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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산하는 체육계 미투…"내재화된 시스템도 바꿔야"

입력 : 2019-01-15 17:03:00 수정 : 2019-01-15 16:2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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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계에 부는 ‘미투’(#Me Too) 바람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 미투 정국에서도 비교적 잠잠했던 체육계가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의 폭로 이후 흔들리고 있다. 그동안 수면 아래 있던 체육계의 병폐가 선수들의 용기 있는 고백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체육계 미투의 이면에는 성적 지상주의에 사로잡혀 병폐를 바로잡지 못한 ‘엘리트 체육’ 시스템이 있다. 체육계 미투가 선수나 지도자 개인의 문제보다 체육계 구조적 문제라는 점에서 한국 체육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체육계 수직적 문화가 근본 원인

15일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연이은 미투 폭로로 드러난 체육계의 가혹 행위와 (성)폭력 근절을 위한 실행 대책을 발표했다. 이 회장은 그간 내부 관계자들이 폭력·성폭행 사안의 징계에 관여해온 관행과 병폐에 체육회가 자정 기능을 다 하지 못한 점을 인정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이 15일 오전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이사회에 참석해 체육계 폭력·성폭력 사태에 대한 쇄신안을 발표하며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이제원 기자

그동안 한국 체육계는 소수의 엘리트를 집중 육성하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대다수 선수가 어린 나이에 운동을 시작하면서 학교나 지방자치단체, 국가에서 요구하는 성적을 위해 운동에만 매진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의 인권은 뒷전으로 밀렸고, 선수와 지도자의 관계는 주종 관계로 굳어졌다. 대부분 선수가 성인이 된 뒤에도 선뜻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이유다.

임수원 경북대 교수(체육학)는 2015년 한국체육학회지에 게재한 논문 ‘엘리트 스포츠 내 성폭력 발생 기저와 경험체계 탐색’에서 엘리트 체육이 성폭력을 야기한 요인들을 짚었다. 임 교수는 △절대적 권력관계의 공고화 △잦은 신체 접촉과 성적 수치심의 수용 △성폭력 행위에 대한 지도자의 인식 부족 △합숙 훈련의 훈련체계를 들었다.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환경에서 선수들은 지도자가 가하는 폭력에 저항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성적 지상주의로 점철된 ‘엘리트 체육’

체육계는 성적 지상주의에 빠지면서 내부 병폐를 목도하고도 못 본 채 넘어가는 게 관행처럼 됐다. 실제로 가해자에 대한 징계나 피해자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심석희 선수를 폭행한 조재범 전 코치에 대한 징계를 1년이 지난 뒤에야 확정한 게 대표적이다. 지난해 1월 사건이 불거지고 연맹이 조 전 코치를 영구제명했지만 실효성 없는 조치였던 셈이다.

선수가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려 해도 마땅히 기댈 곳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에 성폭력 등 피해자에 대한 신고센터가 있지만, 선수 대다수가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는 실정이다. 대한체육회의 ‘2018년 스포츠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표팀 내 성폭력 문제를 담당하는 체육회 산하 스포츠인권센터의 존재를 아는 지도자는 26.7%에 그쳤고 선수와 학부모 사이에서의 인지도는 더 낮았다. 이 조사에서 성추행이나 성폭력을 당했다는 국가대표 응답자 31명 중 신고 기관에 이를 먼저 알렸다는 선수는 1명에 그쳤다.
지난 1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문화연대 임정희 공동대표가 체육계 미투를 지지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징계 이후 복권에 대한 기준도 분명하지 않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의 지난해 대한체육회 국감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체육단체가 비리나 폭력 등을 이유로 내린 860건의 징계 중 복직이나 재취업한 사례가 24건, 징계 후 복직이나 재취업한 사례도 299건에 달했다. 징계 인사가 복권하는 사례가 잇따를수록 폭행 피해자들의 신고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당장 메달보다 또 다른 피해 막아야

체육계의 엘리트주의를 보는 시각은 분분하다.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높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엘리트 체육이 필요하다는 관점이다. 일본이나 영국 등 해외에서도 체육 분야에서 만큼은 엘리트주의를 내세우기도 한다. 엘리트 체육의 가시적 성과에 대한 경험에서 비롯된 결과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메달이 우선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체육계의 성장을 이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날 체육회는 병폐를 근절하기 위한 대책으로 ‘엘리트 체육’ 시스템의 전면 재검토를 다짐했다. 설령 메달을 포기하는 상황에 이르더라도 체육계에 만연한 온정주의 문화를 철폐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이기흥 회장은 “성적 지상주의와 엘리트 체육 위주 육성 방식을 전면 재검토하고 개선안 마련하겠다”며 “합숙 위주, 도제식 훈련방식의 근원적인 쇄신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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