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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부모·입양인·입양부모… 함께 성장하며 나아갈 동반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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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2-11 14:43:32 수정 : 2018-12-11 14:4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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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무엇일까요. 평생을 함께하지만 대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함께한 가족과도 이럴 텐데, 입양으로 맺어진 가족은 오죽할까 싶습니다.

1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입양된 아동은 총 863명입니다. 이 중 465명(53.9%)은 국내로, 398명은 해외로 각각 입양됐습니다. 1950년대부터 이렇게 입양된 아이들은 정부 통계상 약 17만명에 이릅니다. 생모와 입양인, 입양모 삼자만 생각하더라도 입양을 통해 형성된 최소 관계가 50만명을 넘는 겁니다.

그러나 입양으로 이어진 가족이 어떻게 잘 살아가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곳은 없습니다. 요즈음에야 입양 사실을 아이에게 일찍부터 설명하는 공개입양이 조금씩 자리를 잡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입양 사실 자체를 비밀로 하고 심지어는 그 자체를 없었던 양 살아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입양과 관련해 비밀, 단절 등이 우선했던 탓에 생부모는 아이를 입양 보낸 뒤 후회와 수치심으로 평생을 살고, 입양인은 뒤늦게 입양 사실에 대해 알고 생부모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 속에 살아갑니다. 입양부모는 입양부모 대로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하고 외부에 어떻게 알려질까 전전긍긍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사진=건강한입양가정지원센터 제공
입양삼자가 이렇게 서로 상처만 주고받으면서 살아야 할까요? 입양삼자가 모여 솔직히 터놓고 이야기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기 위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공공그라운드에서 열린 ‘2018 입양 삼자 토크 콘서트’입니다. 세 시간 남짓 진행된 이날 행사는 각 주체가 수년에서 수십년간 쌓아온 입양과 관련한 이야기와 경험을 털어놓고, 서로를 지지하고 북돋워 주는 자리였습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오랜 시간의 경험이 응축된 결과였던 만큼 별도의 편집 없이 최대한 전체 내용을 그대로 싣습니다.

이설아=“이렇게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함께 해주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지금부터 입양의 세 당사자가 입양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뜻깊은 자리 ‘2018 입양 삼자 토크 콘서트’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첫 번째 세션을 함께할 세 분을 소개합니다. 먼저 생모이신 전 선생님(50), 입양부모이신 이선경(50)님, 입양인이신 이소영(32)님이십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토크 콘서트를 시작해보겠습니다. 먼저 ‘생모의 성장’이라는 주제로 전 선생님의 이야기부터 들어보겠습니다. 전 선생님은 이름을 밝히고 싶어하지 않으시네요.”

전 선생님=“생모도 성장을 원합니다. 아이를 보낸 시점에 머물러 있기만 한다면 자신을 위해서도, 아이를 위해서도 좋지 않은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보낸 뒤 29년 동안 3번의 입양 발달 단계를 겪었습니다. 3번의 단계는 시간의 차이보다는 경험의 차이에서 비롯한 거라고 봐야겠네요. 살리려 보낸 아들이 잘살고 있을 거라 믿으며 보낸 시기가 꽤 오랜 기간이었습니다. 다음은 10년 전쯤 해외입양 청년을 만났던 것이었는데, 그 청년이 저를 찾아왔는데 “차라리 나를 낙태했더라면 좋았을 것” “살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너무도 놀랐지만 화가 나기보다는 눈물이 났습니다. 내 아들도 이런 상황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그 말을 듣고 며칠간 몸살로 누웠습니다. 아들을 살리려 보낸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죽고 싶게 만들 수도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이후 해외입양인 필립, 얀, 조셉의 죽음을 연이어 듣게 됐습니다. 그때마다 10년 전 그 청년의 말을 떠올리게 되며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이후 국내입양 엄마와 만나는 시간 갖게 됐습니다. 국내 입양부모들과의 만남은 입양삼자 모임으로 발전했지요. 해외입양인과의 만남에서 익숙했던 내 모습을 내려놓고, 해외입양의 죽음을 마주하며 엄마이지만 엄마일 수 없는 생모의 입장으로서 입양부모와의 쉽지 않은 시간 보냈습니다. 입양 삼자 모임이 생모에게는 분명히 힘든 시간이지만 지속하는 것을 지지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장을 위한 생모들만의 모임 있어야 합니다. 생모들은 해산의 경험, 죽을 듯한 고통을 겪은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입양인의 죽고 싶다는 말은 온몸으로 전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후 그들을 어떻게 살려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죽을 것 같은 경험으로 낳은 아이를 만져보지도 못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잉태 이후 아이와 나를 분리하는 말만 들어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고, 잃어버린 채 내면화하며 살아왔습니다. 그저 아이가 행복해지는 길이라고만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온전하지 못한 말에서 벗어나는 일을 이제 해야 합니다. 10달간 아이를 배 속에 품으며 함께 성장했던 경험을 되새기며 생모가 성장하는 것이 아이를 살리는 것과 일치하는 행동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때의 나로 돌아가 아픔을 인지하고 애도하며 증명하는 힘을 내겠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할 것입니다. 사실 아들을 보냈다기보다는 아직도 보내는 중입니다. ing예요. 아들이 뱃속에 있던 시간 포함해 30년 세월 전부를 그렇게 보내고 있습니다. 올해 유난히 내 인생은 51세이면서 아들의 나이인 30살인 것 같은 또 다른 애도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혼란스럽고 불편하고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이선경=“생모들의 심리적 성장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를 위한 프로그램을 전 선생님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입양인에게 건네야 하는 숙제가 생모에게도 있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지지하고 싶습니다.”

