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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칼럼] 참을 수 없는 말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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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1-24 22:02:19 수정 : 2019-01-24 21: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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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혐오 발언 난무하는 세상/정치인 막말은 심각한 수준 /감동 주는 발언 찾기 어려워/정치인 말 바로 서야 나라 바로 서 요즘 시중에 나도는 말이 지나치게 가볍다. 아무 생각 없이 툭 내뱉는 말로 마음에 상처를 준다. 딱히 그럴 까닭이 없는데도 얼굴을 붉히면서 막말을 주고받는다. 귀를 닫고 자기 주장만 목청껏 외치다가 악을 쓰기도 한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말다운 말이 사라지고 구호만 난무한다. 온라인에선 혐오 발언이 위험 수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소통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말이 의미를 잃고 부유하는 세상이다.

고래로 말을 올바로 쓰라는 경구가 있다. ‘논어’ 이인편에서 공자는 “옛 사람들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는데, 이는 행동이 따르지 못할 것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로편에서는 “명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사리에 맞지 않고, 말이 사리에 맞지 않으면 일이 이뤄지지 않는다”면서 “군자는 명분을 세우면 반드시 그에 대해 말할 수 있고, 말을 하면 반드시 실천할 수 있다”고 했다.

박완규 논설실장
‘순자’ 비십이자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말을 많이 하면서도 모든 표현이 바르다면 성인(聖人)이다. 말을 적게 하면서도 법도에 맞는다면 군자다. 말이 많든 적든 법도가 없고 종잡을 수가 없다면, 비록 말을 잘한다 하더라도 소인이다.” 나아가 “말과 이론과 비유가 번드르르하고 막힘이 없더라도 예의를 따르지 못한다면, 그것을 간악한 말이라 한다”고 했다.

말은 정치의 핵심 수단이다. 정치인은 국민 목소리를 대변하고 이견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말의 힘으로 이뤄지는 일이다. ‘시경’ 대아편에 실린 시 ‘멀리하니(板)’에는 “말이 화합하면 백성들이 모이겠고 말이 즐거우면 백성들이 안정되리”라는 구절이 있다. 말이 백성의 안정을 이끌어내려면 품격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말이 즐거울 리 없다.

일부 정치인들의 말이 문제다. 전남 목포 문화재거리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손혜원 의원은 “억울하다” “목숨을 걸겠다”고 해 파문을 키운 데 이어 그제 기자간담회에선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너무 무식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를 겨냥해서는 “나쁜 머리 쓰며 의인인 척 위장하고 청산유수로 떠드는 솜씨가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고 했다. ‘손혜원 어록’을 만들 만하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당 전국장애인위원회 발대식에서 “정치권에서는 말하는 것을 보면 ‘저게 정상인가’ 싶을 정도로 정신장애인들이 많이 있다”는 말로 장애인 비하 논란을 불러일으켜 거듭 사과해야 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도 유튜브 채널 ‘TV홍카콜라’에서 “경남지사로 근무하다 다시 여의도로 와보니 각 당에는 사이코패스도 있고 소시오패스도 있었다”고 했다.

정치인이 해서는 안 될 말로 선거 판도를 바꾸기도 한다. 지난해 6·13 지방선거 직전 한나라당 정태옥 의원의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 살고, 망하면 인천 산다)’ 발언이 그 예다. 전직 대통령 부인까지 한몫 거든다. 이순자씨는 “민주주의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남편 전두환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가 이런 말을 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과연 말이 혼탁한 세상임을 알겠다.

이러니 정치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다. 오죽하면 문희상 국회의장이 “정치권의 막말과 자극적인 말들이 쏟아지면서 정치 혐오를 키우고 있다”고 했겠는가. 정치인들이 반성해야 한다. 정치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잘 정리된 메시지여야 한다. 의도가 드러나는 즉흥적인 말은 피해야 한다. 자칫 국민에게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근자에 들어 연설 등 정치인 발언 중 어느 것도 감동을 주지 않는 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민에게 다가서려는 진정성은 느껴지지 않고 당리당략만 담겨 있는 탓일 게다.

이제 정치가 달라져야 한다. 정치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면 굳이 정치인의 말을 문제 삼지 않았을 것이다. ‘논어’ 자로편에서 제자인 자공이 “요즘 정치하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아, 그릇이 작은 사람들이야, 따져 볼 가치가 있겠느냐?” 2500여년 전의 말을 지금 되풀이해야 하는가. 정치인의 말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

박완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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