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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의인문학산책] 숲을 만드는 남자

평생 흙을 만지며 산 건축가 부부/모든 해답은 위대한 자연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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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3-08 21:12:05      수정 : 2019-03-25 14:54:08

무엇보다도 그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만이 할 수 있는 인터뷰를 거절하는 ‘태도’에서였다. “저도 이제 구십이어서 제 시간을 소중히 하고 싶습니다.” 그 ‘소중한 시간’에 그는 낙엽을 모았고, 마당에 열린 과일을 땄고, 정원을 바라보며 아내와 대화했다. 그리고 문짝을 뗀 후 종이를 떼어 내고, 뗀 자리에 새 장지를 발랐다. 부인 히데코가 제안한 모양이다. 이제 이렇게 번거로운 일은 다른 사람을 시키자고. 그는 이렇게 아내를 설득했다. 우리가 하니 시간은 걸릴 테지만 그만큼 보이는 것이 있을 거라고.

 

두 번째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대만에서 책 사인회를 끝내고 나서였다. 그는 젊은 시절 대만 해군기지 공장에서 함께 일했던 대만 친구 천칭순(陳淸順)의 묘를 찾았다. 대만정변에서 총살당했다는 친구의 묘는 엉망이었다. 그는 차근차근, 천천히 묘비 옆 땅을 팠다. 거기에 젊은 날 친구가 직접 새겨주고, 그가 평생을 지녀온 아름다운 도장을 묻어 주었다. 그러고는 생수로 그의 비석을 씻겨 주었다. “잘가요, 천군!” 울먹이며 친구에게 이별을 고하는 그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그가 바로 일본 건축가 쓰바타 슈이치(津端修一)다. 평생 흙을 만지며 산 건축가 부부의 다큐영화 ‘인생 후르츠’를 보면서 내 안에서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일깨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쓰바타는 경제 개발이 우선이던 1960년대 일본에서 고조지 뉴타운 설계에 참여했다. 물론 뉴타운은 쓰바타의 설계대로 건축되지는 않았다. 고조지가 산이었음을 알려주는 설계로 마을의 숲을 남겨 바람의 길을 만들고 싶었으나, ‘경제성’에 밀려 산은 깎여 나가고 계곡은 묻혔다. 그 자리에 성냥갑 세워놓은 것 같은 건물 8만호가 들어선 것이다.

 

그는 시끄럽게 저항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조용히 일본 주택공단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75년, 토지 300평을 샀다. 거기에 15평짜리 작고 안락한 집을 짓고, 대부분의 땅에는 나무를 심고 농작물을 심었다. 나무 밑에는 수반을 두어 작은 새가 날아와 물을 먹게 했다. 새의 옹달샘까지 갖춘 그의 정원은 온갖 생명이 자라고 노는 작은 숲이 됐다. 그가 말한다. 내가 가진 작은 땅으로 작은 숲을 만들면 남들도 그렇게 하지 않겠냐고. 행복한 자가 전하는 행복이 전파되듯 자연의 힘을 아는 자가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정원도 전파돼 그의 동네는 숲 동네가 됐다.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말했다. “모든 해답은 위대한 자연 속에 있다”고. 그와 그의 부인은 그 명제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었다. 싱싱한 오이를 따서 보여주며 활짝 웃는 히데코 할머니의 얼굴은 자연 그 자체였다. 그들의 집은 일터로 나가 살기 위한 거점이 아니라 온전한 삶이 가능한 하나의 세상이었다. 체리를 따고, 감자를 캐고, 죽순을 캐고, 딸기를 따고, 잼을 만들고, 케이크를 굽고, 복숭아를 졸이는 삶이 어찌 그리 살아있는지. 온전한 삶은 생명을 보살피며 사는 삶이고, 그렇게 보살핀 생명이 그들의 생명이 되고, 직관이 되고, 마음의 힘이 되는 것임을 그 부부는 증언하고 있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그들은 집에서, 도시의 숲에서 행복해 했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들이 영근다. 차근차근, 천천히.”

 

차근차근, 천천히가 왜 그렇게 여운이 길었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삶의 노래가 겨우 전전긍긍, 빨리빨리였던 시절을 흘려보내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한다. 거기 살고 있는 우리는 종종 삶을 돈으로 환산하다 병에 걸린다. 돈을 만들기 위해 한눈팔지 않고 빨리빨리, 돈을 벌지 못할까 전전긍긍! 그 빨리빨리와 전전긍긍이 성격으로 정착하면 종종 신경증이 된다. 그때는 자연이 답이다. 마지막 작품이 된 사나레 클리닉을 설계하면서 쓰바타는 ‘토지를 전부 쓰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남은 공간에는 가능한 만큼 나무를 많이 심어 사계절마다 제철 과일이 한가득’하기를 기원했다. 이제 우리도 그런 정신으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지.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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