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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발적 충돌이 부른 1차 세계대전의 비극

입력 : 2019-01-26 03:00:00 수정 : 2019-01-25 16:2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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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트먼 유엔 사무차장 방북 당시 / 평양서 리용호에게 건네 유명세 / 1차 대전 적극 계획한 국가 없어 / 서로 의도 모른채 적대감만 키워 / 거친 말싸움 오가다 ‘최악의 참사’ / 의도치 않은 분쟁 위험성 일깨워
크리스토퍼 클라크 지음/이재만 옮김/책과함께/4만8000원
몽유병자들-1914년 유럽은 어떻게 전쟁에 이르게 되었는가/크리스토퍼 클라크 지음/이재만 옮김/책과함께/4만8000원


2017년 12월 평양에서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이 북한 외무상 리용호를 만나 건넨 책이다. 펠트먼은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한 3대 요구사항을 제시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다. 2009년 중단된 군 연락채널을 복원해 우발적 충돌 위험을 줄일 것, 미국과 대화할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를 보낼 것, 유엔 안보리의 비핵화 결의를 이행할 것 등이었다. 그러면서 펠트먼은 이례적으로 이 책을 건네 화제가 되었다.

유럽현대사 전문가인 케임브리지대 역사학 교수 크리스토퍼 클라크(Christopher Clark)가 쓴 책이다. 원제목은 ‘The Sleepwalkers: How Europe Went to War in 1914’. 100여년 전에 유럽에서 일어난 전쟁의 원인을 다룬, 한국어도 아닌 영어로 쓰인 1000여쪽의 두툼한 역사책이다. 펠트먼은 분명 무언가 메시지를 주기 위해 리용호에게 책을 건넸을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 평창올림픽에 이어 북미대화가 시작되었다. 그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1차 세계대전 발발 원인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 증거들을 제시한다. 지금까지는 주로 전쟁이 ‘왜 발발했는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2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참사가 누구 때문이었느냐’는 책임론이 그것이다. 독일과 그 동맹국 책임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제1차 세계대전의 책임이 독일에 있다는 종전 학설을 뒤집는 증거를 제시했다. 사진은 유럽에 처음 출전하는 미군의 모습.

독일은 1919년 베르사유조약에 따라 엄청난 배상금을 물었다. 독일에 지워진 가혹한 처사는 히틀러가 득세하는 단초로 이어진다. 독일 책임 지우기는 ‘피셔테제’에 이어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피셔테제란 독일 카이저 빌헬름 2세가 세계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사전에 전쟁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다는 관점이다. 독일 역사학자 프리츠 피셔의 견해다.

이에 반해 이 책 저자는 유럽 국가들의 공동책임을 강조한다. 다자간 상호작용을 도외시한 채 단 한 국가에 전쟁 책임을 지우거나 ‘교전국 책임 순위 매기기’는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세밀히 서술한다. 전쟁 책임 측면에서는 프랑스와 러시아의 책임도 독일과 오스트리아, 헝가리의 그것 못지않다는 것이다.

저자는 1914년 전쟁(1차대전)을 특정 국가의 범죄가 아닌 공동의 비극으로 풀이한다. 핵심 의사결정자들이 걸어간 길들을 밝혀야만 1914년 7월의 사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앞서 펠트먼의 리용호 책 선물에 대해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이그나티우스는 “펠트먼은 의도하지 않은 분쟁 발생 위험성에 대한 메시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책을 건넸다”고 풀이했다. ‘의도하지 않은 분쟁’의 위험성을 일깨운 것이다.

실상도 그랬다. 1차 세계대전 이전 당시 유럽에서 전쟁을 적극적으로 계획한 국가는 없었다. 그러나 국가 상호간 믿음과 신뢰의 수준은 낮은 반면 적대감은 높아갔다. 서로의 의도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속사포처럼 말싸움하다 결국 사상 최악의 대참사가 일어났다는 것.

저자의 결론이다. “당시 정치인들은 이해관계에 매몰된 나머지 그들의 행동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결코 전망하지 못했다. 1914년의 유럽 정치인들은 몽유병자들이었다. 눈을 부릅뜨고도 보지 못하고 꿈에 사로잡힌 채 자신들이 초래할 공포의 실체를 깨닫지 못했다.”

이렇게 볼 때 1차 세계대전은 범죄가 아닌 비극이다. 이런 비극은 2차 대전으로 이어졌다는 게 저자의 논리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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