때부터 비행기를 조종하는 맛에 매료된 이석호씨. 형 컴퓨터로 시작한 항공 시뮬레이션 취미 활동이 덩치를 키우고 키워 보잉 여객기 시뮬레이터를 스스로 조립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어릴 때부터 비행기를 너무 좋아했습니다. 비행 시뮬레이션을 처음 시작한 건 고등학생이었던 1988년, 대학 전산학과 다니던 형 컴퓨터로 시작했는데 ‘도스(DOS·윈도 이전 PC운영체제)’ 시절이라 지금과 비교하면 그래픽이 형편없었지만 그런데도 좋았습니다.”

이후 군 생활도 공군에서 5년간 F-5 기체 정비사를 하는 것으로 끝마쳤다. 공군 정비사 출신은 통상 항공사에서 경력을 이어가는데 군대 문화가 싫었던 이씨는 일반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대신 비행의 꿈은 비행 시뮬레이션으로 이어갔다. 남들처럼 PC에 조이스틱을 연결하는 게 전부였던 그의 조종석은 1998년 시뮬레이션용 ‘보잉-747 모드 컨트롤 패널(MCP)’을 호주에서 주문하는 것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다이얼버튼으로 비행기 좌표를 설정해주는 계기판인데 당시 700만∼800만원짜리로 경찻값에 육박했다

이씨의 조종석 만들기는 그때부터 본격화됐다. 수년에 걸쳐 외국 시뮬레이터 전문업체를 수소문해 비행기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는 플라이트 매니지먼트 컴퓨터(FMC)를 장착하고, 터치 모니터를 더하면서 집안에 747 조종석을 꾸몄다.

이씨의 취미 생활 스케일이 확 커진 건 2009년부터다. 조종석을 꾸미다 보니 집이 좁아져 아예 5t 트럭에 시뮬레이터를 탑재하기로 마음먹었다. 기존 시스템은 정리하고 먼저 트럭을 산 후 무진동 기능을 갖춘 탑재 칸을 장착해 2년에 걸쳐 MCP, FMC는 물론 통신·오버헤드 패널과 스로틀 및 각종 등화류 등을 거의 완벽하게 갖춘 시뮬레이터를 혼자 직접 조립했다. 거액이 들었는데 시뮬레이터 조립 도중에 사업화 제안도 있긴 했으나 성사되지는 않았다.

트럭 시뮬레이터가 완성된 후 첫 비행은 늘 즐기던 김포-제주 구간. “시뮬레이션이니 비행시간을 단축할 수도 있지만 저는 항상 실시간으로만 비행하는 걸 원칙으로 지킵니다. 그러다 보니 장거리 구간보다는 가까운 구간을 많이 비행하고 737기종을 택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가장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악조건을 극복하며 비행, 착륙할 때입니다. 제일 심각한 건 엔진 두 개가 다 정지된 상태일 텐데 활강만으로 착륙할 때 성취감을 느끼죠.”

항공인들 사이엔 트럭에 실린 보잉-737 시뮬레이터가 화제가 됐다. 소문이 퍼지고 직접 체험한 항공사 기장이 추천한 결과 이씨의 시뮬레이터는 2012년부터 모 항공사 본사에서 교육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실제 여객기를 조종하는 이들이 요구하는 시뮬레이터 수준은 훨씬 높았다. 고민 끝에 이씨는 아예 이탈리아 전문업체 제품으로 새로 시뮬레이터를 만들기 시작했고 2016년 4월 완성된 게 최근 김포공항 인근 빌딩 4층으로 옮겨 설치된 보잉-737 시뮬레이터 2호기다. 항공사 교육사업이 최근 종료된 것을 계기로 이씨는 항공 시뮬레이터 교육사업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플라이트 시뮬레이션 센터를 차렸고, 최근 추락사고가 발생했지만 민항시장 차세대 주역기로 각광받고 있는 최신형 보잉-737맥스 시뮬레이터 구축도 연내 완성을 목표로 시작했다. “시뮬레이터를 혼자 조립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기를 들여와서 일일이 연결하는 ‘와이어링’ 작업을 거쳐 프로그램과 연동을 시켜줘야 하는 과정의 연속인데 그래도 그 과정이 너무 즐겁고 완성한 후 비행하는 기쁨이 보상입니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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