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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연의사람In] 어떤 동병상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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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3-08 21:20:29 수정 : 2019-03-08 21: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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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대도시의 대학병원에서 몇 달간 새우잠을 자야 했던 적이 있다. 보호자 겸 간병인 역할이었다. 손위 자매가 응급실로 들어가자마자 입원 절차를 밟게 되면서 몸도 마음도 혼비백산인 상태로 시작한 병원살이였다. 사람 모인 데가 어디나 그렇듯 그 병동도 세상의 축소판이었다. 희로애락에 생사의 긴장을 더했으니 오죽하랴. 형님 아우님 하며 맞장구치다가, 웃고 울다가, 의료정보를 살뜰히 교환하다가 돌연 낯을 붉히기도 하는 그런 곳. 환자와 의료진, 간병인과 보호자 외에도 문병객과 요양병원 상담원까지 아무 때고 드나드는 엉성한 관리 탓에 오일장 서는 날 읍내 미용실 못지않은 때가 많았던 곳.

같은 병실에 든 환자 대부분이 투병 햇수가 짧지 않은 고참들이었다. 전문 간병인을 포함해 신입을 바라보는 선배 보호자의 시선도 당혹스러웠다. 첫날 신고식 삼아 주고받은 몇 마디 문답과 차차 자연스럽게 밝혀진 정황을 가지고 나와 나의 환자를 심사했다. 단순한 호기심이거나 타인의 사적 영역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한 데서 오는 결례 정도라고 가볍게 넘기려 애썼으나, 실은 그 이상이었다.

나와 나의 환자는 아주 낮은 등급을 받은 모양이었다. 평가 기준은 남편, 자식, 재력 순. 배우자 없이 굳건하게 가장의 책무를 다한 나의 환자는 병상에 누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자녀의 방문을 극구 만류했다. 자존감만큼은 천하무적인 나로서야 가가대소할 일이었으나, 안타깝게도 나의 환자는 거의 사경을 헤매는 중이었다. 시대에 역행하는 가부장적 사고와 천민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무례함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새끼손톱만큼도 없었다. “일꾼으로 소 한 마리보다 며느리 하나 들이는 게 더 낫다”는 명언(?)에 동조하는 인생들에게 무슨 강론이 먹히랴마는.

그 병동에서의 시간은 쉬 잊지 못할 듯싶다. 다행히도 나의 환자는 병은 이겨냈으나 그들의 신념만은 무너뜨리지 못했다. 그 이전에도, 또 그 이후에도 유사한 잣대로 여성을 재단하는 여성을 피하지 못했다. 배우자와 자식과 돈을 권력화한 이해당사자는 자신의 신념을 철회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지내고 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자조가 사라지고 기념일 자체가 가벼운 농담이 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정길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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