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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김정은은 고르바초프를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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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2-31 21:05:39 수정 : 2018-12-31 21: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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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바초프가 소비에트 포기 / 김정은 핵 포기보다 어려웠을 것 / 北, 이제 中 첨병역할 그만두고 / 민족의 공동 번영에 동참해야 인류의 문명을 말할 때 해(日)와 달(月), 그리고 그것의 합인 명(明)으로 말하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고 은유적이라는 점에서 재미있다. 문명(文明)은 어디에서 어떻게 출발했든 인간에게 문(文)으로써 밝음(明)을 선물한 것임에 틀림없다. 천문학적으로 보면 지구의 생명은 태양과 달의 합작품이다. 달은 지구의 하나뿐인 위성이다. 이 하나뿐인 위성이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있게 하고, 물(水)의 형성과 더불어 생명을 탄생케 했던 것이다. 그 수많은 생명 중의 하나가 인간이다.

인간의 탄생은 거의 확률제로의 행운(fortune)임에 틀림없다. 지구는 태양계(항성)의 일원(행성)이지만 달이라는 위성을 가짐으로 해서 생명의 보고가 되었다. 달(moon)은 참으로 ‘굿(good) 문(moon)’(좋은 달)이다. 그런데 달이 인류 문명의 관점에서 항상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부정적인 ‘배드(bad) 문(moon)’(나쁜 달)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흔히 해는 남성성에, 달은 여성성에 비유되기도 하는데 여성성이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만 아니라는 의미와 통한다.
박정진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여성성은 생명을 잉태하지만 가부장-문명사회에서는 원죄, 음녀, 혼돈 등 나쁜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음(陰)을 양(陽)보다 앞세우는 동양의 음양문명권에서도 음(陰)과 여성은 나쁜 의미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한자에 계집 여(女) 자가 들어가면 나쁜 의미가 되는 것은 좋은 예이다.

서양철학자 니체는 “달은 은은하면서 부드럽고 평화롭다. 둥근 달은 여인처럼 풍요롭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속임수와 이중성, 배반과 유혹을 숨기고 있다”고 풍자했다.

달을 노래한 우리나라의 옛 가사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정읍사(井邑詞)’이다. “달하 노피곰 도드샤/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정읍에 사는 한 행상의 아내가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높은 산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며 남편이 혹시 밤길에 위해(危害)를 입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는 백제가요이다. 여인들에게 달은 흔히 남편이 무사하게 돌아오기를 비는 대상이었다.

지금 한반도에 떠 있는 달은 ‘굿 문’일까, ‘배드 문’일까. 국내 정치는 좌우익의 당쟁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한 북한은 핵보유국임을 선언하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적 환경은 100여 년 전 구한말처럼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인데 우리는 분열과 혼란에 빠져 있다.

한반도에 떠 있는 달의 의미를 ‘굿 문’으로 만들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 송나라 때까지 세계 최고의 도덕과 기술을 향유했던 중국은 19, 20세기에 서방세계의 침략으로 피폐해졌다가 최근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그렇지만 자유무역을 추구하는 중국은 정치적으로는 전체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더욱이 주변국에 정치경제적 횡포를 부리고 있다.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은 졸부가 되긴 했지만 문화전반으로는 세계를 선도할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산업화와 시장경제화를 도운 우리의 입장에서 민족자존을 지키면서 국제관계와 무역수지를 잘 이끌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남북관계도 민족문화를 확대재생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선 전체주의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북한은 구소련이 스스로를 슬기롭게 해체함으로써 자유무역을 기조로 하는 세계질서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듯이 체제붕괴라는 최악의 사태를 피하면서 점진적인 ‘레짐(정권)체인지’로 국제시장경제질서에 적응해야 한다.

지난 26일 오전 북한 개성에서 개최된 ‘남북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이 본격적으로 유라시아 대륙철도(TSR, TCR, TMGR)로 연장되기 위해서는 북한의 비핵화를 비롯해서 해외자본투자안전장치 등 국제수준에 맞는 개혁·개방과 제도마련이 절실하다. 이를 통해 미국의 대북제재를 풀고 점진적으로 국제적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은 폐쇄-감옥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김정은은 고르바초프를 배워야 한다. 공산종주국의 최고통치자였던 고르바초프가 소비에트체제를 포기한 것은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결단이었을 것이다. 중국의 순망치한(脣亡齒寒)에 봉사하기보다는 핵을 포기함으로써 중국의 첨병역할을 그만두고 민족의 공동번영에 참가해야 한다. 자유를 만끽한 대한민국은 북한과 다르다.

젊은 시절 스위스 유학생활에서 경험한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장점을 되살려 개방개혁을 두려워하지 말고 쉽진 않겠지만 생즉필사(生卽必死) 사즉필생(死卽必生)의 각오로 임해야 한다. 문재인 정권과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발전을 약속한 지금이야말로 마지막 기회이다. 북한의 비핵화와 개혁개방정책은 지구전체에 자유와 평화를 선물할 뿐 아니라 평화적 남북통일에도 기여할 것임에 틀림없다.

만약 북한에 ‘자유민주북한체제’가 들어서고, 나중에 남한의 대한민국과 국가연합을 통해 ‘남북코리아연합’을 형성할 기회를 한민족 스스로 만들어간다면 이것이야말로 ‘굿 문(聞)’(좋은 소식)이다. 오늘의 한반도는 세계질서개편과 세계평화를 열어가는 뇌관이면서 동시에 열쇠가 되는 지정학적 위치에 서 있다. 한반도는 베트남이나 대만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민족의 현명한 선택을 세계는 기다리고 있다. 기해년(己亥年) 새해 벽두에 귀한 손님처럼 떠오르는 ‘굿 문’을 기대해본다.

박정진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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