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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21년, 1797년 여름. 정조는 노론 벽파의 우두머리 심환지에게 어찰을 보냈다. “작은 고을에도 숨은 인재가 어찌 없겠는가. 문벌의 높낮음과 색목의 동서를 따지지 말고 인망으로 인재를 찾으라.” 낮밤으로 인재를 찾은 정조. 조선의 중흥기를 연다. 실학이 번성한 것은 그즈음이다.

인재 발굴. 그것은 역사를 관통하는 화두다. 지금은 더하다. 기술 하나에 흥하고, 망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정글 싸움’이 시작됐으니 그렇다. “천재 한 명은 10만명을 먹여 살린다.” 이건희 회장의 그 말조차 오히려 낡은 경전 속의 문구처럼 변했다.

미국조차 두렵게 하는 중국의 기술 추격.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20여년 전만 해도 진창이었던 상하이의 푸둥 거리. 지금은 세계적인 기업이 모여드는 금융·기술 중심지로 변했다. 어찌 가능했을까. 역시 인재를 모았기 때문이다. ‘만인(萬人) 계획’. 2022년까지 과학·기술·사회과학·교육 분야에서 중국 경제를 일으켜 세울 1만명의 인재를 기르는 국가적인 프로젝트다. 중국은 세계 각지에 흩어진 인재를 끌어모았다. 돈을 따지지 않는다. 실리콘밸리의 중국인 기술자라면 열에 아홉 “더 많은 연봉을 보장할 테니 중국에 오라”는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미국이 전방위 공격에 나선 중국의 화웨이. 화웨이의 통신장비 경쟁력은 따지고 보면 만인 계획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인재가 중요하다는 것은 책 몇 권만 읽어도 누구나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성패를 가르는 것은 말이 아니다.

탈원전 정책을 전면화한 후 원자력 인재가 대거 빠져나가고 있다. 3대 원전 공기업인 한국전력기술·한국수력원자력·한전KPS에서는 2017년 이후 2년 동안 264명이 떠났다. 두산중공업에서도 80여명이 이직을 했다고 한다. 대부분 핵심 기술자들이다. 상당수는 외국기업에 스카우트된 모양이다.

기술은 진화한다. 원자력 기술도 하나 다르지 않다.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정보기술(IT)·생명공학(BT)만 그 미래를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두뇌가 사라진 원자력 산업. 진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이제 무엇에 의지해 자원빈국의 설움을 이겨내려는 것일까.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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