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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의역사의창] 조선 왕들이 자주 찾은 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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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2-28 21:19:05 수정 : 2018-12-28 21: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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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병·눈병에 효험 있다 믿어/ 세종 등 ‘온양 행차’ 백성들도 구경 강추위가 본격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올해 여름에 워낙 폭염에 시달려서인지 올겨울은 혹한이 몰아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추위가 몰려오면 생각나는 곳이 바로 온천이다. 따뜻한 욕조의 물에서 온몸을 녹이며 피로까지 한껏 풀 수 있는 온천은 조선시대 왕들도 자주 찾는 곳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첫 왕 태조부터 온천을 자주 찾은 기록이 나타난다. 태조가 즐겨 찾은 곳은 황해도 평산 온천이었다. 태조는 왕이 된 후 자주 관리들과 친위 부대를 거느리고 평산 온천에 거둥했다. 이후에도 태조의 온천행은 계속됐다. 일부 신하들은 평주 온천이 한양과 300리나 떨어져 있으므로 자제할 것을 청했지만, 태조는 자신의 병을 걱정하지 않는다고 오히려 신하들을 나무라기도 했다. 태종은 아버지 태조를 뵙기 위해 평산 온천을 몇 차례 찾았으며, 자신 역시 풍질(風疾)이 심해지자 평산, 이천(伊川) 등지의 온천에 거둥했다. 세종 역시 평산, 이천 등지의 온천을 찾았으며, 서울과 가까운 경기 지방에 온천이 있는 곳을 찾은 자에게는 후한 상을 내릴 것을 약속했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1443년(세종 25) 3월 세종은 왕비와 더불어 충청도 온양 온천에 거둥했다. 평소 피부병과 안질로 고생하던 세종이 왕세자와 의정부, 육조의 대신 등 대규모 관리들을 거느리고 온양행을 결심한 것을 보면, 온천욕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번 거둥에 각 지역의 수령들은 모두 고을 경계에서 맞이하였으며, 구경하는 백성들이 거리에 넘치었다”는 기록을 통해 왕의 온양 행차가 큰 장관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조선전기의 학자 성현이 수필 형식으로 쓴 ‘용재총화’에는 당시까지 알려진 온천들이 기록돼 있는데, 경상도의 동래, 충주의 수안보, 강원도 이천, 평해, 고성에 온천이 있음을 언급했다. 황해도에는 온천이 가장 많은데 앞서 태조가 자주 이용한 평산을 비롯해, 배천, 문화, 안악 등지에 온정(溫井)이 있음을 소개하고 있다. 지금도 온천 단지로 유명한 동래 온천에 대해서는 일본인 이용객까지 많았음을 기록하고 있다. “경상도에는 동래 온천이 가장 좋은데, 비단 같은 샘물이 땅에서 솟아난다. 물을 끌어다가 통에 담아두면 끓인 물처럼 따뜻해 마실 수도 있고, 술을 데울 수도 있다. 조회하는 왜인들이 반드시 목욕을 하고 가는데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왜인의 왕래가 빈번해 고을에서 괴로움을 견디지 못한다”고 한 기록이 대표적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온천욕 장소로 각광을 받았던 곳은 현재도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충청도 온양이었다. 온양 온천의 뛰어난 치료 효능과 지리적 여건은 이곳에 행궁을 조성하고 일부 정사를 보게 하는 공간이 되게 하였다. “평산 온천은 너무 뜨겁고 이천은 길이 험해 온양으로 정한다”는 ‘현종개수실록’의 기록에서 온양이 왕들의 온천으로 완전히 정착됐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의 왕 중에서 온양행궁 최다 이용자는 현종으로, 온천 마니아라 불러도 좋을 만큼 자주 온천을 찾았다.

‘조선왕조실록’은 ‘온천’ 검색어가 1465건 나오는데, ‘현종개수실록’에서만 265건이 검색되는 것만 보아도 현종의 온천 사랑을 볼 수 있다. 현종이 온천을 자주 간 까닭은 재위 기간 내내 종기와 피부병으로 시달렸기 때문이다. “지금 눈병과 부스럼이 한꺼번에 발하여 약은 오래 복용하였으나 효험이 없고 침은 겨우 당장 위급한 것만 치료할 뿐이다. 일찍이 듣건대, 온천이 습열(濕熱)을 배설시키고 또 눈병에 효험이 있다고 하니, 지금 기회에 목욕하였으면 한다”는 기록은 현종이 온천욕에 큰 믿음이 있었음을 볼 수가 있다.

조선시대 백성들도 온천욕을 할 수 있었을까. ‘성종실록’의 “도내 온양 온정(溫井)의 어실(御室) 및 휴식소와 세자궁의 침실 외에는 다른 사람이 목욕하는 것을 허락하고, 남쪽 탕자(湯子)는 재상 및 사족의 부녀에게 또한 목욕하는 것을 허락하라”는 기록을 통해 온천을 민간에게도 개방했음을 알 수 있다. 겨울이 오면 특히 생각나는 온천. 조선시대 왕들도 이곳을 찾아 질병을 치료하고 휴식을 취한 역사를 기억하며 따끈한 온천물에 몸을 맡겨 볼 것을 권한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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