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암세포 번지 듯…느슨한 규제에 공장은 마을을 집어삼켰다 [우리의 환경은 평등합니까]

관련이슈 우리의 환경은 평등합니까?

입력 : 2019-03-07 15:34:23 수정 : 2019-03-07 15:58:3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3> '난개발 온상' 김해 퇴은마을 르포 / 대도시와 가깝고 땅값 낮아 입지 최적 / 형식적 서류 심사 통과하면 공장 ‘OK’ / 한림면에만 공장 1228개 빼곡히 조성 / 마을주민 “도저히 못살겠다” 이주 늘어 / 김포 대곶면 거물대리·초원지리도 심각 / 기준치 초과 중금속 등 ‘암마을’로 변해 / 지자체선 “법대로 운영… 특별 대책 없어”/ 현재까지 ‘피해구제법’ 적용 사례 전무 김해 진영역에서 김해대로를 1㎞만 지나면 성냥갑 같은 컨테이너형 공장이 나타난다. 드문드문 한두 개가 아니라 군집을 이룬 공장들이 ‘와락’시선을 헤집는다. 김해평야나 가야왕국을 떠올리고 김해를 찾은 이들에게는 적잖이 당황스러운 광경이다.

대로 옆 야트막한 산은 공장에 켜켜이 둘러싸여 머리만 내밀고 있다. 산이 허리에 두툼한 전대를 두른 모양새이다.
“여기가 다 논이고 밭이였거든예. 근데 공장 짓는다고 이리 다 파헤치고 깎아가지고 초토화시켰다 아입니까.”
 
동행한 한림면 인근 마을 박영자(가명·여·72) 이장이 말했다. 한쪽에서는 집 한 채만 섬처럼 남겨둔 채 포클레인이 흙을 퍼올리고 있었다.

“기가 차지예? 여기 한 군데가 아니라 한림면 전체가 다 이렇습니더. 땅만 보이면 공장을 때리넣어가지고…”

그는 지난달 15일 한림면 어귀에 보이는 이런 장면은 시작에 불과하다며 주물, 철강, 플라스틱 제조, 석유정제물 재처리 업체 등 온갖 배출시설이 즐비한 마을 안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산처럼 마을을 둘러싼 공장들

김해시 한림면 퇴래리. ‘공장매매, 공장임대, 평수 다양 - ○○부동산’

마을 표지석보다 먼저 방문객을 맞는 건 여기저기 붙은 공장분양 광고 현수막이었다. 멀리서 마을을 보니 좁은 골목길 양 옆으로 공장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표지석에 적힌‘퇴은마을’의 ‘마을’이란 단어가 생경하다. 골목을 따라 들어가니 공장 사이사이에 가정집이 한두 채씩 점처럼 박혀있다. 일부는 폐가였고, 살림집도 더러 눈에 띄었다. 창고처럼 쓰이는 곳도 보였다.

마을에서 만난 주민 김영훈(가명)씨는 유서 깊은 동네라고 했다. 조선시대 벼슬에서 물러난 관료들이 은둔생활을 한 곳이어서 ‘퇴은’(退隱)이란 지명이 붙었고, 가야시대 목책 등 유적도 많이 나오는 곳이라고 했다. 10살 때부터 이곳에서 자랐다는 그는 “내가 어렸을 때는 지금보다 주민이 서너 배는 많았다”며 “저기 저 언덕도 내가 뛰어논 뒷동산이었다”고 회상했다. 그가 가리키는 언덕엔 주물공장이 세워져 있었다.
김해 한림면 퇴은마을 입구에 지난달 15일 공장 매매·임대 현수막이 걸려있다.
“1980년대에도 공장 한두 개는 있었지예. 그러다 1990년대 말부턴가 많이 는다 싶더니 한 10년 전부터는 마, 자고 나면 생기고 생기고 해서 이리됐심더.”

온라인 공장등록 시스템 ‘팩토리온’에 등록된 퇴은마을 공장은 지난달 기준으로 105개다. 그 중 81개(77%)가 2005년 이후 등록됐다. 최근 3년 새 24개가 늘었다.

주민들은 공장이 번지는 게 “꼭 암세포 같다”고 했다.

