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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라이프]“이게 옷이냐”…조롱받던 30년 패션실험 세계를 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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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2-15 10:34:07      수정 : 2018-12-15 10:37:25
30주년 맞은 데무 박춘무 디자이너 단독 인터뷰

명동 옷장사 ‘미스 박’ 한국형 아방가르드룩 창시

‘무에서 창조된 패션’ 선보여 “혁신 거듭해야 세로운 게 나와”

해체주의, 비정형, 무채색으로 대변되는 한국 아방가르드룩을 이끄는 데무 박춘무 디자이너가 6일 서울 강남의 데무 사옥에서 포즈를 취하며 활짝 웃고 있다. 허정호 선임기자
어린 시절부터 그림 꽤 잘 그린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당연히 미대에 진학해 꿈에 그리던 화가가 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고교 2년 때 그의 꿈은 송두리째 무너졌다. 아동복 유통사업을 하며 잘나가던 아버지의 사업이 건설업까지 손대는 무리한 확장으로 부도를 맞으면서 집 안의 모든 물건에 ‘빨간 딱지’가 붙는 것을 눈물을 흘리며 지켜봐야 했다. 졸지에 풍비박산 난 집안.

하지만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장사 DNA’가 있었나보다. 남대문시장에서 옷을 떼다 명동 소매점에 팔기 시작했는데 돈이 제법 모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옷가게 주인들은 정작 그녀가 입은 독특한 옷에 더 관심을 보였다. 구제품이라 불리던 미국에서 온 구호물자였는데,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린 덕분에 옷을 고르는 컬러감이 남달랐다. 카키색 멜빵 바지에 카키색 박시 셔츠. 그녀가 처음으로 디자인 한 옷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녀는 몰랐다. 자신이 그때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향하는 위대한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사실을.
 
데무 박춘무 패션디자이너 허정호 선임기자

‘한국 아방가르드룩’의 창시자 데무의 박춘무(64) 디자이너. 무채색, 그리고 비정형적 선과 면의 분할을 내세워 전통을 완전히 해체하는 독특한 패션 세계를 창조하며 한국 패션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린 그의 디자이너 인생이 올해로 30년을 맞았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그녀는 올해 서울패션위크에서 명예디자이너로 선정됐다. 5일 서울 강남의 데무 사옥에서 그녀를 만났다. 첫인상은 요즘말로 걸크러시 같은 카리스마가 넘쳤고 패션 얘기를 할 때는 눈이 열정적으로 빛난다. 3시간 동안 인터뷰하면 그의 패션과 예술작가로서의 세계를 깊숙하게 따라가 봤다.
데무 박춘무 패션디자이너 허정호 선임기자

#잘나가던 옷장사를 때려치우다

“아버지 사업이 그렇게 되니 정말 생계가 막막했죠. 미술학원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어느 날 친구가 일하던 명동의 백화점 양품점에 엄마와 함께 갔는데 옷 팔아 본 경험이 있으니 우리도 한번 해보자고 했어요. 그래서 용기를 내 시작한 거죠.”

20대 초반 어린 나이에 특이한 옷을 잘 골라온다는 소문이 났고 그가 납품하는 옷들은 불티나게 팔렸다. 대학 다닐 등록금만 벌어보자고 시작한 사업은 제일백화점에 입점하는 등 가게를 3개나 할 정도로 커졌다. 또래보다는 6년 늦은 1979년 당시 홍익공업전문대 도안과에 입학해서도 낮에는 공부하고 새벽에는 옷을 떼어다 파는 생활을 7년간 이어갔다. 전국에서 그의 옷을 사러 몰려들었고 큰돈을 벌었다. 급기야 명동에 지금의 편집숍 개념 최초 매장인 빌리지가 생겼고, 그곳에 옷이 걸리면 전국에서 그 옷을 사러 와 바우하우스라는 브랜드로 한 구석을 차지했을 정도로 사업은 번창했다. 

그러다 그는 갑자기 잘나가던 사업을 하루 아침에 모두 접는다. “주로 무채색 계열의 체크 블라우스였는데, 공장에서 밤새 2000∼3000장씩 만들었고 지방에서 트럭채 옷을 떼어갈 정도 인기가 있었죠. 제주도까지 팔려 나갈 정도였어요. 명동에서 ‘미스 박’하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어요. 그런데 어느 날 나처럼 옷을 떼다 팔던 10살 많은 언니를 만났어요. 옷을 다루는 사람이 그냥 장사꾼처럼 너무 신경 쓰지 않고 대충 옷을 입고 왔는데 뒤통수를 한대 맞은 것 같더군요. 그때 깨달았어요. 10년 뒤에도 내 모습은 저거다. 그저 그 언니처럼 미스 박으로 살고 있을 것이란 사실을.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디자이너라 부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죠”. 