이소영=“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입양인으로서 임신과 출산이 삶에서 큰 전환점이 됐습니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 전국적으로 메르스가 퍼졌던 상황이라 병원을 혼자 다니고 보호받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야 했거든요. 당시 외로움을 많이 경험했는데, 그냥 생모라기보다는 외로운 임신과 출산을 하는 생모라는 개념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지지받지 못하는 임신과 출산이 어떠할까’에 대해서 집중하게 된 경험이었습니다. 삼자모임에서 생모분들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이야기 들으면서 나의 잉태와 출산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내가 치열하게 지켜진 과정들을 간접적으로 들으면서 어느 유명인의 말처럼 ‘내가 지켜진 아이가 맞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설아=“이제 서로 궁금한 점들을 물어볼까요?”

이소영=“힘들었던 당시 어떤 것이 도움이 됐는지요?”

전 선생님=“우선 신앙의 힘이 컸습니다. 가족인 네 명의 아이, 남편도 정말 큰 힘이 됐습니다. 여기에 지난 12년간 계속해온 심리학공부의 덕도 있었습니다. 새로 얻은 지식을 통해 객관적으로 나를 볼 수 있는 힘이 생긴 겁니다. 나를 통찰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을 의식했던 내 상처에 대해 제대로 해석하게 됐을 뿐 아니라 지식을 통해 힘을 얻어가는 내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이설아=“입양인 입장에서 이소영님이 듣기에 어떠셨는지요?”

이소영=“생모에 대한 개념이란 게 있을까요? 생모의 개념이란 게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재회 가능성 희박하고 정보가 별로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대신 우리의 생모를 돕고 싶다는 개념이 많이 든 상태인 것 같습니다.”

이선경=“생모 모임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전 선생님=“쉽게 말해서 51살의 나와 30살의 나를 이야기하면서 도움 받고 이야기하는 모임에 대한 것입니다. 서른의 나는 제 아이를 떠나보낸 지 30년이 된 만큼 내 아들의 나이를 기준으로 한 겁니다. 경험을 토대로 그런 생각 하게 됐는데요, 이 모임을 하려면 우선 미혼모 체계에 대해 이해가 필요합니다. 아이의 장래 결정에 대해 미혼입양모와 미혼양육모로 나뉩니다. 아이를 입양보낸 입양모는 국내입양모와 해외입양모로 또 나뉩니다. 이 둘은 만날 기회가 별로 없어요. 아이를 계속 키우는 미혼 양육모들은 나름대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인식도 달라지고 있지요. 이때 생모만이 가지고 있는 퍼즐을 어떻게 전해줘야 하는지가 중요한데, 그건 생모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절대 쉽지 않습니다. 아이를 위해 그렇게 하는 게 옳다는 인식을 하게 되면 생모들은 용기 낼 수 있습니다. 그게 아이를 출산한 엄마들의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위해 향후 박사공부를 하고 싶고, 우리 사회에 마중물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설아=“그간 우리 사회에서는 입양부모와 생부모가 대결구도인 것처럼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선경=“저는 아이 둘을 입양했습니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생모와 입양모가 굳이 왜 대결을 해야 하나 싶어요. 그다지 그런 이유가 있을까. 양육하는 입양엄마는 아이를 성장 위해서도 성장해야 하고, 생모의 퍼즐 맞추기 위한 노력도 해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도 생모의 성장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입양부모는 낳아준 분에 대해 인정하고 생모는 길러준 것에 대해 서로 인정한다면 대결 구도가 아니라 손잡고 갈 수 있는 사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요, 그렇게 하면 아이들 입장에서는 두 세트의 부모가 생기는 거 아닐까요.”