퇴은마을에서 차로 5분 거리의 망천마을도 비슷했다. 공장은 마을 바깥부터 안쪽으로 파고들어 도넛처럼 주택가를 에워싸고 있다. 2003년만 해도 549명이었던 주민은 15년 새 196명으로 줄었다. 주민들은 원래 이곳에 샘도 있고, 봄나물이 올라오는 뒷산도 있었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지금은 198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팝나무만 주민들의 이야기를 증언하듯 버티고 있다.
 
퇴은마을과 망천마을 등이 포함된 한림면의 면적은 59.49㎢로, 서울 강서구와 양천구를 합한 정도의 크기다. 그런데 여기에 개별적으로 들어선 공장은 1228개나 된다. ‘개별적’이란 말은 산업단지나 농공단지처럼 계획적으로 조성된 게 아니라 민간 사업자가 알아서 지은 곳이란 의미다. 망천마을은 2014년 신천산업단지로 조성돼 전체 공장 수는 더 많다. 
김해시 한림면 퇴은마을의 위성사진. 가운데 주택가를 공장 수십개가 에워싸고 있다. 주택가 안에는 폐가나 창고로 변한 집도 여럿 있다.
◆초토화된 마을에 남는 건 떠나지 못한 노약자

한림면은 전형적인 난개발 사례다. 전국적으로 이런 곳은 몇 군데나 될까.

2017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이 서울과 제주를 제외한 전국 읍면동의 개별입지 공장 수, 오염부하를 토대로 6개 등급을 나눈 결과 난개발 정도가 심한 0∼2등급 지역은 17곳이었다. 김포 대곶면과 김해 한림면이 0등급으로 최악의 난개발 지역으로 분류됐다. 화성 팔탄면과 장안면, 남양읍, 포천 가산면, 김포 통진읍 등도 난개발이 우려되는 곳이다.

대체로 대도시와 가까워 교통이 편하고 물동량이 많으면서 지가는 낮다는 특징이 있다. 그렇다보니 도시의 높은 지가를 감당할 수 없는 중소형 공장들이 몰려들고, 시스템이나 인력의 한계로 어떤 오염물질이 얼만큼 배출되는지 단속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공장이 하나 둘 늘어 생활환경이 나빠지면, 주민 가운데 보유한 토지 면적이 넓거나 정보에 밝은 젊은 세대는 보상금을 받고 일찌감치 마을을 뜬다. 가진 땅이 얼마 없거나 마을에 애착이 있어서, 혹은 늦은 나이에 타지 적응이 겁나는 노인들만 남게 되는데 공장이 마을을 완전히 잠식하게 되면 이제는 떠나려야 떠날 수 없게 돼버린다. 더는 들어와 살겠다는 사람이 없어서다. 시골 마을에서도 가장 약자에 속하는 이들이 남는 셈이다. 박 이장은 “뒤늦게 도저히 못살겠다는 이들은 공장에 헐값으로 집을 넘기고 떠난다”며 “그러면 창고나 외국인 노동자 숙소로 쓰인다”고 말했다.

김홍철 환경정의 사무처장은 “조건이 까다로운 산업단지나 지가가 높은 도시를 피해 농촌이나 산지로 파고드는 이런 개별입지 공장 문제는 대표적인 환경 부정의 사례”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난개발은 개발시대가 낳은 해묵은 고질병이다. 정부는 2003년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국토계획법)을 제정해 난개발의 온상이었던 준도시·준농림 지역을 ‘관리지역’으로 통합했다. 성격이 분명한 도시·농림·자연환경보전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를 관리지역으로 묶어 소규모 난개발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실제 집행은 반대로 갔다. 관리지역(계획·생산·보전관리지역 3종류가 있음) 중에서도 계획관리지역이 문제가 됐다.

원래 계획관리지역은 향후 도시 편입을 염두에 두고 제한적으로 개발행위를 허용하기 위한 곳이었다. 소규모 난개발이 이뤄지지 않도록 1만㎡ 미만의 공장은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러나 2005년 ‘사전환경성검토’를 거친다는 조건을 달고 1만㎡ 미만의 소규모 공장에 문을 열어줬다. 다만, 오염도가 높은 주물주조업 등 79개 업종은 여전히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런데 2008년 79개 업종 중 23개 업종이 입지제한 대상에서 제외되고, 5000㎡ 미만 사업장은 사전환경성 검토도 받지 않도록 규제가 느슨해졌다. 이듬해에는 입지제한 56개 업종 중 55개 업종이 빠졌다.

