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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유튜브를 꼭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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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3-01 23:17:26 수정 : 2019-03-01 23: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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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부터 90대 노인까지 ‘열풍’ / 전 국민 연예인 만드는 유튜브 / 이 또한 한철 유행이길 바라며 / 나 역시 올릴 영상을 준비한다 나는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 내가 운영(?)하고 있는 소셜 미디어는 다음과 같다. 네이버 카페 두 개, 온라인서점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페북 페이지 두 개, 다음 카페, 다음 브런치,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팟캐스트 두 개, 홈페이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게 없고 고만고만하다. 대학 동창들은 밴드에 들어오라고 난리고, 모 작가는 “아직도 트위터를 안 하느냐”고 핀잔이다. 몇 달 전에는 유튜브로 연봉 10억원을 번다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매일 밤 영상을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은 없구나. 그냥 1주일에 1번 올리고 1억원을 버는 방법은 없을까. 남들은 비트코인으로 다들 몇억원씩 차익을 남겼다는데, 아파트 한 채 잘 사서 몇 배를 튀겼다는데, 스톡옵션으로 떼돈이 굴러들어왔다는데. 다 잘사는데 왜 나만 이 모양인가. 유튜브를 보면 그 소외는 더 심해진다. 다들 크로아티아에서 관광하거나 몰디브에서 선탠하고 있다. 동남아 여행은 발에 차인다. “놀면서 영상 올리면 돈도 들어와요.” 이러니 하지 않을 수가 있나.
명로진 배우 겸 작가

주변 지인 중 절반 이상은 유튜브를 하고 있거나, 준비 중이다. 이달 초에 나는 ‘우아한 연예인이 되는 법’이라는 출간 기획서를 써서 보냈다. 편집자가 전화를 했다. “요즘 누가 이런 책을 봅니까. 유튜브에 올리면 누구나 연예인이 되는 세상인데.” 그렇다. 유튜브라는 영상 매개체는 가무를 즐기는 민족을 만나 전 국민을 연예인으로 만들고 있다. 유튜브는 주파수의 민주주의 시대를 열었다. 연예인이 되려는 사람은 PD나 작가에게 더 이상 잘 보일 필요가 없다.

내 선배 K는 PD와 작가의 이삿짐 담당 배우였는데, 10여년 전 갑질 파워를 가진 자들이 포장이사를 이용하면서 더 이상 캐스팅되지 않았다. 두어 해 전만 해도 중견 개그맨이 “프로그램을 없애지 마라”며 모 지상파 방송사 앞에서 1인 데모를 했다. 이제는 그런 행위가 쓸데없다. 개그 영상을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면 그만이다. TV는 이미 유튜브에 패했다. MBC나 SBS가 출연금지한다 해도 방탄소년단(BTS)은 눈 하나 깜짝 안 할 거다. 지상파에서 스타가 된 뒤 SNS에 진출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유튜브에서 먼저 스타가 된 뒤에 지상파가 모셔간다.

오늘 만난 출판 관계자는 내게 “책을 쓰기보다는 책으로 쓸 뭔가를 동영상을 찍어 올리라”고 충고했다. 70대 은퇴자 A 선생도 유튜브 제작 수업을 듣는다 하고, 30대 약사인 B는 막 첫 영상을 올렸다며 어떤지 알려달란다. 40대 재테크 전문가 C는 “관심 매물 보러 오라”며 유튜브 링크를 첨부했다. “좋아요와 구독은 꼭 눌러 주세요”라며.

며칠 전, 만 91세의 김동길 박사마저 유튜브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김 박사께서는 “내가 이 나이에 유튜브를 시작하는 이유는…”이라고 운을 뗐다. ‘김동길 TV’는 1주일도 안 돼 수십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무명 성우 한 사람은 재미로 드라마 ‘SKY캐슬’에 나오는 김서형을 성대묘사해서 유튜브에 올렸는데 순식간에 200만명이 봤다. 이후 그를 찾는 섭외전화가 쇄도했다.

초등학생부터 90대까지 유튜브 광풍이다. 나는 애써 외면해 왔다. 밀물처럼 왔다 썰물처럼 가리라. 냄비 근성이리라. 우직하게 내 갈 길을 가리라. 그러면서 떠올렸다. 천리안, 링크나우, 아이러브스쿨, 싸이월드, 파란닷컴…. 한때 안 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인간’ 소리를 들었던 온갖 온라인 연결 사이트를. 그들은 망했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기 때문이다. 제발, 유튜브도 그렇게 망했으면 좋겠다. 인공지능(AI)의 발전과 4차 산업혁명에 기대를 걸고 있다. 유튜브가 아니어도 이심전심으로 서로의 마음, 아니 서로가 찍은 영상을 알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나는 이런 생각을 정리해서 곧 유튜브에 올릴 생각이다.

명로진 배우 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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