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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역사 - 2월18∼24일] ‘나를 위해 울지 마, 아르헨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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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2-17 23:07:44 수정 : 2019-02-17 17: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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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2월24일 아르헨티나 대통령에 당선된 후안 페론은 의외로 21세기의 한국에 친근할 수 있는 인물이다. 최근 한국 정치권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포퓰리즘’의 원조 격으로 알려져 있어서다.

포퓰리즘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BC 2세기 로마에서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와 가이우스 그라쿠스 형제가 벌였던 개혁운동에까지 이른다. 그들은 토지개혁 등 빈민을 위해 개혁을 하다 원로원의 기득권 세력에게 참담히 희생되고 말았다.

그러나 로마 이후 잠잠하던 이 용어가 다시 나오게 된 것은 페론이 집권하던 시기 아르헨티나의 극적인 상황과 그 속에서 페론이 헤쳐 간 현란한 발자취 때문이리라. 그 발자취란 페론이 그의 부인 에바 페론과 추었던 듀엣의 뒷자리다. 그러나 막상 포퓰리즘이란 말은 너무 종잡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포퓰리즘’이라면 곧잘 그 앞에 ‘좌파’라는 말이 붙지만 실은 우파 포퓰리즘도 있다.

페론 자신의 생애도 그렇다. 그는 군인 신분으로 이탈리아 주재 대사관 무관으로 근무하면서 당시 승승장구하던 무솔리니의 파시즘에 경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의 밑바닥 삶을 살던 에바를 만나 결혼하고 대통령에 오른 뒤에는 빈민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줘 그는 좌파로 분류된 셈이다.

그러다 1955년 쿠데타로 실권하자 그는 파나마나 과테말라 또는 스페인 등 극우파 정부가 지배하던 나라에서 망명생활을 한다. 당시의 스페인이라면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의 나라가 아닌가. 그럼에도 아직도 아르헨티나에서 ‘페로니즘’이나 ‘반페로니즘’이라는 말이 성행하는 데는 페론을 백안시했던 정치인들의 실적이 한심해서일 것이다.

그래서 브로드웨이의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1978년 에바를 주인공으로 작곡한 뮤지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 나는 아르헨티나를 떠나지 않아요’는 아직도 울림을 갖고 있다. 페론 부부는 아르헨티나인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양평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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