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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사회

죽어야 영웅 되는 슬픈 현실/윤한덕 센터장에게 큰 빚 져/열악하고 갈 길 먼 응급의료/선진국형 응급체계 완성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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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2-11 20:58:09      수정 : 2019-02-11 20:58:09
죽어야 영웅이 되고, 죽어야 응답하는 ‘미숙한’ 사회를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설날 연휴에 순직한 사건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그는 음지에서 우리 사회를 떠받쳐 온 소금 같은 존재였다. 응급 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선진국형 체계를 만드는 게 꿈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척박했다.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이 기고에서 “지금 앞다투어 발표하는 그 결연한 계획들의 10%라도 몇 달 전에 집행해줬으면 그가 살아 있을 것”이라고 쓴 대목은 가슴을 저미게 한다.

“그가 응급의료 일을 전담할 당시만 해도 정부에서 도움의 손길이 없었다. 그럼에도 중앙응급의료센터를 묵묵히 이끌어 왔다. 수많은 장애 요소에도 평정심을 잘 유지했고 출세에는 무관심한 채 업무만을 보고 걸어왔다.”(이국종의 저서 ‘골든아워’ 중) “응급의료, 외상센터 관련된 문제점이 제기되면 국회든 언론이든 상황 파악과 대책 마련은 다 그가 한다. 10년 넘게 그렇게 해왔다. 일생에 칭찬은 별로 받아본 적이 없다. 맨날 그렇게 두드려 맞고 깨지고….”(허탁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짐이 무거웠지만 17년 이상 헌신했다. 우리는 그에게 큰 빚을 졌다.

채희창 논설위원
그의 죽음은 여전히 후진적인 응급의료 시스템과 척박한 의료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지금도 응급실은 밀려드는 환자로 북새통을 이룬다. 중환자가 길거리를 전전한다. 응급의료계는 심장이 멈추고 4분, 호흡이 멈추고 5~10분, 출혈이 시작되고 1시간 이내를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중증 응급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하는 데 평균 5시간이 걸린다. 중증 응급 환자 가운데 47%만 구급차로 이송된다. 그는 응급 이송 수단이 부족해 초기 대응이 늦어지는 현실을 못 견뎌 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병원을 옮겨 진료받은 응급환자는 3만3000여명. 병원을 옮긴 중증 응급환자는 이동하지 않은 환자보다 사망률이 4배 더 높다. 지난해 외상 사망자 중 골든타임 안에 이송돼 적절한 치료를 받았으면 살릴 수 있었던 환자 비율이 30.5%다. 그가 지역 내 응급 환자를 지역 내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외친 이유다. 의료기관 중심이 아니라 환자 중심으로 진료시스템을 개선하자는 취지였다. 이를 위해 그는 지난해 4월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권역 중심 응급의료서비스 구축’ 심포지엄도 개최했다.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의 심전도 전극도 응급구조사가 붙이지만, 실행버튼은 의사가 와서 누르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진다.” 그가 지난해 11월 페이스북에 쓴 의료현장의 모순이다. 막 아기가 나오려는 긴박한 상황이라도 응급구조사는 분만을 돕지 못한다.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는 인공호흡, 응급처치 및 지혈 등 14가지. 이 범위를 벗어나면 불법의료 행위로 처벌된다. 그는 응급구조사가 할 수 있는 일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의료계 내부 반발과 각종 규제 탓에 번번이 좌절됐다.

응급실은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인력 및 시설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 밤샘 당직 같은 고된 업무의 연속이라 의료 인력들도 지원하기를 기피한다. “오늘은 몸이 3개, 머리가 2개였어야 했다.”(윤한덕) 언제까지 몇몇 영웅들의 사명감에 기댈 것인가.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한다. “윤한덕이 떠나간 사실도 며칠 뒤면 언론에서 사라질 것이고 쏟아져 나왔던 각종 대책 및 결연한 ‘결심’들도 곧 날아갈 것이다. 그건 이제는 하늘에 있는 윤한덕이 더 잘 알고 있다.” 이국종 교수의 힐난이 뼈아프다.

윤 센터장의 죽음은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에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자신보다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중시했던 그의 헌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가유공자로 지정해 남은 가족들을 돌봐야 하는 건 국가의 의무다. 응급의료 체계를 완성해 촌각을 다투는 환자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는 것이 그의 유지를 받드는 일이다. 정부는 현실에 맞지 않는 의료 규제를 풀고 인력 양성에 힘을 쏟아야 한다. 그게 윤 센터장에게 진 빚을 갚는 길이다.

채희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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