이설아=“두 세트의 부모가 아이를 위해 함께 성장하는 것. 그걸 위해 오늘 우리가 모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면 입양부모이신 이선경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이선경=“제목은 ‘내 아이의 생일’입니다. 첫째 은민이를 입양하고 첫돌이 다가올 즈음 생일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아이는 태어나는 것이 어떠했을까. 탄생의 순간은 무조건 환영받고 기쁘다고 생각했는데 첫째도 과연 그렇게 여겼을까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민이의 생일은 가장 큰 상실을 겪고, 친숙한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날이기도 했으니까요. 생일이자 상실의 날인 겁니다. 은민이는 다섯 번째 생일날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생일축하도 잘 받았는데 하루종일 표정이 안 좋아 보인다는 거예요. 집에 들어온 은민이는 작은 일에도 짜증을 냈습니다. 저는 두 다리에 힘을 꽉 주고 은민이의 감정을 받아 낼 준비를 했습니다. 오늘 내 딸이 힘든 날이니까요. 은민이는 그날 밤 늦도록 슬퍼하다가 흐느끼며 잠들었습니다. 그런데 은민이가 다음날 “엄마 이제 됐어”라며 저를 깨웠습니다. 그 한마디로 됐습니다. 여섯 번째 생일은 유치원 생일상도 받고, 케이크 사서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마음이 흐뭇해 있는데 동생 은산이가 누나가 울먹인다며 저에게 왔습니다. 은민이가 마음이 슬프다고 했다네요. 아이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 역할놀이 하겠다고 했더니 은민이는 거절하고 동생과 헤어지는 놀이를 했습니다. 은민이는 여섯 번째 생일에도 아파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생일을 맞이해야 아이의 아픔이 수그러들까. “그렇구나”, “그랬겠네” 하는 말로 곁을 지켰습니다. 아이가 자기 자신으로 잘 살면 참 좋겠습니다.”

사진=건강한입양가정지원센터 제공
전 선생님=“사실 많이 놀랐습니다. 아이 생일날 생모들은 하루 종일 가슴 먹먹하고 울기도 합니다. 은민이 얘기 들으면서 이런 맘이 들었어요. ‘그날 하루는 생모는 마음 놓고 펑펑 울어도 되겠구나’라고. 참지 말고 그냥 내 배 아파서 낳은 아이라 생각하고 펑펑 울어도 되겠다는 안도감이 생기네요. 해외입양인 중에서는 생일이 정말 생일인지 궁금해하는 경우 많습니다. 그 생일이 정말 자신의 생일인 걸 알게 된 아이는 그날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아이를 입양 안 보내고 키우면 좋겠지만, 미안해요 입양부모님께 하는 말은 아닙니다, 입양을 보내야 한다면 최소한 아이의 생일에 대해서는 정확히 적어주는 게 본분이라는 생각입니다.”

이설아=“이렇게 어린 아이가 자기의 생일에 애도한다는 건 처음 들었습니다. 그것을 느끼고 표현한다는 게 마음이 아픕니다. 저도 이 정도인데 당사자 엄마는 너무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이선경=“아이가 그럴 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어요. 사실 화장 안 하는데 오늘 마스카라까지 하고 왔어요. 안 번졌나 모르겠네(웃음). 그날 은민이는 내가 잠재울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런 생각하는 저 자신이 좀 두렵고 떨렸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을까 생각했는데 맞다면, 내가 짐작하는 게 맞다면 내가 잘 버텨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다리 힘 주고 애도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이었어요. 은민이가 그렇게 난리치고 할 때에는 잠시 아무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도 있었지요. 그 순간에 아이를 달랠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 정말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은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걸 몰랐다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을 테니까. 아이가 자신만의 방법으로 애도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가 정말 애도하고 있는 거라면, 자신의 생일을 애도하는 거라면 내가 버텨주고 견뎌주면 된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런 은민이 보면서 ‘나는 난임 입양엄마다’라며 나의 상실을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아이의 상실을 바라보며 ‘내가 낳았으면 아이도 나도 그런 상처가 없었을 텐데…’하고 내 상실도 올라왔던 겁니다. 결국 은민이 생일은 저 또한 출산하지 못한 저의 상실을 애도하는 날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설아=“전 선생님도 아이 생일이 오면 힘들다고 하셨는데요.”

