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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뜸했던 눈이 흩날린다. 입춘 지난 지가 언젠데. 쌀알처럼, 이팝나무 홑꽃처럼 흩어져 쌓이는 눈송이를 바라보고 있자니 하얀 밥사발이 생각난다. 고슬고슬 지어 소복하게 담아 올린 고봉밥. 빙 둘러앉은 둥근 밥상 아래에서 툭탁툭탁 오가던 동기간의 발길질도 생각난다. 이제는 전생의 일처럼 아슴푸레해진 유년의 식탁이라니.

1인 가구주에 재택 근로자요 방안퉁수인지라 누군가와 마주 앉아 밥을 먹을 일이 도통 없다. 명절이나 절기에 맞춰 상을 차릴 일은 더더욱 없다. 추석 송편 빚기는 아이 키우던 시절 체험학습용으로 두어 번 판 벌여본 것이 마지막이고, 동짓날 새알심 빚어 팥죽 끓이는 수고를 내려놓은 지는 더 한참 전 옛날이다. 떡국이며 만둣국이야 사철 아무 때나 끓여 먹으니 설음식 같지가 않다. 이번 정월대보름날도 오곡 찰밥에 아홉 가지 나물은 추억일 뿐, 쥐불놀이 깡통 돌리던 어릴 적 유희를 되짚어본 것으로 갈음했다.

계절 음식을 곱씹다보니 시간을 훌쩍 건너뛰어 누더기 차림으로 우리 집 대문간을 쑥 들어서던 ‘밥손님’이 생각난다. 명절이나 절기는 그렇다 치고 남의 집 제삿날은 어찌 그리도 잘 꿰고 있던지. 나의 어머니는 밥을 빌러 오는 동냥아치를 ‘거지’라고 함부로 부르지 않았다. 식은밥일지언정 따끈한 국과 찬을 따로따로 그릇에 담고 독상을 차려 내놓았다. 밥손님이 마루턱에 걸터앉아 그릇을 싹싹 비우는 동안 어머니는 돌아갈 때 손에 들려줄 밥과 찬을 별도로 준비해두었다. 한 번 왔다간 밥손님은 나날이 때때마다 찾아오지는 않았다.

전혀 다른 경우이긴 하지만 나도 남의 집 밥손님 짓을 꽤 여러 차례 했다. 어느 날 우연히 친구네서 놀다가 그 집 밥상에 끼어 맛보게 된 보리밥 때문이었다. 절구에 겉보리를 찧는 과정부터 내겐 진기한 구경거리였다. 아마 흰 쌀 한 줌 섞지 못한 꽁보리밥과 소금 찬을 별식쯤으로 여겼던가 보다. 친구네의 가난도, 그 밥 한 그릇의 눈물겨움도 그땐 몰랐다.

어리석어 악의 없이도 누군가의 귀중한 것을 축내곤 한다. 미움 없이도 누군가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안겼던 것처럼. 작정하고 그 밥상에 끼던 날이 떠오르면 낯이 뜨겁다. 이제는 진짜 별식이 된 보리밥을 먹을 때마다 그 친구 생각이 난다. 보고 싶다, 친구야.

정길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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