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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구의일상의경제학] 무리 짓기의 불행한 결과 피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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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2-06 21:22:05 수정 : 2018-12-06 21: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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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 판단 실수 땐 ‘초원’ 대신 ‘절벽’에 몰아/ 구성원 모두에 자신 의견 주장할 기회 줘야
경제학 이론 중에 허딩(herding)이론이 있다. 번역을 하자면 무리 짓기 현상에 대한 이론이다. 아프리카의 평원에서 소떼나 얼룩말떼가 갑자기 모두 한 방향으로 무리를 지어 뛰어가는 장면이 바로 무리 짓기 ‘허딩’을 가장 잘 나타내지 않을까 생각된다.

경제학자들이 동물의 허딩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인간 사회에서도 무리 짓기 현상이 관찰되고, 때로는 무리 짓기 현상이 사회에 큰 피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룩말 무리의 대장이 현명해 얼룩말을 안전하고 먹이가 많은 곳으로 인도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대장 얼룩말이 착각을 해 얼룩말을 절벽으로 몰고 가거나 먹이가 부족한 곳으로 데리고 가면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인데, 이런 현상이 인간 사회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100명이 길을 가던 중 갈래길을 만났다고 하자. 문제는 이 100명 모두 처음 이 길을 가는 사람이고, 각기 다른 곳에서 길에 대한 설명을 들었지만 아무도 확신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보자. 그런데 100명 중 98명은 자신의 정보를 바탕으로 오른쪽 길로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반면 2명은 왼쪽 길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하자. 단 이 100명의 사람은 서로 의견을 교환하지 않고 차례로 길을 갈 뿐이다. 이렇게 100명 중 98명이 오른쪽이라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오른쪽이 맞을 확률은 100%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우연히 왼쪽이 맞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이 선두에 설 경우다. 그러면 첫번째 사람은 자신의 정보를 바탕으로 왼쪽으로 갈 것이고, 두 번째 사람은 자신도 왼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첫 번째 사람이 왼쪽으로 가는 것을 보고 자신감을 얻어 왼쪽으로 갈 것이다. 문제는 세 번째 사람이다. 이 사람은 오른쪽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앞의 두 사람이 왼쪽으로 가는 것을 보고 아마 자신이 틀렸다고 결론지을 것이다. 이로 인해 맞을 확률이 높은 왼쪽을 택할 것이다. 그 이후에는 설명이 필요 없이 나머지 모든 사람이 왼쪽으로 길을 택하게 된다.

이렇듯 집단의 지혜를 모으면 훨씬 맞을 확률이 높은데도 타인에 비해 지식과 정보를 더 갖지 않은 사람이 앞장서서 틀린 선택을 하면 사회 전체가 틀린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허딩이론이다. 이런 불행한 무리 짓기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100명의 사람이 모두 자신의 의견을 정확히 주장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한때 학자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의사소통이 쉬워지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갖기도 했지만, 인터넷에서 허위 사실에 근거한 마녀사냥이 일어나는 등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로 가는 것 같다. 인간도 동물이라서 그런지 다양한 의견을 내기보다는 우르르 몰려다니는 현상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이에 무리 짓기의 불행한 결과를 피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것이다. 지식과 정보가 부족한 사람이 나서지 말고 오랜 연구와 경험으로 타인보다 월등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선두에 서서 무리를 이끌어야 그나마 잘못된 선택을 피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한국 사회에서 전문가의 의견이 무시되는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허딩이론에 따르면 참으로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한순구 연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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