전 선생님=“아들의 생일은 6월1일입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는데 첫 생일날 아이를 낳고 내 마음이 어땠는지는 잊혀지지 않아요. 한국에서는 아이 낳고 나면 첫 생일을 돌이라고 모든 가족이 축하해줍니다. 나는 10달 임신해서 죽을 것 같은 고통으로 낳았는데 생일에 아이가 없는 거예요. 나는 낳았는데 없어요. 그래서 많은 (아이를 입양보낸) 생모들이 아이 첫 생일날 정말 죽을 것 같은 시간을 보냅니다. 실제로 죽겠다고 바다로 뛰어가는 엄마들도 있었어요. 그 때 저희는 아이 생일이라고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더 힘든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아이 생일 한 번도 잊어본 적 없습니다. 나만의 방식으로 축하를 합니다. 아이 가졌을 때 먹고 싶었던 음식 혼자 가서 먹기도 하고, 아이가 지금 이 나이면 무엇을 하고 싶을까 하면서 해보기도 합니다. 물론 미국에 있는 아들의 부모님이 아이의 생일 축하해주겠지만 한국에서는 그 아이의 생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나 한명 뿐이니까요. 그래서 나는 아이의 생일을 혼자서라도 기억하고 축하합니다. 지금은 남편이 같이 편지를 써줍니다. 같이 기다려주는 거예요.”

이설아=“입양 당사자는 어떠한가요.”

이소영=“저는 생일과 출생신고 된 날이 2년 넘게 차이가 납니다. 출생신고 일자가 따로 돼 있습니다. 그래서 정확한 날짜를 알게 됐을 때 그게 내 생일인 갓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들이 많았어요. 부모님과 만난 날이 생일인 것 같아서. 그래서 출생신고가 된 날을 생일이라 한 적도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저는 돌잔치에 기억이 있습니다. 돌잔치를 다섯 살 때 했으니까. 가난한 집에서 나름 성대하게 금반지를 다섯 살짜리 애가 끼고 했고, 늠름하게 과자봉지 들고 돌 사진을 찍었는데 지금 그걸 생각하면 슬프기도 합니다. 저는 지금 생일이 내 생일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점집 가서 물어보면 그렇게 잘 맞더라고요(웃음).”

이소영=“은민이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감정표현을 자유롭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선경님은 스스로 어떤 부모라고 생각하세요?”

이선경=“밖에서 은민이, 은선이가 감정단어를 정말 잘 사용해서 아이들을 잘 위로해준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저는 아이의 행동에 민감하려고 노력합니다. 아이가 울거나 떼쓰려 할 때 가능한 언어화해주려 노력합니다. 잘 알 수 있도록. 자기 전에 감정들에 대해 물어보면, 아이들이 “그렇겠다”, “그랬겠다”라고 반응한다. 아이들이 감정을 수용하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겁니다. 담임선생님들의 최근 피드백으로는 만족스럽습니다. 그래도 아이들 입장에서 ‘부모가 안전하다고 여길까’라는 문제는 아이들이 나중에 본인의 입으로 직접 말해줘야 할 것 같네요.”

전 선생님=“두 아이 엄마가 된 이후 생일이 새롭게 의미가 다가온 게 있었나요?”

이소영=“첫째를 출산하기 전까지는 그냥 남들처럼 축하받으면 좋은 날이었는데 그 뒤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탄생이란 게 무엇인가’를 시작으로 축하받지 못하는 아이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이를 낳을 때에도 그런 쓸쓸함이 많이 밀려왔거든요. 출산을 한 엄마들이 아이를 낳았을 때 즈음이 되면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던데, 저도 그달이 되면 몸이 그랬습니다. 외로운 출산, 생모 등이 떠올라서 더 쓸쓸해지는 것도 있어요. 내 생일보다는 첫아이 생일 때 쓸쓸함 더 많이 밀려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데리고 살아야 하니까 의식적으로 잘 이겨내며 살고 있습니다.”