#무로부터 창조한 아방가르드룩

그다음 날 그는 모든 사업을 한방에 정리하고 국제패션연구원과 일본을 오가면서 본격적인 디자이너 공부를 시작했다. 이를 악물고 디자인에만 전념한 끝에 1988년 압구정동에 데무(de Moo)를 오픈한다. 당시 부티크가 유명해지던 시절이라 주변에서는 전통적인 여성복 디자인으로 너도 부티크를 해보란 권유가 많았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많이 달랐다. 전통을 깨뜨리고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뭔가 새로운 여성복을 만들고 싶었다. 데무는 이런 취지에서 나온 이름이다. ‘∼에서부터’를 뜻하는 프랑스어 전치다 de에 자신의 이름 끝자 무를 붙였다. ‘무(無)에서 창조된 패션’이란 뜻을 담았단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그의 이름 춘무는 ‘봄에 무성해지라’는 뜻인데 정작 패션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시작한 셈이다.

지금은 해외에 40여개 매장과 국내에 30여개 매장을 둘 정도의 토종 브랜드로 여성 패션을 주도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혹평투성이었다. “데무를 오픈하기 전에 춘계 컬렉션 무대에 섰어요. 당시 ‘멋’이라 잡지가 있었는데 기자가 ‘옷도 아니다. 색깔도 형태도 없는 무색 무취만 있을 뿐이다’라고 비평해 너무 충격을 받았죠”. 그도 그럴 것이 당시로서는 데무 디자인은 시대를 너무 앞섰다. 여성복의 전통 공식을 완전히 무시한 비정형적인 의상 형태와 중성적인 디자인은 파격 그 자체였다. 색상도 흰색, 검정색 등 무채색만 썼기에 화려한 색감의 전통적인 여성복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원래 권위, 품위, 전통 그런 것을 싫어해요. 드러나지 않고 묻혀있는 색을 좋아하죠. 여성복의 컬러는 왜 화려해야만 할까요. 왜 소매는 여기에만 달려 있어야 하는 거죠. 저는 그런 것들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옷은 편하고 추울 때 따뜻하면 되지 않나요. 당시 여성복은 베이지나 브라운 색을 많이 썼었요. 검정옷은 상복이라고 얘기하던 시절이었는데 회색이나 검정색 등 무채색을 쓰니까 당시로는 매우 불편하하고 낯설었던것 같아요”.

처음에 갤러리아백화점 건너편 로데오거리 초입 건물 3층에 세를 얻어 데무 숍을 오픈했는데 거리에 아무도 다니지 않을 정도로 한산했단다. 어느 날 남편이 “조금 있으면 망하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결정적인 계기는 롯데백화점 입점이다. 끊임없이 백화점 바이어를 설득한 끝에 일본 브랜드를 포함한 ‘영 디자이너 존’이 만들어져 여성복 마인과 함께 입점에 성공했다. “당시 롯데백화점 본점에는 돌을 갖다 놓아다 잘 팔릴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호황기였죠. 20대 젊은이들이 독특한 디자인에 매력을 느끼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답니다”.

그의 디자인은 곡선보다는 직선, 길이가 다른 여러 면들의 조합으로 꾸며지는데, 대학 시절 도안을 전공한 것이 많은 영향을 줬단다. “흰색과 검정으로도 얼마든지 표현이 가능해요. 색이 너무 강하면 오히려 창조적인 표현에 큰 제약을 받게 된답니다. 너무 단순해질 수 있어 볼륨감을 주기 위해 선과 면을 분할하죠. 도안과 출신이라 그런지 빛이 투과하고 겹치는 것을 좋아해요. 선이 꼬이고 복잡한 디자인은 지저분해질 수 있어요. 직선으로 만들어도 옷을 입고 움직이면 자연스럽게 곡선이 되잖아요.” 듣고 보니 그의 디자인 세계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한다.

