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공정' '정의'…2030대 남성들 "우린 배제되고 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널리 알려진 이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는 현 국정 운영의 핵심 철학이기도 합니다. 이는 "기회가 평등하지 않고, 과정이 공정하지 못하면, 결과는 정의롭지 못하다"고 바꿔 말할 수 있습니다.

즉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이 선행돼야 정의로운 사회를 보장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 50%선이 붕괴된 가운데, 특히 주목할만한 점은 문 대통령에 대한 성별지지율 격차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한국갤럽이 이달 7일 발표한 문재인 대통령 지지도 정례조사 자료를 보면 우선 남성의 경우 부정평가가 48%로, 긍정평가(44%)보다 4%포인트 높았습니다. 남성만 놓고보면 처음으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질렀습니다.

반면 여성은 긍정평가가 53%로 부정평가(34%)보다 훨씬 우세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초부터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성의 대통령 지지율이 남성보다 다소 높은 경향은 있었지만, 성별 격차가 뚜렷하게 벌어진 건 처음입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의 대표는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전통적으로 지역·이념 갈등이 있었는데 최근 세대·계층 갈등이 커지는 추세"라며 "성별 격차도 데이터상으로 확인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도 정체성 정치가 본격화하는 신호"라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남성들의 지지율 이탈 배경에는 젠더 이슈를 비롯 일자리, 안보 등 현 정부의 정책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가상준 단국대 교수는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피부로 느끼는 경기 체감이 지지층 이탈을 낳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취업 전선에 있는 2030대 남성이나 가계를 책임지는 4050대 남성의 지지율 하락은 경기 부진의 영향이 크다는 것입니다.

◆대선 전부터 文 강력한 지지층은 2030대 여성

전문가들은 2030대 지지율 하락은 결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리서치뷰가 취임 초기 4개월과 최근 4개월(7~10월)의 지지율을 분석한 결과, 2030대 지지율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낙폭이 가장 컸습니다. 20대는 86%에서 56%로, 30대는 87%에서 64%로 떨어졌습니다. 특히 20대 남성의 경우 78%에서 43%로 35%포인트 낮아져 모든 계층에서 가장 많은 지지율 하락을 기록했습니다.

장덕현 한국갤럽 기획조사실 부장은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20대 남성층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확고한 지지층은 아니었다"고 분석했습니다. 지난 대선 직전인 작년 5월 7~8일 사이 진행된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이 당시) 문재인 후보에 대한 20대의 지지는 39%로, 30대의 54%, 40대의 51%보다 낮았습니다. 특히 20대 남성의 지지율은 29%에 그쳤습니다.

장 부장은 "대선 전부터 문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층은 2030대 중에서도 여성들이다. 20대 남성층은 충성도가 낮은 지지층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비판적인 지지를 많이 보냈던 집단의 지지율이 먼저 빠지는 것이 당연하다"며 "20대 남성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서도 내부적으로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지난달 13일 서울 지하철 4호선 이수역 인근 주점에서 남녀 손님 사이에 벌어진 '이수역 폭행 사건'의 피의자 5명이 1차 경찰 조사를 마쳤습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이날 오전 4시쯤 이수역 인근 한 주점에서 A씨 등 여성 일행 2명과 B씨 등 남성 일행 3명이 서로 다툼을 벌인 것에서 시작됐습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 사건 발생의 원인을 두고 의견이 엇갈렸고, 남성과 여성 간 성 대결 양상으로 번지기도 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화면 갈무리

최근 남성혐오(남혐), 여성혐오(여혐) 논란을 촉발시킨 '이수역 폭행 사건' 등의 성별 갈등도 현 정부 지지 철회에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한 대학생은 "성별 갈등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최근 이수역 사건과 여당의 대응을 보고 크게 놀랐다. 처음에는 나도 여성들이 억울하게 맞은 사건이라 생각해 남성 처벌 청원에도 참여했지만, 막상 실상을 들여다보니 피해자라고 주장했던 여성들의 글이 상당수 거짓이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물론 이것이 정부 지지를 철회할 사안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온라인상에서 성별 갈등을 현 정부의 문제로 끌어올리는 커뮤니티들이 있는데, 이곳의 영향을 받은 친구들은 확실히 정부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젊은 층에서만 남녀 격차가 크게 나타나는 건 아무래도 최근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젠더 이슈나 대체복무 등의 문제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며 남성들은 문재인 정부 들어 여성들이 목소리가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있다고 말합니다.

◆20대 남녀 지지율 격차, 젠더 이슈로만 설명하는 건 무리라는 의견도

실제 젠더 이슈나 병역문제 등 2030대 남성과 밀접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남성들의 지지율은 요동쳤습니다.

헌법재판소는 6월28일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고 있는 현행 병역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20대 남성들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81%(6월)에서 64%(7월)로 17%포인트 하락했습니다.

반면 여성은 84%로 동일한 수준을 보였습니다. 이수역 폭행 사건 등이 이슈가 불거졌던 지난달 20대 남성의 지지율이 63→51%로 12%포인트 내려갔지만, 여성은 74→70%로 4%포인트 하락했습니다.

최근 2030대 남성이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페미니즘 대통령을 선언한 문 대통령이 여성만 챙긴다" "지지를 철회하겠다" 등의 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대선 때 '공정'과 '정의' 등을 내세워 당선됐는데, 정작 취임 후 각종 정책에서 남성들이 배제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젊은 남성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남성들이 이같이 반발하는 배경엔 “여성이 남성보다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분석 전문위원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남녀 대학 진학률이 역전되고 취업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며, 20대 남성 입장에서는 여성을 더 이상 차별받는 약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자신들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없다는 생각에 기성 정치권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도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반해 20대 남성과 여성의 지지율 격차를 젠더 이슈로만 설명하는 건 무리라는 반론도 있습니다. 20대 여성들도 젠더 이슈에 한해서는 문재인 정부 정책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현주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