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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식 ‘백악춘효’

심전 안중식은 조선시대 마지막 시기를 대표하는 화가이며 1910년대 우리 전통화단의 근대화를 이끈 인물이다. ‘백악춘효’는 그가 일제에 의해 강제 병합된 지 5년 후인 1915년에 그린 그림이다.

 

멀리 북한산이 보이고, 경복궁을 둘러싸고 있는 백악산(지금의 북악산)이 우뚝 솟아 있다. 그 아래로 이른 아침의 안개가 경복궁 위를 덮고 있고, 궁궐이 숲 속에 파묻힌 모습이다.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이 굳게 닫혀 있으며, 지금 서울의 중심부 역할을 하는 활기찬 광장은 텅 빈 채로 적막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힘을 잃은 해태 상만이 그 광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안중식이 나라 잃은 슬픔을 비감에 찬 구도와 섬세한 필치로 풀어 놓아 그림 안의 모든 것이 망국의 한을 은유적으로 암시한다.

 

그림의 다른 측면도 담았는데, 미점준이라는 전통적 방식으로 북악산의 명암과 입체감을 묘사했다. 멀리 보이는 북한산, 북악산, 경복궁과 숲, 광화문에서 광장으로 이어지는 원근관계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이 그림은 관념적 형식 위주의 전통 산수화와 달리 전통적 방식과 실경의 조화를 시도한 근대적 경향의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안중식은 현실에 대한 시대의식이 반영된 우리 미술의 변화를 이끌기도 했다. 그림과 후학 양성으로 망국의 한을 달랬던 그가 죽은 후 그의 제자들이 1920년대 이후 우리 미술계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데 중심 역할을 해왔다.

 

곧 3·1절이다. 나라를 빼앗긴 울분과 독립을 향한 열망으로 우리 조상들이 만세를 외쳤던 그날이 올해로 100주년이 된다. 지금 우리에게 일본은 대중문화와 경제적인 면에서 가까운 이웃이지만, 정서적으로는 풀리지 않는 마음의 앙금이 있는 나라이다. 최근 몇몇 사건이 우리를 더욱 그렇게 만들고 있다.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대처해야겠지만 3월 한 달만큼 우리 조상의 아팠던 마음도 되새겨 보아야겠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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