이설아=“내년 생일은 어떻게 버티실 건가요?”

이선경=“지금처럼 아이가 잘 애도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없었는데, 확신이 없었는데 은민이 생일 다음 날 “엄마 이제 됐어” 이러면서 미소 짓는 모습은 평생 못 잊을 것 같습니다. 평생 생일마다 럭비선수마냥 버틸 겁니다. 어깨 힘주고 ‘얼마든지 내가 받아 주리라’, ‘은민이가 안전히 애도할 수 있는 성이 되리라’라며 버티려 생각 중입니다.”

이설아=“다음은 입양인으로 나오신 이소영님의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이소영=“제목은 용기인데요, 하고 싶은 많은 말 중 용기로 결정한 것은 많은 뜻이 있습니다. 우선 세 주체에게 용기의 메시지 전달하고 싶습니다. 저는 서른셋 성인이고 임신과 출산으로 만난 두 딸의 엄마입니다. 처음 입양 모임에 얼굴 비출 때 입양부모라면 누구나 아이가 이렇게 소개하고 싶은 아이로 자랐습니다. 사춘기도 무탈하게 지났고 스물아홉에 결혼도 했으니까요. 특히 출산으로 생모의 존재를 온몸으로 각인한 저는 생모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게 됐습니다.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게 저의 입양부모님께 실망을 안겨드리지는 않을까’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가까운 첫째 딸과 남편에게 그 고통을 고스란히 전가해버렸습니다. 둘째 출산할 때 이 고통을 그대로 계속 전가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설아 선생님께 전 선생님이라도 만나게 해 달라 했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 만의 마음으로 내 딸을 괴롭히던 것을 멈출, 아니 줄일 수 있게 됐습니다. 많이 줄었어요(웃음). 삼자 모임에서 어떤 역동적인 일이 일어나는지는 세션 2에서 이야기될 부분이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여성은 모성의 크기와 속도가 똑같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제가 메시지 전달하고 싶은 대상은 원가정의 강압이나 외부 요인에 의해 입양 결정한 여성들입니다. 입양을 강제적으로 결정하고 평생을 후회로 살아갈 가능성 큽니다. 그런 측면에서 아이를 만나고자 하는 재회에 대한 여지와 출산, 아이에 대한 정보를 꼭 남겨주십시오. 만남까지 성사되지 않더라도 생모가 자신을 찾으려 시도했다는 것만으로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됩니다. 입양부모들에게도 저처럼 30대 입양자녀를 두신 부모님이 많은데 입양가정에서 자녀에게 입양 사실을 숨기고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뿌리와 진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하늘이 주신 인권의 문제입니다. 늦게라도 자녀에게 자신의 역사에게 말씀해주십시오. 공개입양 부모에게 말씀드립니다. 인간은 누구나 낳은 부모와 기른 부모가 일치하기를 원한다. 이것이 입양부모와 아이를 힘들게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아이가 입양됨과 동시에 새 길을 열어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과거가 어두운 역사여도 아이에게는 소중합니다. 그냥 앞으로 함께 손잡고 걸어갈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뿐입니다. 자녀가 생부, 생모에 대한 그리움 안고 살아간다고 해서 입양부모를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당신들의 작품입니다. 그리고 입양인들이 후배들을 위해 목소리 내주길 바랍니다. 또 관계기관 직원과 입양 관계자 등의 오해 속에 입양, 입양인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경우 많습니다. 용기를 내어 세상 밖으로 나와 주시기를 힘 있게 요청드립니다. 입양이 좋은 건지 좋지 않은 건지, 행복인지 아닌지는 살아가다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잘 모르는 걸 모른다고 답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주십시오. 그것이 없으면 다른 이들의 가치관으로 덧씌워질 가능성 크기 때문입니다. 나를 찾고자 하는 사람이 나를 잃어선 안 됩니다.”

사진=건강한입양가정지원센터 제공
이설아=“‘입양인은 잘 모르는 감정으로 차 있다’는 말이 와 닿았습니다. 어떤 걸까요.”

