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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28분 전 '이상신호'… 엉뚱한 선로 조사하던 중 열차 탈선

입력 : 2018-12-12 19:16:21 수정 : 2018-12-12 22: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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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사고 당시 교신기록 공개 / 오전 7시7분 “선로전환기 이상” / 고장은 서울 방향 철길에서 발생 / 신호는 30m 떨어진 선로 가리켜 / 회로 뒤바뀐 것 모르고 허둥지둥 / 관제사는 서울행 열차 출발 승인 / 5분 뒤 기장 “탈선했다” 사고 보고 / 일각, 국토부 책임론 제기하기도 지난 8일 발생한 강릉선 KTX 탈선 사고 전후의 상황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됐다. 녹취록에는 사고 28분 전 강릉역 인근 선로전환기가 고장났다는 신호가 감지됐음에도 제대로 조치하지 못하고 허둥대는 사이 강릉역에서 KTX 806 열차가 출발해 결국 탈선 사고로 이어진 정황이 상세하게 담겼다.

1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이헌승(사진) 의원이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사고 당시 관제 녹취록에는 당일 선로 이상 신호가 감지된 오전 7시7분부터 806 열차가 탈선된 직후인 7시36분까지 29분간 상황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교신은 서울 구로구 철도교통관제센터와 강릉역, 강릉기지, 열차의 4각 체제로 이뤄졌다.

사고현장 조사 강릉선 KTX 탈선사고가 발생한 지 사흘이 지난 11일 강원 강릉시 운산동 사고현장에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녹취록에 따르면 8일 오전 7시7분 강릉기지 관제사가 “선로전환기 이상 신호를 감지했다”고 말했다. 고장은 강릉역에서 서울로 향하는 방향의 철길에 설치된 선로전환기에서 발생했지만 고장 신호는 인근 강릉차량기지를 오가는 철로에 있는 선로전환기를 가리키고 있었다. 경보시스템과 연결되는 두 선로전환기의 회로가 뒤바뀌어 끼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두 전환기는 30 정도 거리에 있다.

그러자 구로 관제사는 깜짝 놀란 듯 “큰일 났네, 이거”라며 “H1636 열차가 강릉에서 8시13분 출발해야 하는데 이것부터 (차량기지에서) 못 나오고 있고, 그 다음에는 D1691이 있다”고 설명했다. ‘H’는 차량기지에서 나가는 차량을, ‘D’는 기지로 들어가는 차량을 뜻하는 기호다.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자 코레일은 차량기지 쪽 선로전환기에 초기대응팀 등 역무원을 급파했다.

자유한국당 이헌승 의원
이후 7시17분, 구로 관제사가 “806 열차가 나가는 데는 지장이 없느냐”고 물었다. 서울행 806 열차는 이미 강릉역에서 출발 대기 중인 상황이었다. 이에 강릉역 관제사는 “아, 이것은 보낼 수 있다, 신호에서 그렇게 얘기했다”고 답했다. 806 열차가 달려갈 철길의 선로전환기가 고장 난 상태였지만 아무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7시26분에 강릉역에서 대기 중이던 806 열차 기장은 “출발감속”이라고 외쳤다. 출발감속은 역에서 열차가 출발해도 좋다는 신호등이 떴다는 뜻이다. 결국 806 열차는 7시30분 출발했지만, 관제사들은 사고 직전인 7시34분까지 계속 차량기지 선로전환기의 수동조작을 두고 서로 씨름했다. 그리고 7시35분 806 열차 기장이 관제사들을 불렀고 “열차가 탈선했다”는 교신을 했다. 806 열차가 시속 105㎞로 속도를 내다 서울방향 선로전환기 인근에서 탈선한 상태였다.

녹취록에는 사고 직후 관제사들이 크게 당황한 교신 내용도 담겼다. 강릉역 관제사는 “806 열차, 열차 탈선했다고 했습니까”라며 물었고 강릉기지 관제사 역시 “806 열차가 올라가다가 탈선했다고 합니다. 기지에서 뭐… 진로를 만진 모양입니다”고 말했다.

 
설비 설치 작업 KTX 강릉선 열차 탈선사고 발생 닷새째인 12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 운산동 남강릉 신호장 21호 복선 선로에서 한국철도공사 강원본부 및 외주업체 노동자들이 설비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강릉=뉴시스
이헌승 의원은 “사고 28분 전에 고장 신호가 감지돼 조금만 더 현장에서 판단을 잘 했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지만 아무도 열차를 중지시키지 못했다”며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가 제대로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강릉선 사고가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산하 공기업 CEO 간담회에서 “오송역 단전사고의 감사를 청구하고 책임자를 엄벌하겠다”고 밝힌 후 불과 10여일 만에 발생해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철도안전정책에서 국토부의 ‘영’(令)이 제대로 서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또한 2015년 대형철도사고 등에 대비해 국가가 코레일에 위탁운영 중인 철도관제센터에 대해 국토부의 관리·감독 기능을 강화하도록 개편하기로 했지만 아직까지 이행되지 않은 점이 이 같은 사태를 촉발했다는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다.

한편 이날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국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철도 시설·차량부품에 대한 일제점검을 시행하고 책임자 문책·감사원의 감사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사고 발생 시 국민 피해와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대 대기 시간 한도 등 이용자 보호 기준을 마련하고, 피해보상 확대, 승객 피난·구호에 대한 여객안내 매뉴얼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선영·김달중 기자 0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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