지금은 ‘특정대기·수질배출 사업장’만 아니면 1만㎡ 미만 공장은 지자체 인허가만 받으면 들어올 수 있다. 500㎡ 미만은 지자체 승인·허가를 받을 필요조차 없다.

팩토리온에 등록된 김해시 전체 공장은 5808개인데 그중 2020개(35%)가 500㎡ 미만이다. 이마저도 ‘최소한’의 통계다. 팩토리온 등록도 의무 사항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해시 관계자는 “(이런 이유로) 현재 김해에는 5000여개 공장이 있다고 나오지만 실제 현장 조사를 해보면 7500∼8000개 정도 있다”고 했다.

김 사무처장은 “지자체 공무원이 서류만 보고 공정 과정에서 특정대기·수질 오염물질이 배출되는지 알 수 없다”며 “사실상 거의 모든 빗장이 풀렸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요원한 배상·피해구제

김포 대곶면 거물대리와 초원지리는 2012년 ‘암마을’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곶면에는 그 뒤로도 최근까지 844개 공장이 새로 생겨났다. 1년에 120개, 한 달에 10개꼴이다. 지난달 20일 찾은 초원지리는 주물 공장에서 나는 쇳물 냄새와 음식물쓰레기 재활용 공장에서 나는 썩는 냄새로 코를 막지 않고는 서있기 힘들었다.

2016년 김포시 조사에서 거물대리와 초원지리 토양 15곳 중 8곳에서 니켈·불소·구리 등 기준치 이상의 중금속이 검출됐다. 특히 구리와 비소는 기준치보다 2∼3배 많은 양이 나왔다. 환경역학조사에서도 폐암과 협심증, 심근경색, 골다공증 유병률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럼에도 주민을 위한 구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업무를 담당하는 환경산업기술원이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어렵다며 주민 신청을 기각했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역학관계를 명백히 밝히기 어려운 환경피해의 특성을 감안해 환경오염 사고 발생시 ‘상당한 개연성’만 있으면 구제받을 수 있도록 ‘환경오염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환경오염피해구제법)을 2016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피해구제법으로 구제급여를 받은 사례는 한 건도 없다.

지난해 실시된 구제급여 선지급 시범사업에서도 옛 장항제련소나 대구 안심연료단지처럼 원인자가 명확한 경우에 한해 81명이 구제급여 대상자로 결정됐다. 첫 구제급여 지급 사례였는데, 이들에게 돌아간 지원금은 총 1700여 만원, 고작 1인당 21만원이었다.
김포 대곶면에 있는 한 재활용 공장 바깥에 폐기물이 여기저기 쌓여있다.
김의균 김포환경피해공동대책위원장은 “여기 수백개 되는 공장 중에 어떤 공장이 어떤 물질을 내보내는지 어떻게 아느냐”며 “이도 저도 안 되면 이주대책이라도 세워 달라”고 요구했다.

한림면 박 이장은 “우리 마을에서도 2015년 이후 건강하던 주민 11명이 갑자기 폐암, 뇌경색으로 죽었지만 우리가 무슨 수로 공장이 원인이라는 걸 증명하겠느냐”며 “대단한 피해보상이나 이주대책은 바라지도 않는다. 추가적인 공장 설립이라도 막아 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대한 김해시의 답변은 분명했다. “법에 나온 허용 기준대로 운영할 뿐이다. 특별한 대책은 없다”는 것이다. 김해시 홈페이지 시장 공약집에도 공장 과밀화 대책은 없었다. 대신 이렇게 적혀있었다.

‘좋은 일자리 10만 개를 만들겠습니다.’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김해·김포=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트리플에스 지우 '매력적인 눈빛'
  • 트리플에스 지우 '매력적인 눈빛'
  • (여자)이이들 미연 '순백의 여신'
  • 전소니 '따뜻한 미소'
  • 천우희 '매력적인 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