이소영=“20대부터 10년 정도 공개입양세대 친구들을 만나서 석사논문도 진행했습니다. 공개입양 친구들 보면 입양에 대한 긍정적 생각 가지고 있고 부모님께 감사하는 모습이 대부분입니다. 그건 사실이죠. 그 감정도 소중하게 느끼고 있는데 그걸 표현할 때 어른들의 언어를 빌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신의 목소리라 하기는 힘듭니다. 저랑 이야기하다 보면 뭘 질문할 때 “모르겠다”는 답을 그렇게 많이 합니다. 그런데 똑같은 질문에 대해 밖에 나가면 대답을 참 잘해요. 모르겠는 것을 싫지는 않으니 결국 ‘좋은 거’라고 표현을 하는데, 더 큰 어른이 돼서도 그러지 않을까 걱정이 됐습니다.”

이설아=“입양부모님과 입양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계시는지요?”

이소영=“부모님은 비밀입양 세대였습니다. 제 남편은 입양에 대해 제 취미가 수영인 것 정도로 생각하지만요(웃음). 어쨌든 부모님은 비밀입양 세대이십니다. 제 잘못도 컸던 게, 입양 이야기를 꺼낼 때에는 항상 부정적인 상황이었습니다. ‘내가 더 불쌍해!’ 이럴 때. 그렇다 보니 대화가 좋게 끝날 리 없죠. 오늘 이 자리에도 오시라고 했다가 난리가 나서 그냥 안 오셨거든요. 연약해서 지켜드려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모임에서 많은 위로 받고 있습니다.”

이설아=“입양부모님들이 아이와 입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왜 어려울까요?”

이선경=“두려움이겠죠. 아이가 상처 받을까봐, 자신의 감정이 올라올까봐. 저는 개인적으로 임신과 출산을 못 해본 사람입니다. 아니, 임신은 했었죠. 출산을 못 한 거니까. 어쨌든 쉽지 않은 감정이 올라옵니다. 시시때때로는 아니지만 생일 등등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감정들이 올라오면 옛날에는 수치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남들이 다 하는 거 왜 나는 못할까. 이 감정을 마주하고 ‘그래, 나 애 못 낳는 여자다’ 인정하는 게 쉽지 않죠. 이에 기반해 감정은 시시때때로 변합니다. 아이에게 입양 사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내가 안 낳았어’, ‘낳은 엄마 따로 있어’ 이건 변하지 않는 거예요. 그러나 이 사실을 인생 내내 인지할 때마다 겪는 출렁거림은 다를 것 같습니다. 그걸 인정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그걸 인정 못 해주고 부모가 자신의 아픔에 대해 제대로 통찰할 수 없으면, 아이와 깊은 입양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에 대해 감정 나누는 게 힘들 꺼라 생각이 듭니다.”

이설아=“입양에 대해 더 말하지 못하는 가족도 많습니다. 용기 내달라고 했는데 어떻게 들으셨는지?”

전 선생님=“소영씨 처음 만난 날이 생각납니다. 해외입양인은 친숙했지만 국내입양인은 처음이었거든요. 그런데 그것도 만삭이었어요. 그건 정말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일반인은 이해하기 힘든 일일 거예요. 우리 엄마가 국내입양 1세대십니다. 저는 소영씨 뱃속 아이의 입장이기도 한 겁니다. 그날 소영씨 이야기 듣기도 했지만 딸들에게 하는 행동이 나에게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복잡했습니다. 정말 생모면 내가 편하게 감정표현을 하겠는데 생모인 듯 생모 아닌 생모 같은 입장, 다 아는 노래같죠? 그날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습니다. 심리상담사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그날 몇 시간 만나고 나서 소영씨가 도움이 됐다고 하니까 그 감정들이 다 사라지면서 고맙고 보람도 있었습니다. 생모분들에게 내가 하는 이야기가 뭐냐면 딱 한 번만 용기 내라는 이야기 하고 싶어요. 그래야 합니다. 아이가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한다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보호받는 것 같지만 경계선을 그려야 하는 이야기입니다. 생모가 용기 내는 거 어렵다는 것 잘 압니다. 하지만 아이가 만나고 싶어 한다면, 용기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생모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설아=“입양삼자 모임에 대해 자기들끼리 자기 생모도 아니고 자기자식도 아닌데 삼자가 모여서 무슨 도움이 되느냐는 말도 있던데요?”

이소영=“처음에 신기했던 게 전 선생님 만난 자리는 사후서비스 세미나 같은 곳에서 우연히였습니다. 처음에 만났을 때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제가 이 나이가 되도록 생모를 떠올릴 때 저보다 어린 예쁜 젊은 아가씨를, 이 나이가 되도록 떠올렸던 거예요. 그런데….”

