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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의 기억’ 잊는다면… 비극은 또 반복 된다 [김기자와 만납시다]

입력 : 2019-03-24 09:00:00 수정 : 2019-03-24 09: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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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천막 철거를 보고 / 성수대교·삼풍백화점 잇단 붕괴 / 위령비·위령탑 세웠지만 잊혀져 / 학생들 목숨 앗아간 인천 호프집 / 미성년 이유로 주위 시선은 싸늘 / 참사 유족들 “시스템 제대로 구축 / 또다른 희생자 더 이상 안나오길”
지난 18일 서울시 관계자들이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천막을 철거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지난 18일 서울시 관계자들이 세월호 천막 철거 후, 물청소를 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5년가량 서울 광화문광장에 있던 ‘세월호 천막’이 철거된 지난 18일, 현장에 있던 시민들 사이에서 “‘기억 공간’을 설치하면 끝인가”라며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아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는 탄식이 나왔다. 누군가는 “‘기억 공간’도 곧 잊힐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 반복된 참사를 떠올리면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다. 대형 참사가 날 때마다 희생자를 기리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동시에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도록 교훈 삼자는 취지로 위령비 등의 조형물을 세우곤 한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위령비의 존재는 잊혀지고, 또다시 인재(人災)가 되풀이된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과 관련해, 가슴 아픈 일도 시간이 지나면 잊는 것은 힘든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라는 얘기가 있다. 그렇다고 공동체 구성원들이 ‘사회적 참사’로 인한 교훈마저 잊어선 곤란하다. 그러지 말자고 위령비 등의 조형물까지 세운 것 아닌가.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 등 주요 참사가 발생한 곳 주변에 자리한 위령비와 위령탑을 둘러봤다.

​성수대교 붕괴사고 21주기인 2015년 10월21일. 성수대교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열린 합동 위령제에 참석한 유족. 연합뉴스

◆잊히다… 성수대교 붕괴 희생자 위령비

서울 성동구와 강남구를 잇는 성수대교 북단 나들목 인근에 ‘성수대교 희생자 위령비’가 있다.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자 사고 발생(1994년) 3년 뒤인 1997년에 세워졌다. 사고일(10월21일)이 되면 유족들은 이곳에서 위령제를 지내고, 서로의 아픔을 위로한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현장. 구조에 동원된 각종 선박과 중장비. 연합뉴스

성수대교 남북단 교각 근처도 설치장소 후보로 거론됐으나, 침수 우려와 사고 장소를 잘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지금 자리에 세워졌다. 다만 서울숲 지하차도와 강변북로를 잇는 양방향 도로가 위령비를 휘감은 탓에 도보로 접근하기가 어렵다. 그래서인지 위령비의 존재를 아는 시민은 드물었다. 최근 서울숲에서 만난 시민들은 “성수대교 위령비가 어디 있는지 아느냐”는 물음에 “그런 게 있느냐”고 반문하거나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김학윤 성수대교 유족회 대표는 “아픔을 겪지 않고서는 당사자 마음을 누구도 모르기에 유족들이 서로에게 큰 힘이 된다”며 “안전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으면 비슷한 사고는 계속 터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20주기를 나흘 앞둔 2015년 6월25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삼풍참사위령탑 앞에 놓인 꽃다발. 연합뉴스

◆또 잊히다… 삼풍백화점 희생자 위령탑

서울 서초구 양재시민의숲 끄트머리에는 석탑이 서 있다. 1995년 6월29일 발생해 1439명(사망자 502명, 부상자 937명)의 사상자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탑이다. 1998년에 8m 높이로 설치됐다. 얼마 전 가까이 다가가 보니 누군가 두고 간 꽃다발이 보였다. 누렇게 바랜 꽃잎을 보는 순간 숙연해졌다. 사망자 이름과 ‘보고 싶다’는 말이 적힌 쪽지가 있었다. 지난 20여년간 가슴 속에 그리움을 박고 산 추모객의 깊은 슬픔이 전해졌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 연합뉴스

삼풍백화점 위령탑도 일부러 찾아오지 않는 한 망각의 강에 잠긴 듯했다. 주변에서 만난 한 시민은 “아는 사람만 알 뿐 대부분 평생 모를 것”이라고 건조하게 말했다. 위령탑이 더욱 쓸쓸해 보였다.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에 설치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위령비. 김동환 기자
인천 중구 인현동 호프집 화재현장. 연합뉴스

◆또, 또 잊히다… 인천 호프집 화재 위령비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인천 중구 인현동)에 가면 인현동 호프집 화재사고(1999년)로 숨진 학생들을 추모하는 위령비를 볼 수 있다. 사고 당일 건물 지하 노래방에서 시작된 불은 30여분 만에 진화됐지만 비상계단 등 방재·대피시설 미비로 100여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다. 특히 해당 호프집은 청소년에게 술을 판 게 적발돼 폐쇄 명령을 받고도 영업한 게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어떤 위령비인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위령비 근처를 지나친 이들에게 인현동 호프집 화재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비라고 설명하자 “조각상 아니었냐”고 반문했다. “앞으로 또 다른 참사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는 김학윤 성수대교 유족회 대표의 말이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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