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주에 재택 근로자요 방안퉁수인지라 누군가와 마주 앉아 밥을 먹을 일이 도통 없다. 명절이나 절기에 맞춰 상을 차릴 일은 더더욱 없다. 추석 송편 빚기는 아이 키우던 시절 체험학습용으로 두어 번 판 벌여본 것이 마지막이고, 동짓날 새알심 빚어 팥죽 끓이는 수고를 내려놓은 지는 더 한참 전 옛날이다. 떡국이며 만둣국이야 사철 아무 때나 끓여 먹으니 설음식 같지가 않다. 이번 정월대보름날도 오곡 찰밥에 아홉 가지 나물은 추억일 뿐, 쥐불놀이 깡통 돌리던 어릴 적 유희를 되짚어본 것으로 갈음했다.
계절 음식을 곱씹다보니 시간을 훌쩍 건너뛰어 누더기 차림으로 우리 집 대문간을 쑥 들어서던 ‘밥손님’이 생각난다. 명절이나 절기는 그렇다 치고 남의 집 제삿날은 어찌 그리도 잘 꿰고 있던지. 나의 어머니는 밥을 빌러 오는 동냥아치를 ‘거지’라고 함부로 부르지 않았다. 식은밥일지언정 따끈한 국과 찬을 따로따로 그릇에 담고 독상을 차려 내놓았다. 밥손님이 마루턱에 걸터앉아 그릇을 싹싹 비우는 동안 어머니는 돌아갈 때 손에 들려줄 밥과 찬을 별도로 준비해두었다. 한 번 왔다간 밥손님은 나날이 때때마다 찾아오지는 않았다.
전혀 다른 경우이긴 하지만 나도 남의 집 밥손님 짓을 꽤 여러 차례 했다. 어느 날 우연히 친구네서 놀다가 그 집 밥상에 끼어 맛보게 된 보리밥 때문이었다. 절구에 겉보리를 찧는 과정부터 내겐 진기한 구경거리였다. 아마 흰 쌀 한 줌 섞지 못한 꽁보리밥과 소금 찬을 별식쯤으로 여겼던가 보다. 친구네의 가난도, 그 밥 한 그릇의 눈물겨움도 그땐 몰랐다.
어리석어 악의 없이도 누군가의 귀중한 것을 축내곤 한다. 미움 없이도 누군가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안겼던 것처럼. 작정하고 그 밥상에 끼던 날이 떠오르면 낯이 뜨겁다. 이제는 진짜 별식이 된 보리밥을 먹을 때마다 그 친구 생각이 난다. 보고 싶다, 친구야.
정길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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