전 선생님=“나이 들고 뚱뚱하고 못 생긴?(웃음)”

이소영=“아니, 그런 게 아니고요. ‘생모가 나이가 들었을 거라는 걸 내가 왜 생각하지 못했지?’하는 거였습니다. 그냥 충격과 공포였어요. 그래서 인사하러 다가오는데 도망갔어요. 그래서 대전 집까지 운전해 돌아가는 과정 내내 오열했습니다. 오열은 정말 처음이었어요. 3일 정도 고민한 뒤 이설아 선생님께 다시 연락을 드렸습니다. 그 뒤에 이야기하면서 많은 것이 해결됐습니다. 연극치료에서 심리상담사가 대신 연기하는 것 같은 그런 거였는데, ‘그러면 힘이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혜택 받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시작했습니다. 효과가 분명히 좋았습니다.”

이소영=“입양삼자 모임에 참여하시면서 어떤 게 가장 도움이 되셨나요?”

이선경=“입양은 아이에게 새로운 안정감을 준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임에서 한 성인입양인이 입양에 대해 “새로 연결되는 가족이 안전한지, 끝까지 함께 할지도 모르는데 입양부모와 연결되는 것은 당연히 불안한 거다”는 말을 했습니다.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입양이란 틀림없이 안전하다고만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사고가 확장됐고, 아이 대하는 마음 자세까지 달라졌습니다. 그러면서 아이가 커서 나중에 생모를 만나겠다고 하면 얼마든지 수용할 자신이 생겼습니다. ‘내가 다 했다’, ‘100이면 99는 다 했으니 얼마든지 만나게 해줄 수 있다’ 그런 거죠. 그런데 모임하면서 그게 아니었습니다. 입양인도 생모 마주할 때 처음에는 ‘조금 궁금하다’, ‘많이 궁금한 것 아니다’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출렁거리는 걸 봤습니다. 입양부모 입장에서는 그렇게 출렁거려야 하나 싶기도 하죠. 그걸 보면서 생모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래서 ‘생모가 나타나도 좋고, 안 만나도 좋다’였는데,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지금은 간절히 기도합니다. 생모가 잘 성장해서 아이 앞에 잘 나타나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선경=“자녀와 건강하게 재회하기 위해서는 어떤 서비스 제도가 필요할까요?”

전 선생님=“서비스, 제도라는 말은 좋아하지 않는데 질문은 좋네요. 아무리 감추려 해도 모든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궁금해한다는 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끝도 없는 감정이 올라오기 때문에 생모에게 당황스럽고 불안하기도 합니다. 관련 전문가들이 입양 생모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 좋겠습니다. 이전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직접 서비스를 주려는 노력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생모들이 그 혜택을 거부, 포기하는 이유는 전달하는 전문가의 태도에도 있다고 봅니다. 생모는 불쌍하고 가련한 복지혜택 수혜자가 아닙니다. 혼자인 여성이 출산과 동시에 모든 것을 상실한 것에 대해, 따뜻한 손길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 느껴도 손을 잡을 겁니다. 사회복지사의 태도와 상담에 따라 아이의 장래와 미래가 결정됩니다. 사회복지사가 나에게 이런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윤리적이고 책임감 있는 태도로 미혼모와 이야기해주면 좋겠습니다. 기관은 재회 서비스할 때 입양주체들이 공통적으로 느꼈다고 말하는 수치심, 불안감을 줄일 수 있도록 한 곳에서 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이리 가라’, ‘저리 가라’ 하는 게 당사자에게는 매우 수치스럽습니다. 또 사후서비스에 생부모도 참여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입양에 대해 어떻게 아이에게 말해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지금 키우는 아이들에게도 이야기해야 하니까. 저는 해외입양인들을 만나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많이 만나도 내 아이, 내 엄마를 만나야만 해결되는 게 있습니다. 대체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서비스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이설아=“우리나라에서 어느덧 입양도 오랜 역사가 흘렀습니다. 공개입양도 20년을 향해 가고 있는데요, 앞으로 보다 전문적인 재회서비스가 중요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입양삼자 모임은 한 달에 한 번, 입양으로 서로의 삶이 연결돼 있는 생부모와 입양인 그리고 입양부모가 함께 모여 서로의 삶에 귀 기울이고 공감과 격려를 건네는 지지그룹입니다. 함께 성장할 성인입양인과 생모분들을 언제나 환영합니다.(www.guncen.org)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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