#유행에 휘둘리지 않는 자신만의 세계를 지켜야

데무 옷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이게 옷이냐’는 혹평은 장점으로 바뀌어 갔다. 손님들은 “멋있고 다르면서도 오래 입어도 안 질린다”라고 칭찬을 쏟아냈다. 실제 데무의 인기 비결은 유행에 휘둘리지 않은 한결같음이다. 1998년과 2018년 디자인이 거의 비슷할 정도로 자신만의 디자인 세계를 묵묵하게 지키고 있다.

“패션은 유행에 매우 민감하죠. 하지만 너무 유행을 좇으면 다른 브랜드랑 비슷해져 버리고 말아요. 그러면 그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믿음도 무너져요. 자신만의 세계를 지킬 수 있는 힘은 결코 거창한게 아니에요. 기존 스타일을 잘 지키면서 조금씩 바꿔나가야 해요. 예를 들어 레이스나 핑크가 유행한다고 그것을 그대로 따라 하면 절대 안 돼요. 레이스를 안 붙이면서도 어떻게 여성스러움을 더 표현할까. 핑크를 안 쓰고 어떻게 밝음을 더 표현할 수 있까 이런 고민들을 해야 한답니다. 그러지 않으면 계속 유행에 끌려다니게 되고 결국 자신의 패션은 어느 날 허무하게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되죠.” 이런 데무의 패션세계는 해외에도 널리 알려져 뉴욕컬렉션 등 굵직굵직한 패션쇼에 초대돼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성장했다. 
박춘무 데뷔 30년 아카이브 컬렉션 전시회 ‘無[무로부터]’
박춘무 데뷔 30년 아카이브 컬렉션 전시회 ‘無[무로부터]’ 현장

# 전통 파괴와 혁신은 계속된다

그는 최근 고교 시절 꿈이던 화가로도 데뷔했다. 마침 데무를 선보인 지 30주년을 맞아 지난 10월 서울패션위크에서 명예디자이너로 선정되면서 그의 대표 디자인 여성복을 전시하며 패션 30년을 돌아보는 아카이브 컬렉션 전시회 ‘無[무로부터]’ 마련됐다. 앞서 다른 작가들과 단체전을 5번 정도했는데 그의 그림만 걸린 것은 처음이다. 원래는 20일 동안 전시할 예정이었으나 반응이 좋아 10일을 더 연장했다. “많은 분들이 그림을 보면서 ‘박춘무의 미술세계가 이래서 패션이 나름대로 철학을 지니고 있구나. 그래서 그의 옷이 그런 색감과 디자인을 갖게 됐구나’라고 하더라고요. 특히 방문객들이 데무 스타일의 근간인 모노톤의 그림을 수준 높게 평가했답니다. 그림을 통해 그동안 난해하게만 여겨지던 데무 옷들을 좀 더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돼서 너무 고마울 따름이에요. 덕분에 저도 큰 에너지를 다시 얻었어요. 앞으로 5년, 10년은 데무 패션을 계속해도 되겠다는 자신이 생겼답니다. 60대 중반이면 일반인들은 이제 은퇴할 나이죠. 하지만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어요. 노년이 되니 더 풍성해지고 자신감 드네요. 제가 선택한 30년 외길이 그리 나쁘지 않았어요”. 
데무 박춘무 패션디자이너 허정호 선임기자

그는 여성복 디자이너지만 남성복도 잠깐 선보인 적이 있다. 바로 데무 옴므다. 지금은 흔하지만 오래전 데무 옴므의 디자인은 자킷에 단추를 3개에서 5개까지 달았고 바지는 주름 없는 당시로는 매우 혁신적이었다. 하지만 너무 생소한 디자인은 시장에서 받아주지 않았고 결국 2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그의 이런 실험정신은 계속될 전망이다. “해체주의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에요. 데무를 한 번 입어본 고객들은 ‘특이하니까 또 입어볼까’라고 얘기하죠. 저뿐 아니라 디자이너들은 계속 혁신을 거듭해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새로운 게 나오고 진보가 이뤄지죠”.

그의 30주년 기념 전시회 ‘無 [무로부터]’는 무로 돌아가 앞으로 30년을 바라본다는 취지다. 앞으로 30년 뒤 박춘무는 어떤 디자이너로 기억되길 바랄까. “회사 식구들을 위해 돈을 벌지만 결코 장사꾼으로 인식되고 싶지는 않아요. 자랑스런 디자이너, 아티스트로 불러준다면 디자이너로서 가장 명예스럽겠죠 하하”.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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